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도예] 손수 그릇 빚고 쓰니 일상 속 살아난 ‘멋’…어느새 돋아난 ‘맛’
입력 : 2023-03-26 15:28
수정 : 2023-03-27 05:01
도예공방 ‘랑스튜디오’ 가보니 
접시·주전자 등 본인 개성 담아 만든 후
음식이나 차 가득 채워 나누면 마음 ‘넉넉’ 
스튜디오서 그림 그리기·제작 경험 가능
창의성·실용성 고루 갖춰야 좋은 도자기
그릇에 담으면 함께 나눌 수 있다. 랑스튜디오 한켠에 전시된 다양한 도자기. 

 

도예는 쓰임새가 있는 예술이다. 컵이나 접시처럼 늘 사용하는 생활용품도 만들 수 있다. 더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됐던 일일강좌(원데이클래스)도 최근 속속 재개되면서 도예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생활예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상에서 펼쳐지는 도예의 멋은 무엇일까. 귀촌 도예가가 운영하는 도예공방인 경북 고령 랑스튜디오에서 하루 동안 머물고 체험하며 해답을 찾아봤다.

랑스튜디오는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 있는 개실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은 한옥 수십가구가 촘촘하게 모인 선산 김씨 집성촌이자 고즈넉한 농촌체험마을이다. 서울 홍익대학교에서 도예 공부를 하던 이숙랑 랑스튜디오 대표는 2007년 귀촌해 이곳에서 도예공방과 도자기 카페, 한옥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고령군에서 주민참여예술을 진행하고, 군 관광지에 도자기 설치미술도 전시하며 지역 대표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랑스튜디오에 가면 이숙랑 대표가 직접 만든 컵에 차를 마실 수 있다. 

“대구에서 도예를 공부하다가 대학원은 서울에서 다녔어요. 그런데 서울에서 작업실 구하기가 여의찮아 할머니 댁이 있는 고령으로 귀촌을 결심했죠. 할머니가 사시던 집은 개조해 민박으로 쓰고, 옆에 카페 겸 공방을 마련했어요.”

이 대표의 도예공방은 ‘담다, 나누다’를 주제로 한다. 음식은 그릇에 담는 순간 나누게 된다. 개실마을의 푸근한 정을 닮았다. 공방 안엔 이 대표가 직접 만든 도자기들이 군데군데 전시돼 있다. 손바닥만 한 컵부터, 소박한 밥그릇, 귀여운 찻주전자, 물고기를 닮은 접시 등 개성 있는 식기들이 눈에 띈다. 감청색 달항아리와 테라시질라타 기법(토기를 만드는 기법 가운데 하나)으로 만든 투박한 도자기를 감상하는 멋도 있다.

이숙랑 대표(왼쪽)는 개실마을에서 창의성을 길러주는 다양한 도예 수업을 진행 중이다. 그가 기자에게 도예 체험을 소개하고 있다.

도자기 카페는 공방과 함께 있다. 카페에서 주문하면 그가 직접 만든 그릇에 차가 담겨 나온다. 도자기 컵을 타고 전해오는 따뜻한 차의 기운은 봄과 어울린다. 이 대표는 차 문화예절을 가르치는 전문 지도사이기도 하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마을 어르신들도 자주 찾아 차 한잔하며 머물다 가시곤 해요. 각기 다른 도자기 잔에 맛있는 차가 나오니 동네 사랑방이 따로 없죠. 찻잔엔 개실마을에서 볼 수 있는 새파란 하늘이나 자연물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작품에 일상이 자연스레 녹아드는 거죠.”

랑스튜디오는 다양한 도자기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평소에도 쓸 수 있는 생활도자기를 주로 만든다. 전사 체험, 그림 그리기 체험, 도자기 빚기 체험, 물레 체험이 있다. 전사 체험은 전사지를 도자기에 붙여서 만든다. 소요 시간이 짧고, 당일 가져갈 수 있다. 그림 그리기 체험은 특수 안료로 완성품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도자기 빚기 체험은 실제 흙으로 도자기를 빚는 활동이다. 물레 체험은 물레의 회전력을 이용해 도자기를 빚는 작업이다. 전사 체험을 제외한 세가지 체험은 도자기를 모아 한꺼번에 가마에 넣어야 해 1개월 후 택배로 받거나 다시 방문한 뒤 직접 찾아갈 수 있다.

“기자님도 공방 온 김에 체험해보는 거 어때요? 그림 그리기는 쉽고 간단해서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이 대표는 빈 도자기 그릇과 특수 안료를 꺼내 줬다. 먼저 연필로 도자기 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수채화물감 칠하듯 채색하면 된다. 연필 밑그림은 도자기를 구우면 타서 사라지니 얼마든지 그려도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생활도자기는 실용성과 창의성을 모두 갖춰야 해요. 모두 예술가이자 생활인이잖아요. 자기만의 색이 드러나면서도 편안하게 쓸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야죠.”

어떤 걸 그릴지 막막하면 주변 사물이나 자신의 일상을 떠올려 보라는 이 대표의 말에 키우는 고양이와 집에 있는 화병을 그렸다. 아이들이 체험하러 오면 엄마와 아빠 얼굴을 그리는 일이 많다고 한다. 어린아이에게도 일상 경험은 도예 할 때 영감이 되는 셈이다. 밑그림을 그린 후에는 안료에 물을 섞어 붓으로 부드럽게 칠하면 된다. 한번에 그리는 게 가장 좋다. 덧칠하면 붓 자국이 남고 색이 진해진다. 붓질 몇번만 하면 근사한 나만의 작품이 완성된다.

개실마을에서 창의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도자기 수업을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다는 이 대표. 랑스튜디오의 한옥에서 머물며 그릇을 만들어보고 감상할 뿐 아니라 직접 써보면 일상 도예의 진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그의 말이 와닿았다.

고령=박준하 기자 june@nongmin.com, 사진=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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