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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 그 골목을 다시 걷다

서울 신림동은 내가 1970년대 말부터 10년 남짓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그 뒤로도 죽 서울에서 살았지만 누군가 내게 골목에 대해 묻는다면 주저 없이 신림동 골목을 말하리라. 순수했던 나의 유년이 살아 숨 쉬는 곳. 추억의 보물 상자를 열어보는 마음으로 그 골목을 다시 찾았다. 글 박자원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달콤쌉싸름한’ 나의 골목길

사진 아이는 골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훗날 동네를 떠나기 전까지 그 골목길을 무던히도 쏘다녔다. 그 시절 아이는 대문 밖에서 세상을 탐구했다. 온갖 재밌고 신나는 일들은 거기에 다 있었다. 대문을 나설 때마다 왠지 모를 짜릿함마저 느꼈다.

나의 유년 시절 추억엔 모두 골목길 해시태그(분류와 식별을 용이하게 하는 표식)가 매겨져 있다. 골목을 빼놓고 유년의 추억을 말할 수 없다. 마치 머릿속 저장소의 ‘유년 시절’이란 폴더 안에 ‘골목’ 폴더가 별도로 만들어져 있는 느낌이랄까.

서울내기인 나에게 골목은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이 누비던 산과 바다만큼이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다. 30여 년이 흘러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됐지만 그때를 추억하면 말로는 표현 못 할 어떤 감정이 인다.

5월 햇살 좋은 날, 신림동 그 골목을 찾았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내가 다녔던 남부초등학교를 찍었다. 운전하는 동안 머릿속으로 들를 곳을 떠올려본다. 학교, 교회, 놀이터, 경찰서, 중국집 그리고 마지막으로 옛집에 가볼 참이다. 학교는 불과 반 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에 있었다. 여태 한 번도 찾아가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가까웠다.

오후 1시, 남부초등학교 앞. 하교 시간이라 학생들이 정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학교 앞은 다섯 갈래의 골목길로 나뉜다. 학생 들은 제 갈 길을 따라 골목 속으로 흩어졌다.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문구점으로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문구점엔 ‘통 큰 딱따구리 문구’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주변을 둘러봐도 문구점은 거기가 유일하다. 가게 앞에서 방금 산 장난감을 서로 비교해보는 아이들. 마스크를 썼어도 신난 표정이 역력하다. 건물이 꽤 오래돼 보였지만 그 문구점은 어릴 때 못 보던 곳이다. 그 시절엔 문구점이 아닌 문방구였다. 학교 앞에 문방구가 서너 개는 됐다. 적지 않은 수였지만 하교 시간이면 가게마다 북새통을 이뤘고, 가게 주인은 아이들에게 차례를 지키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사뭇 달라진 풍경이다.

[내 몸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옛 하굣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집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제법 큰 골목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비슷해 보이는 길이 많았지만 금세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랜 시간이 흘렀으나 내 몸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전신주를 따라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길옆에 주차된 차들이 많았다. 지나가는 차들도 많아 여러 번 걸음을 멈춰야 했다. 그때는 골목에 차가 별로 없었다.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에야 우리나라가 이른바 ‘마이카 시대’를 맞았으니 그럴 만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엔 옛 건물을 헐고 새로 지은 집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집은 어떻게 됐을까?’ 그대로 있을 리가 없는데 괜한 기대를 해본다. 어디선?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유치원생들이 놀이터로 야외 학습을 나왔다. 그 놀이터는 일요일에 부모님 손 잡고 교회에 오면 늘 들르던 필수 코스였다. 유치원 교사에게 “아이들 모습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아이들이 ‘무슨 일이지?’ 하는 눈빛으로 우리 쪽을 쳐다본다. 그들이 해맑게 뛰노는 모습을 사진에 담기란 어렵지 않았다. 아이들의 순수함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나도 저랬겠지?’ ‘여기 어디쯤 교회가 있을 텐데?’ 놀이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교회가 있었다. 중간에 리모델링을 거친 듯 외관이 달라져 있었다. 그래몶 빨간 벽돌로 치장한 건 옛 모습 그대로여서 낯설지만은 않았다.

