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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섬 교동도 시장 골목

시간이 멈춘 섬,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 갔다. 1970년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보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반가워 카메라를 들었다. 사진을 찍다가 그들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카메라 대신 눈 맞추고 귀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글 지유리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사진 찍는 거 말고 말동무나 해주시겨”

사진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였던 시절, 수업 마치면 해 떨어질 때까지 학교 앞 골목을 기웃댔다. 청소를 끝내고 나오는 주번 친구를 기다렸다가 슈퍼에서 함께 쭈쭈바를 사 먹고 운동장에 금 그어 사방치기를 했다. 운 좋으면 시장 가는 동네 아줌마가 주는 동전을 받아다 문방구 앞 오락기로 달려갔다. 그땐 같은 반 아이가 아니어도 눈짓 한 번이면 금세 친구가 됐?. 어린 동생이라면 더 좋았다. 말 잘 듣는 예닐곱 살짜리 코흘리개들을 꼬리에 매달고 골목을 누볐다. 처음 보는 동네 할머니에게 인사라도 하면 “공부 잘하는 착한 학생이구나” 하며 칭찬이 돌아왔다. 골목에 서 있기만 해도 지나가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던 때였다.

그러구러 세월이 흘러 요즘은 옆집에 살면서도 인사 한 번 나누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더욱이 최근엔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사느라 더 이웃 얼굴을 익히기 어렵다. 오가는 사람들과 반갑게 알은체하던 골목 풍경이 영영 다시 오지 않을 것만 ?다. 그때 그 시절, 사람 넘치고 정 넘치던 시간이 그리워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섰다.

[풍경은 변해도 사람은 그대로] 이번 출사 여행의 목적지는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이다.

교동은 섬 속의 섬이다. 7년 전 강화도와 교동을 잇는 다리가 놓였지만 섬 전체가 민간인출입통제선 안에 있어 왕래가 완전히 편치는 않다. 입도하려면 군인이 지키는 검문소에 들러 신분 검사를 받아야 한다. 홀로 떠 있는 섬처럼 여전히 약간 폐쇄적인 곳. 그 덕분일까. 교동의 시간은 육지의 시간보다 천천히 흐른다. 건물도 사람도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과거 교동도 대룡리엔 한국전쟁 피란민이 모여 살았다. 이곳에서 북한 황해도까지 채 3㎞가 되지 않는다. 과장 조금 보태 헤엄치면 닿는 거리라 황해도 연백 출신 실향민들에게 제2의 고향이 될 만했을 테다. 한창때는 마을에 사는 실향민만 4000명이 훌쩍 넘었고 사람이 몰려들면서 자연히 돈도 모였다. 1970년대만 해도 대룡시장은 없는 것 없는 시장으로 통했다. 그러나 호황은 잠깐이고 쇠락은 빨라서 지금은 한창 돈 벌었던 1970년대에 멈춰 서 있다.

내비게이션 목적지에 대룡시장을 찍고 차를 몰았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 시장 앞에 새로 지어진 너른 주차장에 당도했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없었는데 여기도 새삼 시간이 흘렀음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입구에 설치된 간판이며 주위 안내 표지판이 모두 새것이다. TV 프로그램에 시장이 소개되면서 관광객이 늘자 지난해 정비사업을 마쳤단다. 1960∼1970년대 촌스러움은 그대로지만 왠지 모르게 때 빼고 광낸 듯 말쑥해 보인다.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실망하긴 이르다. 그곳에 사는 사람은 그대로니까. 골목 어귀에 들어섰다. 손님은 아직 없고 나물 팔러 온 할머니들이 소쿠리를 널며 말씨름을 한다.

“형님, 오늘 이 집은 안 나온대. 형님이 여기로 오셔. 이 자리가 장사가 더 잘돼. 귀찮기는 뭐가 귀찮아. 어여 일어나셔.” “해 드는 자리는 자네가 앉아.” “비닐봉지 안 가져왔어? 정신을 어따 둔 거야. 내 거 빌려줄 테니까 필요하면 말하셔.” 애정 어린 구박과 핀잔을 주고받는 모습이 정겨워 카메라를 들었다. ‘찰칵’ 하는 소리에, 아우들 잔소리에 꿈쩍도 않던 최혜자 할머니(74)가 언성을 높인다.

