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용수, 다원적 가치를 담다...자연 숨쉬고 문화 흐르니 농촌에 활력
[농업용수, 다원적 가치를 담다] 지금은 친수시대 여름철에만 강수 집중…농사에 불리한 환경 수리시설 진화하며 ‘쌀 자급자족 시대’ 열어 1960년대 극심한 가뭄 겪으며 개발 본격화 식량생산 단일 목적…획일적 구조로 지어져 농업·농촌 다원적 가치 주목받으며 탈바꿈 사회·문화·경제적 기능 두루 갖춘 친환경공간
농업에서 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올해는 5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남부지방을 강타하면서 물의 중요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농업용수는 농사지을 때 쓰는 물을 뜻하나 최근에는 농촌 어메니티(쾌적함 혹은 농촌다움)와 환경을 가꾸는 데도 영향을 끼친다. 농업용수의 다양한 형태와 역사, 다원적 가치 등을 알아봤다.
◆보·저수지·방조제…쌀 생산량 증가=농사의 발전은 수리시설의 진화와 함께했다. 우리나라는 연평균 강수량이 1300㎜를 웃돌지만 여름철에 집중돼 쌀 생산에 불리하다. 이 때문에 수리시설을 건설해 자연을 극복한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보(洑) 같은 수리시설은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일찌감치 만들어졌다. 전북 김제 벽골제, 경북 상주 공검지, 의성 대제지 등이 그런 수리시설이다. 덕분에 삼한시대에 이미 쌀·조·보리·기장·콩이 안정적으로 재배됐다. 물은 곧 힘이었다. 당시 군왕들은 수리시설을 소유·관리하면서 지배력을 높였다. <신라본기>에는 ‘법흥왕 18년 3월 유사에게 명하여 제방을 수리하게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수리시설을 만들고 관리하는 치수는 삼국·고려·조선 시대를 거치며 이어졌다. 1909년 한 통계에는 전국에 2780개 수리시설이 있다고 기록됐다.
해방 이후 대규모 간척사업이 진행되면서 새로 생긴 땅에 물을 공급할 다양한 수리시설이 만들어졌다. 거대한 방천제·방조제 등이 조성됐다. 간척사업은 일제강점기 때도 활발히 진행됐으나 수탈에 따른 원재료 부족으로 큰 구축물을 세우기 어려웠다. 1960년대부터는 정부가 나서 농업용수 개발사업을 추진했다. 특히 1967∼1968년 극심한 가뭄으로 지하수 개발이 적극 이뤄지고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수리시설이 만들어지면서 흰쌀밥을 배불리 먹는 ‘쌀 자급자족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친수(親水)…농업용수의 변신=과거 농업용수가 식량 생산을 목적으로 했다면 요즘은 다방면으로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1990년대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 개념이 확산하면서 식량안보 확보, 식품안전뿐만 아니라 농촌 활력 유지 등 사회적·문화적 차원에서 가치를 재발견한 것이다.
김해도 한국농어촌공사 연구원은 2013년 농업용수 가치를 분석한 보고서를 통해 농업용수 공급으로 인한 편익이 비용보다 약 28% 높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보고서에서는 농업용수의 장점으로 농업 생산성 향상, 논 침투로 인한 지하수 상승 효과, 농경지 내 양분 유지에 따른 정화 효과, 생태계 다양성 보존, 잠열(潛熱)에 따른 기온 저하, 온실가스 흡수 효과를 꼽았다. 그는 보고서에서 “일각에서는 농업용수의 잘못된 활용으로 수질 오염, 에너지 소모 등을 지적하는데 농업의 공익적인 기능을 고려하면 오히려 경제적·환경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다원적 기능을 고려한 수리시설이 확대되는 추세다. 그간 수리시설은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편의성을 강조해 획일적인 구조로 설치됐다는 비판도 있다. 일부 수리시설은 농촌의 아름다운 경치를 해치고 흉물로 남기도 했다. 환경을 파괴한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수리시설 역사가 2000년이나 되는 충북 제천 의림지는 좋은 사례다. 이곳은 곧 친환경 단지로 탈바꿈한다. 제천시는 의림지뜰을 친환경 공간으로 육성하고자 자연치유 단지를 조성하고 주제별 정원도 배치할 계획이다. 농업용수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을 보존하고 관광객을 불러 모으려는 것이다. 충남 서산 잠홍저수지도 2026년까지 친환경 저수지로 개선된다. 생태습지를 만들어 오염물질을 줄이고 수상 정원을 마련해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할 예정이다.
전문가들도 농업용수의 문화적 전개가 물의 소중함에 대한 국민 인식을 확대하고 정책적인 관심을 자아내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보고 있다.
박준홍 한국물환경학회장(연세대학교 교수)은 “남쪽지방 가뭄을 수도권에서는 작은 문제로 생각하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식량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농업용수 활용 가치와 역할을 제대로 인식해야 식량안보를 굳건히 하고 농촌 어메니티도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하 기자 jun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