좀 더 걸으니 경찰서로 보이는 회색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 집이 멀지 않았단 뜻이다. 곧장 가면 빠른데 일부러 경찰서 앞 큰길로 돌았다. ‘어릴 땐 내가 아는 가장 큰 건물이었는데….’ 경찰서 건물은 그때보다 작고 아담해 보였다. 세월이 흐른 탓인지 낡고 허름하기까지 했다.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2018년에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는 안내문이 담장에 붙어 있었다. 관리가 안 된 걸 보니 곧 헐릴 모양이다.

경찰서를 지나 좁은 골목길? 접?들자 익숙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예전에 자주 갔던 중국집 ‘영신원’이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름은 그대로인데 건물은 최근에 지어진 듯 깔끔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주인과 이야기도 나눌 겸 짜장면 맛을 보기로 했다. 주방에서 일하는 노부부가 사장인 듯했다. 그 시절 먹던 짜장면 맛을 떠올려보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초등학교 시절 많이 먹었던 추억의 음식을 천천히 음미했다. 근래 먹어본 짜장면 중 가장 맛있었다.

알고 보니 노부부가 주인은 맞지만, 내가 알던 주인은 아니었다. 그들은 전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어받았다고 한다. 비록 내 추억 속의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가게를 인수한 게 1980년대 말이었다고 하니 그들을 이 동네 터줏대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가게를 나오면서 휴대폰에 영신원 사진 한 장을 담았다. 건물도, 주인도 달라졌지만 내겐 유년을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장소였다.

다시 내가 살았던 옛집으로 향했다. 영신원에서 집까지 이어진 좁은 길은 약간 경사가 있었지만 평지에 가까웠다. 내가 기억하는 그 길은 넓고 비탈이 꽤 심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게 아닐까?’ 주변을 둘러봐도 집으로 가는 길이 맞았다.

수십 년 전 작은 꼬마는 이 얕은 경사를 마치 높은 등산로처럼 우러러본 것이다.

드디어 집 앞 골목에 도착했다. 옛집이 있던 자리에 빌라가 들어섰다. 이웃집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몇 채 보이는 주택들도 그 후에 다시 지어진 것 같았다. 외관을 보니 1990년대쯤에 재건축 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변화무쌍한 대도시 서울에서 수십 년 전 주택의 흔적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이란 걸 알면서도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추억들] 그 옛날 노란 대문 집이 있던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어낸 시절 뛰놀던 골목길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이쯤에 우리 집 담장이 있었는데….’ 담장 밑에서 친구들과 돌멩이를 펼쳐 놓고 소꿉놀이하던 기억이 흑백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 갔다. 집 앞에서 오빠와 배드민턴을 치며 티격태격했던 것도 생각났다. 갑자기 골목과 함께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밀물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

고무줄놀이·말뚝박기·땅따먹기·소꿉장난…. 온종일 놀아도 놀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술래잡기할 땐 술래가 절대로 못 찾게 하겠다며 최고의 숨을 곳을 찾아 골목을 누볐다. 놀다 지치면 집에 들어가 엄마가 따라주는 시?한 보리차를 들이켜며 땀을 식혔다. 어떤 날은 리어카에서 파는 번데기를 사 먹겠다고 아이들과 멀리 있는 시장까지 모험을 감행했다가 낯선 골목의 풍경에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해거름 녘에 친구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아쉬움 가득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시절, 잠자리에 든 뒤에도 골목길에서 뛰노는 꿈을 꾸며 입가에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살아가기 바빠 잊고 있던 유년의 추억이 여전히 내 맘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깨달은 값진 골목길 여행이었다. 그동안 나는 무엇으로 나를 채우며 성장했을까. 순수했던 그 시절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자양분이었던 건 분명하다. 넓어 보였던 ‘대로’가 실은 좁고 복잡한 골목길이었다는 것을 아는 어른이 되는 데 기여한 것도 그 시절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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