“늙은이 얼굴은 뭐하러 찍어. 됐고 여기 나물이나 찍어봐. 다 내가 농사지은 거야. 빛깔 곱지?” 그 말에 무안해져 쭈뼛대니 할머니가 ‘파핫’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잇는다.

“농담이야. 서울서 왔나 본데 실컷 찍어 가야지. 찍어보셔.” 아마도 진담 반 농담 반이었을 말. 처음 본 할머니와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오래된 이웃이라도 된 것처럼 친해진 기분이 든다. 그 모습을 보고 샛길에 자리를 잡은 다른 나물 장사 할머니도 참견을 보탠다. “그 집 나물이나 좀 팔아줘. 그 형님은 장사가 돼야 해”라고 걱정이다. 자기 장사도 영 신통치 않건만 옆집 형편 걱정하는 걸 보니 영락없는 옛 장터 분위기다.

다시 발길을 돌렸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동산약방에 들렀다. 60년째 약방을 지키는 나의환 할아버지(90)가 어김없이 손님을 맞는다. “아픈 덴 없고 놀러 왔어요”란 말에 “잘 왔다”며 반긴다. 옛날 얘기가 궁금한 속내를 들여다본 듯, 어릴 때 서울로 학교 다니며 수재 소리를 들었단 얘기와 한국전쟁 땐 영어를 잘해 미군 통역을 했고 전쟁통에 제주까지 내려가 훈련받은 사연을 줄줄 쏟아내신다.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할아버지 ‘왕년에’ 이야기에 귀가 쫑긋 솟는다. 의사·박사 한다는 자식들 자랑을 하며 할아버지가 흑백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엊그제인 것처럼 사진 찍던 날이 눈에 훤하다는데, 빛바랜 사진 속 젊디젊은 그의 얼굴이 오랜 세월을 짐작케 했다.

한참 옛날 얘기에 빠졌을 때 ‘드르륵’ 가게 문이 열렸다. 동네 아주머니가 진통제를 찾는다. 할아버지는 한 통에 4000원이라면서도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넨 손님에게 “그럼 만 원에 세 개 줄게” 한다. 시골 인심이 약방이라고 없을까.

[남루해도 고귀한 삶의 현장] 약국을 나오니 해가 중천이다. 썰렁했던 골목에 제법 사람이 오간다. 약국 맞은편은 분식집으로 바뀐 교동이발관이다. 몇 개 없는 테이블이 꽉 찼다. 꽃무늬 일바지 입은 동네 할머니들 옆자리 에 백화점표 옷을 입은 관광객이 앉았다. 결코 만날 일 없어 보이 는 이들이 어울리는 풍경은 교동에 시간이 부지런히 흐르고 있 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아직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간. 다방에 갔다. 커피나 차 마시는 곳을 다방이라 한다면 요즘 사람들은 하루에 서너 번은 ‘아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러 다방에 간다. 별것 있겠느냐며 문 을 여니 별천지가 여기다. 낮은 천장엔 그동안 찾아온 손님들이 남긴 메모가 주렁주렁 매달렸고, 계산대 옆엔 전축이 놓여 있다.

레자 소파는 50년 벼월만큼 푹 꺼져 제 역할을 잃었다. A4 용지 에 손글씨로 쓴 메뉴판엔 군데군데 커피 자국과 손때가 묻었다. 화려한 듯 남루한 실내를 벙찐 표정으로 살피는데, “놀 러 왔어요? 그러면 쌍화차 드세요. 다들 그것만 시키더 라고.” 여사장이 말을 걸어온다.

“신기하죠? 사람들이 오면 사진 찍는다고 난리가 나요.

나는 경남 살다가 8년 전에 왔는데 아직도 신기하다니 까. 요즘 우리 동네가 유명해져서 전국 사람들을 다 만 나요.” 여사장이 동네 자랑을 늘어놓았다. 남들 보기엔 보잘것 없는 것도 이들에게는 고귀한 삶의 현장이? 일상이다.

정신 차리고, 내어준 쌍화차를 마셨다. 달걀노른자 덕분 인지 한 잔만으로도 속이 든든하게 채워졌다.

다방에서 나와 다시 길을 걷는다. 끄트머리쯤에 닿으니 가게 앞을 지키던 할아버지가 대뜸 강정을 들이민다.

