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농사’ ‘빚농사’ 막으려면…“농가 떠받칠 ‘경영 안전망’ 필요”
생산비 솟고 판매가 추락 농축산물 최소 가격대 보전 급격한 가격변동 위험 제거 다양한 작물재배 여건 조성 ‘마진보험’ ‘금융계정’ 제안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간 지속되면서 농가 경영 위기가 가중됐다. 코로나19 장기화에 전쟁 여파까지 더해져 국제 곡물·에너지 가격은 급등하고 농가 생산비는 늘었다. 반면 쌀·한우 같은 농축산물 가격은 크게 떨어져 농가 살림살이는 팍팍해졌다.
실제 지난해 농가 경영 여건은 악화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가 영농에 투입한 농자재 421개 품목 가격을 종합한 농가구입가격지수는 전년보다 12.7% 상승했다.
비료비와 영농광열비가 각각 132.7%·66.9% 올라 농가에 부담을 더했다. 반면 72가지 농축산물 가격으로 산출한 농가판매가격지수는 2.3% 떨어졌다. 쌀을 포함한 곡물 가격은 12.1%, 한우 등 축산물 가격은 5.2% 하락하면서 전반적인 농축산물 가격을 끌어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 경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당시 농정공약으로 ‘가격변동성이 큰 농산물에 대해 시장위험관리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정부 출범 후 관련 논의는 실종됐지만, 이제라도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동환 농식품신유통연구원장(안양대학교 교수)은 “미국과 일본에서는 최소한의 농축산물 가격을 보전하고 가격변동 위험을 낮추는 안전장치를 제공하는데 우리 또한 이런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GS&J 인스티튜트는 최근 내놓은 정책 보고서에서 ‘가격위험 완충제도’를 제시했다. 이 제도는 쌀과 주요 농산물 가격이 평년 가격 이하로 하락하는 경우, 차액의 85%를 보전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장의 가격결정 기능에 따라 생산조정이 이뤄지게 하되 농산물 가격이 급락하는 위험을 막기 위해 안전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정환 GS&J 인스티튜트 이사장은 “시장격리나 생산조정 방식으로 쌀 가격하락을 억제하거나 조절하는 것은 효과가 낮고 재정 수요가 계속 늘어나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급격한 가격변동 위험을 제거해 안정적인 농가 경영을 지원하고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축산물 가격변동에 대응한 효율적인 위험관리 수단 연구’ 보고서를 통해 농가소득 안정방안으로 ‘마진보험’과 ‘금융계정’을 제안했다. 마진보험은 농축산물 가격에서 경영비를 뺀 마진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갈 때 차액을 보전하는 방법이다. 농축산물 가격과 생산량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생산비 변동까지 대응한다는 점에서 소득 보장성이 강화된 측면이 있다. 미국은 농작물과 낙농업 분야에 마진보험을 시행한다. 마진보험에 가입한 농가는 농축산물 가격하락 또는 농가 경영비 상승에 따른 소득 변동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금융계정은 농가가 일정 자금을 저축하면 그에 상응하는 이자 또는 예금액을 정부가 추가 지원하고, 농가가 소득이 낮아져 자금이 부족할 때 이를 인출할 수 있게 지원하는 정책이다. 캐나다는 농가인정소득의 일부를 금융기관에 예치하면 정부가 매칭해 금액을 보조하는 제도(농업투자계정)를 운영한다.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농가의 투명한 소득신고와 생산이력 관리가 필수다. 정부의 재정 지원 의지도 중요하다. 김태후 농경연 부연구위원은 “마진보험과 금융계정은 이미 해외에서 시행하는 만큼 중장기적 관점에서 이를 벤치마킹해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