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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의 반려동물 예찬

우리는 반려견과 종(種)의 차이를 뛰어넘어 복잡한 감정의 상호작용 속에서 공생한다. 그것을 우정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그들은 동물의 본성에 갇힌 존재지만 우리 가족의 충직한 일원이다. 글 장석주(시인)

이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라니!

마흔 무렵 서울을 등지고 시골로 내려간 것은 여러 사정이 겹친 탓이다. 산자락 아래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을 일구며 살았다. 집 아래로 개구리 떼가 와글와글 울어대는 논과 고추나 감자를 심은 밭들이 연이어 있고, 그 아래로 큰 버드나무들이 도열한 저수지의 낮은 둑과 사시사철 출렁거리는 푸른 물이 있었다. 밤마다 머리 위 칠흑 같은 궁륭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별들이 릶다. 시골은 낯선 곳이니, 내게는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그 시절 줄곧 개와 함께 지냈다. 반려견들의 우정과 덕성은 잊을 수가 없다. 개들은 으르렁거리지만 언어의 부재 속에 침묵의 덩어리로 방치돼 있다. 말과 도덕을 앞세우는 사람에게 다가온 개들이 제 몸을 부비거나 혀로 핥으며 친밀감을 드러낼 때, 그들이 우리 정서의 필요에 부응하는 선량한 친구라는 느낌이 가득 찼다. 바깥에서 돌아온 주인에게 앞발을 들고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그들의 환대는 어두운 영혼에 한 줄기 환한 기쁨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과거에 얽매인 ? 사는 사람과는 달리 개에겐 과거가 없다. 당연히 혈통에 대한 기억도 없다. 오로지 즉물적인 현재밖에 없다. 개들은 목줄에 묶이는 것보다 자유롭게 질주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개의 질주하는 삶은 몹시도 짧다’라는 문장은 개의 운명을 한 줄로 꿰뚫는다.

[내밀한 감정생활 영위하는 개들] 시골로 내려올 때 한 친구가 검정 털 뭉치 같은 슈나우저 암컷 강아지를 안겨줬다. 집을 잘 지키란 뜻으로 ‘포졸’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애정을 쏟았다. 개들의 슬픔과 기쁨, 그 감정의 굴곡에 대해 잘 모르지만 포졸에게 내밀한 감정생활이 있는 건 능히 짐작했다. 개의 기분은 날마다 변화무쌍하다. 비가 내리는 날의 개와 햇볕이 쨍하고 하얀 구름이 둥실 떠 있는 날의 개는 다르다. 비 올 때 개는 침착하고 침울해진다. 그럴 때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을 크게 틀고 반려견과 함께 귀를 기울였다. 맑은 날 개의 기분은 날씨처럼 화창하다. 개들은 밖으로 나가고 싶어 목줄을 끌며 조바심을 쳤다.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릴 때 개의 야생성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산책에 나선 개들은 그 뛰어난 후각으로 냄새를 맡으며 세계를 탐색하느라 바쁘다.

새,730; 뜰에 포졸이 작은 들쥐를 포획해 물어다 놓곤 했다. 사냥감 을 물어다 놓고 칭찬을 기다리듯 머루처럼 까만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들쥐에 질색했지만 싫은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사냥 본성을 숨기지 못한 채 모든 움직이는 것을 쫓는 이 반려견은 개구리·들쥐·두더지를 잡는 데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포졸이 처음으로 새끼를 낳았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

산통(産痛)이 오는지 개가 운다. / 호소하는 듯 긴 울음이 / 딱딱한 내 몸통 속으로 / 밀려들어온다. // 초산이다, 개는 울음도 그친 채 / 고요히 새끼 두 마리를 낳고 / 엎드려 있다. / 산 것이 새끼를 낳는 동안 / 소년가장 같은 땅강아지는 재개재개 기어가고 / 귀 없는 풀들은 비스듬히 기운다. // 몸통 속에서 내 것이 되었던 울음들이 / 다시 몸통 바깥으로 밀려나가고 / 나는 미역국을 끓이러 / 부엌으로 간다. // 등 뒤 칸나꽃이 투명한 공기 속에서 / 유난히도 붉은 저녁이다.(졸시, ‘초산’) 포졸이 낳은 강아지들은 젖을 뗀 뒤 동네 이웃들에게 분양됐다.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목줄에 묶이지 않은 강아지들이 다 제어미 곁으로 돌아와 있었다.몇 해 뒤 포졸은 떠났다. 그날 아침나절, 포졸이 관목 숲에서 마당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가슴과 배에 진흙이 묻어 있었다. 어쩐 일인지 힘이 빠진 기색이 완연했다. 진흙으로 뒤엉킨 가슴팍 털을 들춰 보니 작은 구멍이 있었다. 야생동물의 송곳니가 구멍을 냈던 것 같다. 포졸은 그날 오후 양지쪽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고 죽었다. 그저 깊은 잠에 빠진 듯 사지를 뻗고 누운 모습이평온했는데, 이미 사후경직으로 사지가 딱딱해진 상태였다. 이용맹한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경미한 우울증을 앓았다. 이 반려견의 목에서 꼬리로 이어지는 등뼈를 손으로 쓸 때의 감각이 이토록 선명한데,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니!포졸이 떠났지만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 총량에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다. 식음을 전폐하지는 않았지만 손에 쥔 일들은 다 심드렁해졌다. 포졸이 떠난 뒤 새 반려견으로 삽살개와 진돗개를 들이고 인연이 다하면 떠나보냈다.그들 하나하나의 생김새, 윤기 흐르는 털과 정직한 눈동자, 명민함과 정직함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개를 포함한 동물 일반이 지고의 선(善)에 대한 열정을 갖는 경우도 없지만, 동족을 학살하는 악덕에 빠지는 경우도 없다. 제 본성에 정직하고 직감으로 인지하는 앎의 세계에 충실한 이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라니!그저 자극과 반응의 메커니즘이 작동할 뿐이지만 우리는 반려견과 종(種)의 차이를 뛰어넘어 감정의 상호작용 속에서 공생한다. 그것을 우정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반려견은 동물의 본성에갇힌 존재지만 우리 가족의 충직한 일원이다. 이 작은 존재들이그 유일성과 가시성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우정과 사랑, 그리고아무 조건 없이 베푼 생동감 넘치는 기쁨과 보람을 쉽게 잊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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