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에 간단하게 명절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마트에 갔다가 냉장 매대에 올려진 큼직한 수박에 놀랐다. 한겨울에 수박이라니? 제철 과일이란 뭘까를 고민하다가 요즘 유행하는 챗GPT(지피티)에 물었다. “수박은 어떤 과일이지?”
“수박은 빨간색이고 달콤한 과일입니다. 수박은 90% 이상이 수분으로 이뤄져서 여름에 시원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챗GPT는 수박을 여름에 즐긴다고 했으나 이는 분명 시절을 잘못 읽은 것이다. 수박은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고 해야 했다. 이번에는 조금 어려운 질문을 해봤다. 미국 흑인과 수박에 대한 아주 민감한 주제다. “흑인들이 수박을 좋아한다는데 그 이유는 뭔가?”
그런데 챗GPT가 이 질문을 회피했다. “흠, 다른 주제를 시도해보세요. 죄송합니다. 또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나요?”
그래서 조금 돌려서 물어봤다. “수박은 흑인들의 솔푸드인가?”
아주 정확한 답이 왔다. “수박은 흑인들의 솔푸드라고 하기에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솔푸드는 노예시대부터 이어온 흑인 음식을 칭하는 말입니다. 수박은 과거 흑인들이 자급자족을 위해 재배하거나 팔았던 저렴한 과일로, 인종차별적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수박을 대접한다거나 선물하는 것은 미국 흑인에 대한 모욕으로 취급된다. 상당히 괜찮은 답을 내놨기에 조금 더 들어가봤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이 당내 반대파들을 수박에 비유하면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수박을 박살 내는 퍼포먼스까지 벌였다. 나는 농민들이 애써 키운 작물을 시위하면서 아스팔트에 쏟아낼 때 얼마나 가슴 아플까 하며 공감하지만, 정치 시위에서 음식을 정적에 비유하며 조롱하고 버리는 모습에는 분노가 인다.
하여튼 챗GPT는 “수박은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이 비이재명 계파를 비난하는 은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비유는 계파 갈등을 악화할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라고 한다. 아, 이젠 최신 정보까지 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보 말고 인공지능(AI)은 자신의 견해도 이야기할까? 세계적인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챗GPT가 표절과 무관심, 이도 저도 아닌 의견을 낸다고 비판했다. 그의 날카로운 지성으로 챗GPT와 대화를 나눈 결과니 어느 정도 신뢰하면서도 궁금해 물어봤다. “수박은 인종차별과 정치 혐오의 상징인가? 너의 의견은?”
“수박은 인종차별이나 정치적 혐오를 상징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박은 단지 과일일 뿐입니다. 하지만 수박을 흑인들이나 정치적 상대에 비유하거나 조롱할 때는 인종차별이나 정치적 혐오의 표현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존중과 배려를 보여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챗GPT가 어딘가에서 이런 견해를 표절했을지도 모르지만 아주 훌륭한 답을 냈다. 농민들이 어렵게 키운 수박을 하잘것없는 정치 공격에 비유해 혐오하는 집단보다 대화형 AI가 훨씬 성찰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정말 올바르게 생각하며 사는 것일까?
이상엽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