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조영남 ‘화개장터’
경남 하동군이 2023년 화개장터 입점자 모집공고를 내면서 호남 상인을 배제해 논란이 일었다. 우리나라는 과거 오랜 세월 영호남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반목하며 지냈기 때문에 두 지역 상인이 함께 장사하는 화개장터 상징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오죽하면 노래까지 나왔을까. 1988년 발표된 ‘화개장터’는 가수 조영남의 유일한 창작 히트곡으로 여러 사연을 품고 있다.
야당 총수 아들로 태어나 소설가로, 정치인으로 살아온 김한길은 결혼 후 미국 생활을 하다 이혼하고 국내에 들어왔다. 한편 그보다 몇년 앞서 조영남은 배우 윤여정과 결혼하고 미국에서 살다 이혼하고 국내에 돌아와 가수로 활동했다. 동병상련이었을까. 김한길은 한 신문 기사를 보고 평소 알고 지내던 조영남을 찾아갔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신문 기사는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하동과 전남 구례가 맞닿아 있는 화개장터가 영호남 화합의 장이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만 해도 화개장터는 지금처럼 유명한 시장이 아니었다. 부친 덕에 평소 남다른 정치 감각이 있던 김한길은 화개장터의 지리적 형국을 기반으로 노래를 만들면 성공하리라 여겨 가사를 썼다. 그렇게 탄생한 ‘화개장터’의 첫 소절은 이렇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김한길의 가사에 조영남이 곡을 붙여 노래가 탄생했다. 1980년대 후반 한국 가요계는 이문세·변진섭 등이 등장해 발라드가 대세를 이뤘지만 이 노래만큼은 유행을 뚫고 살아남았다. 이후 화개장터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가 생겨났고 영남과 호남의 화합 이슈가 떠오를 때면 가장 상징적인 장소와 노래로서 ‘화개장터’가 회자된다.
조영남은 노래가 수록된 음반 표지에 직접 그린 화투 그림을 사용했는데 이 그림이 훗날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조영남은 그림 콘셉트를 후배 화가에게 알려주고 그리게 했다. 이것이 대작 논란이 돼 조영남은 소송에 휘말렸고 결국 재판까지 간 다툼에서야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한길은 정치인으로 재기에 성공했지만 보수와 진보를 오가는 행보를 보였다.
영호남의 오랜 지역감정이 노래 한곡으로 해결될 일은 없겠지만 ‘은생어해 해생어은(恩生於害 害生於恩·은인이 원수로부터 나오고 원수가 은인으로부터 나온다)’이라는 말처럼 화개장터에 호남 상인이 다수 입점해 화합과 상생의 관계로 발전했으면 한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