“우리 집 강정이 시장에서 가장 유명해. 왔으면 이것부 터 먹어야지.” 강정 가게 주인장은 최봉열 할아버지(90)다. 황해도 연 백이 고향인 그는 은퇴하곤 조금이라도 고향과 가까운 곳에 살고 싶어 교동에 왔다.

“여기가 고향은 아니지만 고향 사람들하고 같이 사니까 살 만해. 우리 가게가 이 동네 실향민들 모이는 집이었 어. 그런데 지금은 거의 죽고 얼마 안 남았지. 요새는 젊 은 사람들이 와서 강정도 팔아주고 우리랑 얘기해줘서 덕분에 재밌게 살아.” 고향땅 밟지 못해도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는 할아버지. 어린 시 절이 떠오르는 듯 눈을 감은 그의 목소리가 촉촉해졌다. 그저 잠 시 들렀다 가는 사람이 해줄 게 무얼까. 귀 열고 말동무해주는 게 전부일 테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말을 마치고 옅게 미소 짓는 할아버지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가게마다 들여다보고, 만나는 사람마다 말을 붙이느라 500m 남짓한 골목을 걷는 데 한 시간이 더 걸렸다. 그럼에도 뒤돌아 지 나온 길을 다시 걷는다. 미처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더 있을 것이 기에. 사람들이 있는 한, 시간이 멈춘 섬에도 삶은 흐른다.

[임승수 사진가에게 배우는 ‘인생샷’ 노하우] 여행지의 추억을 모두 머리에 담아둘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람의 기억력은 생각만큼 뛰어나지 않다. 역시 남는 건 사진뿐이다. 사진가에게 초보자도 따라 하기 쉬운 ‘인생샷’ 찍는 법을 배웠다.

1. 앵글을 다양하게 바꾸라 내 키보다 한 뼘 높은 혹은 낮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자신의 눈높이에 있는 카메라 렌즈를 조금만 움직여도 사진에 담기는 풍경이 새로워진다. 때론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두고 찍거나 옥상에 올라가 내려다보듯 찍어보자. 색다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2. 인물의 시선이 가는 쪽에 여백을 두라 인물을 사진의 정중앙에 두는 것은 초짜다. 한쪽에 몰아두는 것이 안정적이면서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어느 쪽에 둬야 할까? 정답은 인물이 바라보는 방향에 여백을 두는 것이다. 인물이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면 왼쪽에 인물을 세우는 식이다. 만약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3. 프레임을 활용하라 사진은 찍고자 하는 풍경을 사진이란 프레임안에 가두는 것이다. 이때 사진 안에 또 다른 프레임을 만들면 감각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건물이나 가로수 등 주변 지형을 활용해 틀을 만들고 그 안 에 피사체를 넣어 찍는다. 그러면 시선이 피사체에 집중되면서 강렬한 인상을 준다.

4. 얼굴은 중앙에, 발은 끝에 두라 스마트폰 카메라의 광각렌즈는 특성상 화면의 가운데에 올수록 사물이 작아 보이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커 보인다. 이 원리를 활용하면 8등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가장 작아 보여야 하는 얼굴을 화면의 정중앙에 두고 발은 맨 끝에 둔다. 카메라를 허리춤에 오도록 내리고 인물을 향해 살짝 올려다보듯 찍는다면 금상첨화다.

5. 한 가지에 집중하라 초보자가 하는 가장 흔한 실수는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건물도 찍고 싶고, 인물도찍고 싶고, 꽃도 찍고 싶고…. 전부 다 찍으려다가 전부 놓치는 사태가 벌어진다. 한두 가지 피사체에 집중해서 촬영하자.

6. 수직·수평을 맞추라 피사체를 담을 때 수직·수평을 맞추면 사진이 한층 정돈된다. 눈으로 수직·수평을 맞추기 어렵다면 스마트폰 카?라 메뉴를 활용하자. 카메라 ‘설정’ 메뉴에 들어가면 ‘수직/수평 안내선’ 메뉴가 나온다. 해당 메뉴를 켜면 화면에 가로·세로 4개의 줄이 표시된다. 피사체를 안내선이 교차하는 자리에 두면 더욱 안정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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