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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읽는 골목

쉼 없이 움직이는 일꾼들의 땀이 골목에 흐른다. 해거름에 맞춰 그 짠 내의 복판으로 스며드는 사람들. 철공소와 인쇄소의 활기가 주인이었던 거리에 술 냄새 나는 웃음이 차고, 가로등 사이 간판 밑으로 발길이 줄을 잇는다. 생업의 뜨거운 표정으로 가득했던 낮의 열정과 저녁의 열기가 거리를 밝히는 이곳은 골목이다. 같은 시간 속 엇갈리는 골목의 온기, 그리고 그곳 사람의 이야기를 사진에 담았다. 글 원용찬 기자 사진 임승수·고승범(사진가)

골목, 머물거나 힘껏 흐르거나

사진 [우리가 다하는 날까지] 인현동과 필동. 종이와 잉크로 뒤엉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이곳의 시간은 이제 제자리걸음 하듯 흐른다. 폭 2m 남짓한 골목을 지나는 삼륜 오토바이 운전사의 손등엔 주름이 역력하다.

잔뜩 때가 낀 인쇄기를 등진 이는 귀가 먹먹하다며 질문을 되묻는다. “앞으로 이 일을 누가 하려 들겠어요.” 한 인쇄소의 직원과 함께 골목을 걸었다. 이곳에슴 무엇이 있었고 누구누구가 함께했고….

연이어 나오는 사연 중간에 문득 보이는 문 닫은 제본집을 발견하곤 말끝을 흐리는 그. 이곳을 지키는 이들의 소망은 수년 후보다 당장 내일과 모레를 향한다. 자신들과 함께 이곳이 가능한 한 지켜지기를….

[거개가 무심코 지나가는 이곳] 다리를 잃은 의자가 간신히 벽면에 기대어 있다. 몸 누일 곳 없는 폐가구들은 주인 없는 빈집에 던져졌다. 가구거리로 들어오는 차들이 무심히 가게를 지나치고, 골목 사이로 들어서는 사람들은 가게 주인들의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 눈길이 엇갈린 그들 사이로 야속한 긴장이 흐르는 가운데 괜히 몸 둘 바 모르는 의자가 바람에 삐걱인다. “저기, 이 근처에 카페 많은 골목이 있다던데… 어딘지 아세요?” 혹시나 해서 귀를 세웠던 주인과 영문 모르는 행인은 이번에도 장단을 맞추지 못한다. 카페거리 이전에 가구를 사러 온 사람들로 복작대던 이 거리가 있었다. 아쉽기만 한 주인 뒤로 한숨을 내쉬듯 가게 문만 들썩인다.

[이 골목에 순자가 있었다네] 인구가 최근 5분의 1로 줄었다는 턱거리마을에는 남은 이들을 위한 마을 방송국이 있다.

기지촌 시절 한때 군인과 사람들로 북적였룀나 이제는 발길이 뜸해진 가운데, 야속한 마음을 담은 그 세월의 기억이 음성으로 흐른다. “순자야.” 미군과 결혼을 약속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기지 앞 묘소에 몸을 누였다던 그녀의 이름이다. “얘 순자야.” 기지촌 업소 종업원으로 살다가 요새는 사람들과 단절된 채 지낸다는 다른 순자의 이름도 들린다. 이 골목 노인들은 잘 살기 위해 방송국 건물 안에서 글자를 배운다. 묵묵히 골목을 지키는 이들의 동기는 ‘그래도 희망’이다.

[핫 플레이스 뒷골목에 옅은 햇빛 비취고…] 군산시 명물 이성당 빵이 담긴 봉투를 들고 길을 ?는다.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초원사진관 앞을 메운 젊은이들의 모습. 그 너머로 태극기 가득 걸린 골목이 보인다. 근대화거리 대로엔 한때 크게 줄었던 사람들이 그럭저럭 찾아온다. 삐걱거리며 내달리는 자전거를 따라 들어간 골목엔 주인 잃은 빈집 몇 채. 전신주에 붙은, ‘500원에 추억을 사세요’라는 흑백사진관의 포스터 문구가 문득 눈에 띄었다.

‘추억과 역사, 무엇이든 이 골목에서 채워갈 수 있는데….’ 몰려오지 않는 발걸음들이 아쉬운 골목에 유달리 크게 보이는 ‘임대 문의’.

[실금처럼 이어진 젊음이 피어난 골목] 절단기를 둘러메고 길을 향하는 노인의 걸음이 힘겹다. “에잉, 뭐 이런 곳이 좋다고 이 난리통이여?” 길을 채운 연인들 탓에 걸음이 막히자 흘겨보고 지나는 노인. 마침 지나던 신입 총각이 대신 이고 가겠다며 받아선 성큼 철공소 쪽으로 걸어간다. 어깨가 가벼워진 노인의 시선이 찬란한 가게 조명을 향한다. “예술 한다는 눔들만 든 게 아니라 지짐이 장사치들도 함께 왔구먼.” 곳곳에 자리 잡은 예술인들의 자리와 밤을 밝히는 가게들에 노인의 심사가 어지럽다. 적적한 동네보다야 나은 것 같기도 하고. 그 순간에도 골목에는 사?이 들었다.

[이곳 시간은 기억보다 빠르다네] “완전 전쟁터여, 전쟁터.” 자식들 손에 이끌려 나온 아저씨가 한숨을 내쉰다.

조용한 마을이었던 이곳에 젊음이 불어와 골목에는 먹거리가 즐비하고, 기와를 얹은 새 건물에는 젊은이를 겨냥한 간판이 내걸렸다. 신라시대 고분군인 대릉원의 담장을 따라 이어진 골목에는 주차된 차량이 줄을 잇고 있고, 그 옆을 허름한 자전거 대신 전동 킥보드가 스친다. 비켜서는 아저씨의 한마디. “아이구, 이건 또 뭐람.” 황남동 골목의 시간은 우리의 기억보다 빠르게 앞서가고 있다. 과거 경주 ?학여행 속 풀빛 가득했던 기억이 혼란스러울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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