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와 공존 - 도시농업과 에너지 자립 독일 카를스루에 가보니 350㎡ 규모 정원 1만곳 달해 주거지 근처 땅 소규모 임차 도시민들 농사 등 취미 즐겨 “코로나·전쟁 접하며 더 인기 분양 대기자만 4000명 넘어”
“이곳을 분양받으려는 도시민이 4000명이 넘습니다. 코로나와 전쟁으로 인기가 더 치솟았죠. 그러나 언제 자신의 차례가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한번 들어온 사람이 좀체 나가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명물을 꼽자면 ‘클라인가르텐’이 상위에 놓인다. 19세기 독일인 의사 슈레버 박사가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에게 한결같이 내린 처방에 기인한다.
“햇볕에 나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채소를 기르세요.”
클라인가르텐은 우리말로 ‘작은 정원’이다. 일정 규모의 대지를 균일한 간격으로 나눠 여러명의 개인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일종의 개인 농장이다.
대부분 교외에 위치한 한국의 주말농장과는 다르게 클라인가르텐은 도심 곳곳에 위치해 있다. 해가 긴 여름 동안엔 퇴근 후 이곳에서 저녁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꽤 긴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독일 전체에 걸쳐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엔 식량을 얻을 목적이 컸지만 지금은 국민건강·휴양·환경보전 기능에 초점을 맞춘다.
독일 현지 교민에 따르면 독일 전역 클라인가르텐 면적만 4만6000㏊ 규모로 추산된다. 이렇게 큰 규모로 들어선 데는 독일 정부의 의지가 절대적이었다.
독일 연방 ‘건축법’ 제5조에 따르면 지역사회가 필요하다고 하면 클라인가르텐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로 건설되는 도시계획엔 클라인가르텐을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독일에선 아파트 등 공동주택 밀집지역 주민들은 5분만 나가면 정원을 만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독일 정부는 클라인가르텐 내 집 면적도 세세하게 규정했다. 전체적으로 16㎡(4.8평)를 넘을 수 없게 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전체 면적을 휴양공간, 아이들 놀이공간, 농작물 재배공간 등 3구역으로 구분하도록 했다.
5일(현지시간) 오전 카를스루에 클라인가르텐 단지를 찾았다. 이곳은 4년마다 개최하는 독일 클라인가르텐 경진대회에서 금메달만 11번 수상했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다.
카를스루에 클라인가르텐협회에 따르면 현재 이곳엔 평균 350㎡(105평) 크기의 정원이 9980곳이 있다. 전체 면적은 240만㎡(72만6000평)에 달한다.
단지에 들어서니 과연 분양받은 사람의 개성과 취향이 묻어나는 각양각색의 정원이 빼곡했다. 여러 채소를 키우는 텃밭으로 꾸린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면적 전체를 잔디밭으로 꾸미고 커다란 의자 하나만 갖다 놓은 곳도 적지 않았다.
형형색색의 꽃도 많이 보였다. 깃발과 불교 석상 등 정원 운영자의 국적이나 종교를 짐작하게 하는 시설물도 많았다.
이날 기온이 별로 높지 않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한여름엔 기온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는 게 단지를 운영하는 협회 측의 설명이다.
도시민의 수요는 뜨겁다. 카를스루에 클라인가르텐협회장인 미틴씨는 “연간 임차료는 100유로(14만원)이지만 한번 분양받은 사람은 거의 나가지 않기 때문에 대기자가 현재 4000명쯤 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식량문제가 화두로 뜨면서 인기가 더욱 치솟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 정원 220곳을 더 만들고 싶지만 전체적으로 면적이 부족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대산농촌재단에 따르면 몇년 전만 해도 클라인가르텐 1곳당 임차료는 45유로였다. 수년 새 갑절 이상으로 인상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회비(63유로)·전기세(50유로)·수도료(120유로)·보험료(75유로) 등 300유로 이상을 1년에 추가로 내야 한다. 임차료를 포함하면 모두 408유로(57만원)를 매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기 수요는 끊이지 않는다. 그 이유를 현장에서 만난 주민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루틴씨는 “카자흐스탄 출신으로 20년 전 이곳을 분양받은 이후 지금까지 아들 4명을 장가 보내고 손주가 태어날 때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이 5분 거리에 있는데 텃밭에 꽃·나무·채소를 3분의 1씩 짓는 재미가 쏠쏠해 거의 매일 나온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카를스루에(독일)=김소영 기자 spur222@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