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지 재배면적 매년 감소세 쌀값 폭락에 수익성 악화 원인 정성 많이 드는데 수입은 줄어 “밑지고 팔다보면 회의감까지” 학교급식 등 소비 부진도 토로 “가격 현실화 등 특단대책 필요”
“이런 열악한 상황이면 누가 친환경쌀농사를 짓겠어요? 10년만 지나면 지역에서 친환경쌀을 재배하는 농민을 찾기 어려워질 겁니다.”
진천은 충북에서 이름난 친환경쌀 생산지다. 17일 이곳에서 만난 생거진천특수미작목회 회원 얼굴엔 20년간 어렵게 이룬 생산기반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근심이 가득했다.
2010년 450㏊에 달할 정도였던 이 지역 친환경쌀 재배면적은 지난해 200㏊로 크게 감소했다. 올해는 계약재배 신청을 받은 결과 180㏊로 더 줄었다.
이처럼 재배면적이 계속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성 악화다. 친환경 재배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할 수 없어 일반쌀과 견줘 품이 많이 들고, 영농자재마저 비싸 비용은 더 들어간다. 하지만 지난해 쌀 가격은 전년에 이어 폭락했다. 2019년 40㎏들이 한포대에 8만6000원선이었던 친환경벼(유기농 기준) 가격이 3년에 걸쳐 20% 가까이 하락했다.
3.96㏊(1만1979평) 규모로 친환경쌀 농사를 짓는 이철희씨(68·문백면 계산리)는 “논두렁을 예초기로 깎고 제초작업을 손으로 일일이 해줘야 할 만큼 친환경쌀 생산에는 정성이 많이 든다”며 “하지만 지난해 쌀 가격 폭락으로 수입은 되레 20% 감소했다”고 허탈해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친환경쌀 생산에 뛰어들겠다는 청년농은 거의 없다. 작목회원 연령대는 60∼70세가 주를 이룬다. 40대는 단 한명뿐이다.
작목회원 연규장씨(66)는 “관행농법에 비해 노력과 소득·생산량 측면에서 유리한 게 하나도 없는데 환경을 살리고 국민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사명 하나만으로 어떻게 친환경쌀 재배를 젊은 농민에게 권유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강원 홍천군 서면에서 2.6㏊(8000평) 규모로 벼농사를 짓는 정종민 온새미홍천쌀작목반장(57·길곡리)은 “불과 몇년 전만 해도 25농가가 무화학 농법으로 30㏊ 규모 논에서 매년 쌀을 120t가량 수확했지만 이젠 재배면적이 6㏊로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씨는 “80㎏들이 한가마당 3만원 정도 밑지고 팔다보면 관행농법을 어렵게 탈피해 친환경 농법을 고집해온 것에 회의감이 든다”며 “친환경 유기농업에 관심 있는 인근 농가들을 규합해 만든 쌀작목반 회원들도 대거 떠나 이젠 작목반 명칭만 남아 있는 실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친환경 <산청메뚜기쌀>로 유명한 경남 산청지역 농가와 농협도 갈수록 친환경쌀 소비가 줄면서 골머리를 앓는다. 이석우 산청군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 사업소장은 “인증받기도 어렵고 농사짓기는 더 까다로운데 소득 면에선 딱히 이점이 없으니 농가도, 농협도 모두 시름이 깊어진다”며 “일반 매장에는 친환경쌀을 갖다놔도 잘 팔리지 않기 때문에 학교급식 외 남는 물량을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도 친환경쌀농가에 직격탄을 날렸다. 최근 몇년간 초·중·고등학교 학습시수가 줄면서 급식에서 쓰는 친환경쌀 수요가 급감했다. 친환경쌀은 학교급식 의존도가 높다.
산청지역에서 20년 넘게 친환경쌀을 취급해온 김홍대 오부친환경영농조합법인 대표는 “판로 확보가 어려워 친환경쌀 산업 자체가 위기에 놓였다”면서 “학교급식 의존도가 절반을 훌쩍 넘는데 코로나19로 수요절벽을 마주하면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산지 분위기를 전했다.
강원 정선군 북평면에서 1㏊(3000평)에서 친환경쌀을 재배하는 윤종국씨(51)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소비부진을 토로했다. 윤씨는 “33농가가 정선친환경농업연구회를 조직해 25여㏊의 논에서 매년 친환경쌀 160t가량을 수확한다”며 “이 가운데 100t 가까이 학교급식용으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취학인구가 크게 줄어든 결과 지난해에는 학교에 50t도 공급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학령인구 감소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자료를 살펴보면 2020년 초·중·고등학교 학령인구가 546만명이었는데 2025년 509만명, 2035년에는 383만명으로 줄어든다는 관측이다.
친환경쌀 생산기반이 붕괴할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지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먼저 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과 친환경인증의 차별화다. 한 친환경쌀농가는 “유기농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아예 쓰지 않는데, GAP는 적정량이긴 하지만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한다”면서 “소비자가 이를 혼동할 수 있으니 농림축산식품부가 나서서 친환경인증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판로 다변화도 시급하다. 도천선 진천 문백농협 전무는 “친환경쌀 유통이 대부분 학교급식에 집중된 탓에 학생수 감소로 지난해 공급량이 20% 가까이 줄었다”며 “정부가 나서서 공공기관 등을 중심으로 판로를 다양하게 확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친환경벼 매입 가격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정부는 쌀 시장격리를 하면서 친환경벼를 일반벼 특등 가격에 사들였다. 문제는 농민에게 매입한 가격보다 낮아 농협이 그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는 것.
한 미곡종합처리장(RPC) 관계자는 “친환경벼를 일반벼와 같이 취급하는 것은 농민의 영농 의욕을 꺾고 농협 경영을 압박해 친환경쌀 생산기반을 약화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며 “올해 정부 매입에서는 친환경벼에 대한 별도 가격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진천=황송민, 홍천·정선=김윤호, 산청=최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