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D집다] 꽃며느리밥풀을 기리며
입력 : 2023-03-05 23:30
수정 : 2023-03-06 05:01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 ‘꽃며느리밥풀’과 ‘며느리밑씻개’엔 슬프고 억울한 사연이 담겨 있다. 고된 시집살이를 하던 며느리가 밥을 짓다 뜸이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밥알 2개를 입에 물었는데, 밥을 먼저 먹은 줄 오해한 시모에게 매 맞다 죽어 묻힌 곳에 핀 꽃이 꽃며느리밥풀이고, 날카로운 가시가 많은 며느리밑씻개는 시모가 며느리를 미워해 며느리가 변소를 사용할 때 한아름 가져다놓아 며느리를 괴롭혔다는 내용이다.

비록 옛날이야기일 뿐이지만 소름이 돋는 것은 여전히 농촌 가부장제 사회에서 며느리의 지위가 낮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가 그러라고 직접적으로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부엌에서 상차림과 설거지를 도맡아야 하고 과일을 깎아야 할 것만 같은 가부장제 문화가 농촌에는 아직 여전해서다.

예부터 유독 며느리의 도리는 엄격했다. 밥상을 차리고, 대를 잇고, 어른들과 친척들을 살펴 집안을 화목하게 하는 사람으로, 시스템을 위한 존재로 묘사됐다. 며느리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보면 돌봄 노동이 너무나 당연하게 강요됐으며, 당사자의 주체적 입장이 빠진 서사가 많았다. 자발적 희생양이 되는 시스템에 발을 들인 게 잘못일까?

실로 남녀 동거 비율이 늘어나는 것도 가부장제 가족관계 속에 뛰어드는 것이 아닌, 평등한 일대일의 관계를 지향하는 까닭이 아닐까. 더구나 재작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비혼 동거인의 관계 만족도가 결혼한 관계보다 높게 나타났다. 젊은 세대의 성평등 의식이 농촌과 상당히 다름을 보여준다.

필자는 결혼과 동시에 시가살이를 시작했기에 ‘배우자이자 며느리’로 살았다. 농촌은 시부모님이 오래 살아오신 마을이기에 며느리라는 역할은 누군가의 아내보다도 더 강한 정체성이 되기도 했다. 지역 모임에 나가면 ‘부군’은 누구냐고 묻다가 끝에는 ‘시어른’이 누구신지를 확인했다. 어느 집 며느리라는 신분이 더해졌으니 왠지 더 ‘조신’하게 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시대가 변하긴 한 건지, 내가 시부모님과 한지붕 아래서 살던 7년간 큰며느리 도리를 강요받은 적은 없었다. 오히려 시부모님께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 줄 만한 것은 없는지 먼저 알아보셨고, 혹시 동네사람에게 작은 흠이라도 잡히지 않도록 울타리 역할을 해주신 덕이다. 더구나 시부모님의 알뜰살뜰한 도움으로 삼남매 육아를 비교적 순탄하게 해냈다. 게다가 어머님은 고부간 갈등으로 고생하셨음에도, 절대 이런 고부관계를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신 분이라 도리어 며느리를 존대해주셨다. 이런 멋진 여성 어른 덕에 미래가 다르게 흘러감을 배울 정도였다.

가파르게 기울어진 돌봄 노동의 저울을 누가 바로잡겠는가? 깨어 있는 어른들의 역할과 각성한 며느리의 반란이 한몫할 것이다. 해방은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지만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둔 지금, 시골마을 작은 집안부터 가족끼리 일상의 자유와 평등으로 향하는 한걸음이 절실하며, 성평등 실현을 위한 농촌문화 교육이 필요하다.

박효정 농부와 약초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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