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맞춤형 버스] 택시처럼 말동무처럼…어르신 가실 곳으로 ‘오라이!’
입력 : 2023-03-05 23:30
수정 : 2023-03-06 05:01
다양한 농촌 맞춤형버스들
거창, 순환형 운영…면소재지서 작은마을까지
도우미 배치해 안전 탑승 돕고 짐도 들어드려
청송, 운임 무료정책 시행 … 이용객 크게 늘어
하동, 자율주행 도입으로 관광상품화 기대
승객들이 교통비가 무료인 경북 청송군 농어촌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농민신문DB
경남 거창의 버스 환승도우미 박미향씨(가운데)가 면사무소 앞 정류장에서 내리는 어르신을 돕고 있다. 박씨는 승객의 승하차를 돕는 것은 물론 안부를 묻고 말동무가 돼주며 일상을 나눈다. 거창=지영철 프리랜서 기자

농촌에 살면서 가장 불편한 점 가운데 하나가 대중교통이다. 버스 노선이 별로 없고 그나마 운행하는 버스는 배차간격이 길어 원하는 시간에 맞춰 타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몇몇 지역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지역 특성에 맞는 버스가 등장한 것이다. 택시처럼 부르면 달려오고 요금을 확 낮춰 부담도 줄었다. 한발 앞서 미래를 준비하는 자율주행 버스도 있다.

 

안전하게 모십니다 … 버스 환승도우미=“어르신들 다 타셨습니다. 이제 출발합니다. 오라이!” 경남 거창의 마을순환버스 문이 닫히자 버스 환승도우미(이하 도우미) 박미향씨(52)가 버스 출발을 알린다.

거창군은 2020년 마을순환버스를 도입했다. 읍내를 중심으로 운행하는 농어촌 버스와 달리, 면소재지에서 마을 안쪽 구석구석을 돈다. 현재 신원면·위천면·북상면 등 3개 면에서 4개 노선을 운행하며, 4개 노선에 모두 도우미가 배치됐다. 그동안 대중교통이 닿지 않던 곳까지 마을순환버스가 들어온 셈이다.

마을순환버스에 동행하는 도우미는 60세 이상 어르신들이 많은 농촌에서 이분들이 안전하게 버스를 이용하도록 돕는다. 도우미는 짐을 들어주거나 어르신들을 부축하는 것은 물론, 돌봄 역할도 한다. 3년째 북상면 노선을 담당하는 도우미 박씨는 “장날마다 뵙던 어르신이 안 보이면 마을이장님께 연락해 안부를 확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승객 박해숙씨(60)는 “짐을 받아 버스에 옮겨주고 자리도 맡아주는 데다 집 가는 동안 말동무도 해주니 정말 고맙다”며 도우미를 칭찬했다. 박씨는 승객이 타면 일일이 목적지를 묻는다. 사정에 따라 정류장이 아닌 곳에 버스를 세워야 해서다. “정류장이 촘촘히 설치되지 않아 자칫하면 어르신들이 수십분씩 걸어야 한다”면서 “조금이라도 편하시도록 신경 쓴다”고 설명했다.

박정임 버스기사(58)는 “승객을 챙기는 사람이 있어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도우미 덕을 톡톡히 본다”고 전했다.

부르면 달려가는 수요응답형 버스=승객이 전화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버스를 원하는 위치로 불러 탑승하는 수요응답형(DRT) 버스가 전국에서 운행되고 있다.

전북 익산시는 2019년 9월부터 ‘행복콜버스’라는 이름으로 여산면에서 수요응답형 버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022년 11월에 버스 제도를 개편하면서 같은 방식의 ‘수요응답형 버스’를 추가 도입했다. 요금은 두 버스 모두 300원이고 교통카드를 이용하면 환승할인 혜택도 받는다.

양현서 익산시 교통행정과 주무관은 “지난해 선보인 수요응답형 버스는 15인승으로, 기존 버스보다 작아 도로폭이 좁은 마을 곳곳을 누빌 수 있다”고 말했다.

수요응답형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은 콜택시와 비슷하다. 승객이 콜센터에 전화해 탑승 위치와 시간을 알려주면 콜센터 담당자가 버스기사에게 전달한다. 연락을 받고 바로 손님을 태우러 가는 택시와 달리, 버스는 이미 타고 있는 승객이 있기 때문에 곧바로 이동할 수는 없다. 기존 승객을 내려주고 가면 최대 1시간 정도 걸린다. 일종의 ‘예약 버스’인 셈이다. 오산면 행복콜버스 이장명 기사(54)는 “주로 읍내 병원을 가려는 어르신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귀띔했다.

누구든 어딜 가든 버스비 공짜=경북 청송엔 전국 최초로 ‘공짜 버스’가 달린다. 거주지·나이·소득과 상관없이 승객 누구나 버스비가 무료다. 다른 지역에서 온 여행객도 요금을 내지 않는다. 군은 올 1월부터 교통복지를 확대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자 버스비 무료 정책을 시행했다. 군민이 교통비 부담을 덜면 외출이 늘어나 자연스레 지역에 돈이 돌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 정책을 시행하고 한달 만에 버스 이용객이 20%나 늘었다. 본격적인 여행철이 시작되면 더 뚜렷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청송의 유명 관광지인 주왕산, 주산지, 달기약수, 얼음골 계곡 등을 무료 버스를 타고 둘러볼 수 있다.

군 관계자는 “공짜 버스 여행이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버스 이용이 늘고 자가용 이용이 줄면 탄소중립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2020년 버스 완전공영제를 선보인 강원 정선군은 65세 이상, 아동, 청소년,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무료로 버스를 탈 수 있는 교통복지카드를 지급한다. 이용 횟수나 노선 제한 없이 카드만 찍고 버스를 탈 수 있다. 덕분에 군민의 60%가 버스비 무료 혜택을 본다. 일반 버스 요금도 어른 1000원, 청소년 500원으로 서울·수도권과 비교하면 매우 저렴하다.

저상·전기·자율주행 버스 속속 도입=운전자 없이 자동으로 달리는 자율주행 버스를 농촌에서 볼 날도 머지않았다. 경남 하동군은 국토교통부가 공모하는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 지정을 신청했다. 6월에 확정되면 이후 시가지와 화개장터 일대 30여㎞를 정비한 후 농촌에선 처음으로 자율주행 버스를 도입하게 된다. 군은 주민 이동량이 많고 관광객이 자주 찾는 구간을 시범지구로 지정했다. 자율주행 버스가 본격 가동되면 그 자체로도 관광상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친환경전기버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전남 영광군은 지난해 2월 친환경전기저상버스 2대를 도입했다. 전기저상버스는 매연기관 버스와 견줘 소음과 진동이 훨씬 적다. 서울·수도권에서 흔히 보는 저상버스도 머지않아 산간벽지에서 만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1월19일 이후 농어촌 버스를 교체할 때 저상버스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했다. 출입구가 낮고 경사판이 설치된 저상버스는 전동휠체어를 타거나 보행 보조기구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타고 내릴 수 있다.

저상버스가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먼저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저상버스는 도로·인도 단차가 고르게 조성돼 있어야 하는데, 농촌지역 도로는 제대로 정비된 곳이 적다. 도로시설 높이가 저상버스보다 낮거나 경사가 급해 운행이 어려운 곳이 많다. 교통 전문가들은 “저상버스 도입에 맞춰 차를 타고 내리는 위치의 도로도 정비돼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거창=지유리, 익산=황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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