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도예] 깨진 도자기의 부활, 환경을 이롭게 하다
입력 : 2023-03-26 15:34
수정 : 2023-03-27 00:00
타지도 썩지도 않는 도자기
그냥 버리면 땅속 쓰레기로
‘아누’ 폐도자기 새활용 앞장
곱게 갈아 화분 재료로 사용
“처치곤란한 도자기 있다면 
기부 프로젝트 참여하세요”
천연접착제 옻풀로 틈새 메우고
금가루 바르는 수리기술 ‘킨츠키’
산산조각났어도 번듯하게 ‘생환’
자개·유리 장식으로 한층 멋 더해
“깨진 흔적들 그 자체로 아름다워   
완성됐을 땐 치유받는 기분 느껴”

도자기는 흙으로 빚기에 으레 친환경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쓸모를 다한 뒤 쉬이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깨진 도자기는 ‘불연성 폐기물’이다. 일반적으로 생활 쓰레기는 800∼1000℃에서 소각하는데 도자기는 이미 1200℃ 넘는 가마 온도를 견뎌낸 터라 생활 쓰레기 소각로에서 연소하지 않는다. 남은 방법은 매립이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썩지 않는다. 수천년 땅속에 묻혀 있다가 온전한 형태로 출토되는 도자기 유물이 그 증거다. 도자기가 진정 자연에 이로워지려면 고쳐 쓰거나 버려지는 것을 재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폐도자기를 새활용해 만든 화분.
버려진 도자기를 분쇄했다. 여기에 공예용 흙을 섞어 도자기를 만든다(위). 가마에 들어갈 화분들. 프레스성형으로 찍어내 모양이 일정하다.

●폐도자기의 대변신 ‘업사이클링 화분’

불세출 장인이라도 도예 작업을 하다보면 열에 한둘은 하자품이 나오기 마련이다. 도예가라면 숙명처럼 폐도자기를 배출하는 법. 도예 브랜드 ‘아누’를 이끄는 도예가 안용우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버려지는 도자기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

“도자기는 타지도 썩지도 않는 폐기물이지만 본질은 흙이에요. 도자기를 곱게 갈아 흙으로 되돌린 후 다시 도자기로 만들면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누는 가정이나 공방 등에서 깨지거나 하자가 생겨 버리는 도자기를 가져와 분쇄한다. 여기에 기존 공예용 흙을 섞는다. 아누만의 흙 배합 비율로 반죽해 화분을 빚는다. 지난해 아누가 수거한 폐도자기는 무려 1t이다. 그만큼 매립 쓰레기를 줄였다는 뜻이다.

비록 폐도자기를 재활용한 것이지만 안전성엔 문제가 없다. 아누는 유해물질이 없는 식기용 도자기만 재활용하고 틈틈이 완제품에 대해 안전성 검사를 받는다. 안 대표는 “‘폐도자기’라는 용어 탓에 소비자가 거부감을 일으킬까 우려해 먼저 화분을 선보였다”면서 “그동안 제품 가치와 안전성을 알렸으니 조만간 컵이나 그릇 같은 식기도 제작해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아누는 공방을 돌거나 서울 마포구에 있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쓰레기 안 만들기) 가게 ‘알맹상점’과 협업해 비정기적으로 폐도자기를 수거했다. 올해는 연중 누구나 폐도자기를 기부할 수 있도록 ‘리포셀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아누 누리집에서 배송료 3000원을 내고 ‘폐도자기 수거 키트’를 신청하면 된다. 택배로 받은 상자에 버리는 도자기를 담아 내놓으면 아누가 가져가는 방식이다. 올해 더 많은 쓰레기가 쓸모 있는 도자기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아누 제품의 또 다른 특징은 화려한 색감과 패턴입니다. 식기나 화분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물건이잖아요. 환경을 이롭게 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사용하면서 기분이 좋아야 해요. 그래서 소재만큼 디자인에도 신경을 쓰죠. 업사이클링 도자기가 환경과 일상을 모두 이롭게 하는 생활용품이 되길 바랍니다.”

킨츠키로 수리한 접시.
깨진 컵에 옻풀을 발라 붙이고 있다. 조각이 어긋나지 않도록 접착테이프로 고정한다(위). 옻풀이 다 마르면 그 위에 장식용 금분을 발라 수리를 마무리한다.

●흠집, 멋짐이 되다 ‘킨츠키’

나도 모르게 이가 나간 그릇이 있다면 주목하자. 파손된 그릇을 고치는 킨츠키 기법이다. 킨츠키는 일본어로 ‘금가루를 붙여 수리하다’라는 뜻이다. 갈라지거나 깨진 도자기에 옻을 칠하고 그 위에 장식용 금분을 발라 마무리하는 일본식 도예 수리 기술이다. 유리·나무·철 등 다양한 소재에 적용 가능하다.

킨츠키 핵심 재료는 옻이다. 옻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은 성능 좋은 천연 접착제다. 깨진 도자기 단면에 옻을 발라 붙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자개를 붙이는 나전공예에 옻을 접착제로 쓴다. 생옻은 독성이 있지만 완전히 건조하면 독성이 날아간다. 유해물질이 함유된 화학 접착제와 달리 잘만 사용하면 음식을 담는 그릇에 써도 문제없다.

킨츠키 방법은 도자기 파손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먼저 두 조각 이상으로 동강이 났다면 깨진 단면에 옻과 밀가루 반죽을 1 대 1로 섞은 옻풀을 발라 서로 붙인다. 이가 나간 것처럼 일부가 깨져 소실됐다면 옻풀에 토분·목분을 섞어 메운다. 이전과 똑같은 모양으로 복구할 수는 없지만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요즘엔 결손 부위에 자개나 유리·플라스틱을 붙여 멋을 내기도 한다. 금이 간 상태라면 희석한 생옻으로 틈새를 메우듯 발라준 후 닦아낸다. 세 방법 모두 수리한 부분에 금분이나 은분을 발라 마무리한다. 옻은 완전히 건조하는 데 6개월 정도 걸린다. 수리하고 1년은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한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릇을 오래 쓰도록 돕는 킨츠키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졌다. 울산에서 ‘마닮공방’을 운영하는 윤란주 도예가는 울산과 서울을 오가며 킨츠키를 가르친다. 도예가는 물론 다도가, 요리사, 그릇 수집가들이 그의 수업을 듣는다.

윤 도예가는 “수강생들이 깨진 그릇을 가져오는데 말 그대로 ‘산산조각 박살 난 그릇’이 많다”면서 “그럼에도 버리지 못할 만큼 추억이 깃들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킨츠키를 하는 이들에게 삼시 세끼 음식을 담고 손과 입을 대는 그릇은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다. 일상과 추억을 담는 그릇이다. 수고스럽지만 고쳐 쓰는 건 추억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어요. 그릇도 마찬가지죠. 깨지고 흠집 난 것을 고친 자국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요. 깨진 도자기를 킨츠키로 살려낼 때마다 스스로 치유받는 기분이 듭니다.”

지유리 기자 yuriji@nongmin.com 사진=김건웅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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