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경제위기때 국가 이슈 부각 사회 곳곳서 슬림화 움직임 일어 IT산업 필두 성장시대 구가하다 코로나시기 거치며 저성장 돌입 AI 통해 자원 배분 최적화 가능 적극 활용해 저비용·고효율 구축
차를 운전하다보면 신호가 파란불인데도 교차로에 차가 한대도 지나가지 않는 공백 상태를 종종 경험한다. 출퇴근 시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신호등이 바뀌었는데도 꼬리물기를 해 교차로 중간에 차가 길게 늘어서 다른 차의 통행을 막는다. 우리는 매일 이런 현상을 경험한다. 인간과 기계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자원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한 셈이다. 더구나 요즘 같은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신호 체계는 유독 옛날 그대로다.
고비용·저효율의 상태는 비단 교통신호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에너지 사용이 대표적인 예다. 건물이나 대중교통 시설에서 온도에 상관없이 에어컨이나 난방을 작동할 때가 허다하다.
사실 우리 경제의 고비용·저효율 문제는 오래전부터 얘기됐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때는 특히 국가적인 이슈로 부각돼 사회 곳곳에 슬림화 움직임이 일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보기술(IT) 붐이 일어나며 고비용·저효율 문제는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갔다. 새로운 IT 비즈니스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며 비용 절감보다는 새로운 기회 창출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았다. 소위 생산성이라는 것은 투입에 대한 산출인데, 산출은 비즈니스 창출을 통한 생산의 확대이고 투입은 비용 절감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도모한다. 물론 IT는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도 있지만 산업 전반에 확산·응용되며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이 더 부각됐다. 이렇게 우리 경제는 IT산업의 붐을 통해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재편하면서 저성장 고비를 넘겼다.
그 이후 우리 경제는 IT산업을 필두로 2000∼2010년대 상당한 성장의 시대를 구가했고,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저성장 시대에는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이라는 돌파구를 꾸준히 모색해야겠지만, 비용 절감 또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현재 겪고 있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파고가 이를 잘 말해준다. 고비용 시대에는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춰 생산성을 제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성장 시대의 습성에 갇혀 그 터널을 벗어나는 데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AI는 더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교통시스템에서 신호등이 교통량을 감지하고 다른 교차로의 교통 상황을 연계해 유기적으로 작동하게 함으로써 전체 교통 흐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또 산업현장에서 AI가 고장을 탐지해 공장 가동률을 높일 수 있으며 건물이나 공장의 공조시스템을 AI로 자동화하여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 이처럼 일상생활이나 산업현장에서 인간이 파악하기 어려운 많은 일을 AI가 대신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 전체적으로는 인간 지능의 불합리성과 정보 불완전성을 보완하여 자원 배분의 최적화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사회 전반의 군살을 빼 몸을 가볍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저성장 시대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비용, 인건비, 임대료 등 생산비용이 많이 드는 편이라 공장을 짓고 비즈니스 활동을 하기에 그리 매력적이지 못해 많은 공장이 해외로 이전했다. 경제 안보화와 공급망 문제, 높은 해외 의존성에 따른 변동성 심화 등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점들을 생각하면 내수시장 확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려면 국내 기업이든 국외 기업이든 우리 시장에 진입하게 하는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산업현장과 공공 인프라에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저비용·고효율의 경제사회 구조를 만들어 더 매력적인 나라가 돼야 한다.
이덕희 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