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D집다] 농부가 손에 쥔 흙 한줌
입력 : 2023-03-13 00:02
수정 : 2023-03-13 02:50

지난달 서울에서 ‘농부시장 마르쉐’가 주최하는 지구농부포럼이 열렸다. ‘지구농부’는 땅을 건강하게 되돌리고 자연과 조화로운 방식으로 농사짓는 삶을 통해 자신의 자립과 함께 지구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농부를 뜻한다. 이들이 모여 함께한 지구농부포럼은 농민이 기후위기의 피해자가 아닌 회복을 위한 주체로서 활동하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자, 토양을 살리는 ‘지구농사’의 가능성과 의미를 알리기 위한 자리였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농부뿐만 아니라 소비자·요리사 등 다양했다. ‘농사에, 농부의 삶에 이렇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구농부포럼을 통해 여러 농부에게서 토양을 살리는 농사 방법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전통농법 말고도 지금 이 시대에 적합한 방법으로 유기물을 순환해 농사에 이용하는 농부의 이야기, 풀을 이용해 농사짓는 농부들, 무경운으로 상업적 농사를 성공적으로 하는 외국 사례와 다년생 나무들을 텃밭에 함께 키우는 연구자 이야기 등 포럼이 끝나고 나니 좀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뛰었다.

잠자코 생각해보니 토양을 살리는 농사가 있다면 토양을 죽이는 농사도 있는 걸까 문득 겁이 났다. 동네 할머니 한분이 예전에는 논둑에 콩을 대충 꽂아만 놔도 잘 컸는데 점점 농사가 어려워진다고 하신 게 떠오른다.

예전보다 퇴비도 비료도 더 넣어야 하고, 살충제도 제초제도 더 쳐야 하는 건 왜일까. 땅이 변하고 있는 걸까?

토양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농작물들이 자라고 영양분을 섭취하는 겉흙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땅을 갈고 농사를 지음으로써 흙이 유실되고 있다고. 그런데 이 겉흙은 자연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것이라 이것이 유실되는 것은 농사의 위기고, 인류의 위기라는 것이다. 또 식물들이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은 땅속에 있는 토양미생물 덕분인데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는 농약과 비료로 미생물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다고도 한다.

포럼에서 언급된 농사법 가운데 서양에서 유래한 재생유기농이라는 것이 있다. 유기물로 토양을 덮어 겉흙이 유실되는 것을 막고, 땅을 갈지 않고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토양을 빠르게 재생하는 농사법이다. 재생유기농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서양에서는 워낙 농지가 넓으니 초지에 다양한 풋거름 작물을 키워 땅을 덮어주지만, 우리의 문화에선 텃밭에 짚단이나 왕겨를 덮고 겨울이면 낙엽을 긁어다 밭에 넣는 것들이 비슷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생각해보니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숲에는 맨땅이 드러나는 곳이 없다. 맨땅이 드러나면 풀이 자라 그 땅을 덮는다. 아마도 땅이 무언가로 덮여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리라. 그렇다면 봄이 되어 풀과의 전쟁을 앞둔 농부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 11일은 ‘흙의 날’이었다. 흙의 소중함과 보전의 필요성을 알리자는 취지를 담은 기념일이다. 흙을 살리는 농사가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는 뜻깊은 날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모든 농부들이 흙을 살리는 농사를 실천하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안정화 종합재미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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