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할수 있어도 고립 안돼 인간관계 차단 외로움 초래 극단적 고립은 자살로 연결 고립 대응 과감한 정책 필요 친밀감·사랑 등 관계재 인정 오프라인 매장 활성화해야
불판 위에 두툼한 삼겹살이 지글거린다. 빨간 김치와 하얀 쌀밥도 보인다. 화면 속 불판 앞에서 출연자가 입을 벌린다. ‘먹방’이다. ‘먹는 방송’의 줄임말인 먹방(Mukbang)은 전세계에 수출되는 케이(K)-문화이기도 하다. 혼밥 행위를 인터넷 방송으로 보여주며, 주로 혼자 사는 사람이 이를 친구 삼아 시청한다.
유튜브에는 먹방을 비롯해 여행·캠핑·일상 등에서 이른바 ‘쿨’한 고독 감성을 연출하는 ‘나홀로’ 프로그램이 많다. 주 시청자는 혼자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전기도 없는 산속에서 홀로 살았던 구도자 법정 스님은 “홀로 사는 사람이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돼서는 안된다”면서 “고독에는 관계가 따르지만 고립에는 관계가 따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독과 비교해 소통이 없는 고립을 경계한 것이다.
고립은 고독과 다르다. 고립은 인간관계에서 완전히 차단된 것, 특히 환경 때문에 관계가 차단된 것을 의미한다. 말할 상대가 없어서 며칠 동안 먹방을 보며 외로움을 달랜다면 ‘고립된 사람’이다.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은 2000년 15.5%에서 2021년 33.4%로 두배 넘게 증가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1인 가구 가운데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을 동시에 겪는 비율이 12.8%다. 외로움은 건강을 심하게 해친다. 지속적 고립은 극한의 스트레스와 만성 염증을 유발해 관상동맥질환·뇌졸중·치매로 이어질 확률이 훨씬 높고 조기에 사망할 위험도 30%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 교수는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외로움은 심각한 사회적 위험이라고 경고했다. 한 실험에서 생쥐를 홀로 가둔 뒤 4주 후에 다른 생쥐를 투입했다. 혼자 있던 생쥐는 새로운 생쥐를 반갑게 맞았을까? 오히려 ‘침입자’로 여기고 잔인하게 공격했다. 고립된 사람도 실험실의 생쥐처럼 소외감과 무력감으로 인간 고유의 소통 본능을 상실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해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고립은 본인뿐 아니라 사회도 불행하게 만든다.
극단적 고립은 자살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2003년 이후 계속 세계 1위이다. 2021년에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1만3352명이었다. 전쟁으로 우크라이나군이 전사한 수만큼 우리나라 국민이 매년 죽어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자살 사망자수 외에 매년 15만∼30만명이 자살을 시도하고, 자살을 계획한 사람은 200만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영국은 2018년부터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했다. 일본도 코로나19 이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했다. 고립과 외로움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라는 것을 인식한 대응이다.
우리도 고립에 대응한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 사람간 교류로 얻는 친밀감·동료애·사랑 같은 관계재(Relational Goods)라는 무형의 재화 가치를 국가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대표적인 방식은 오프라인 매장 가치를 인정하고 지원하는 정책이다. 식당·카페 같은 오프라인 매장은 국내총생산(GDP)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 관계재를 만드는 사회적 가치를 가진다. 고객은 직원과 짧은 이야기 속에서 친밀감을 느끼고 외로움을 날려 보낸다. 왜 단골가게 이모의 한마디가 반갑고, 시장에 가면 신이 나고 장날에 가면 살맛이 나는가. 오프라인 가게는 고립을 지우고 공감을 키우는 관계재 생성 기지다.
고립은 도시와 농어촌을 불문하고 모든 세대에 걸쳐 있다. 고립의 거대한 위험에 맞서는 사회 전방위적인 대응이 있어야 한다. 마트에서, 버스에서, 거리에서, 아파트에서 친밀감 관계재를 무차별적으로 만들기를 기대한다.
김헌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