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을 로터리에 붙은 ‘여성 1인가구 안심 홈세트 지급’ 현수막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십수년 시골에 살면서 여성 1인가구 주거환경 개선과 안전을 위한 정책을 처음 보는 듯했다. 도시에서는 1인가구에 대한 정책이 활발한데 농촌은 여전히 부모와 미혼 자녀 등 4인가구를 전형적인 가족 유형으로 본다. 그런데 여성 1인가구를 대변하는 현수막이라니 반색해 손뼉을 칠 일이었다.
홈세트 지급 대상은 전·월세로 거주하는 1인 여성이었다. 제공하는 구성품은 사물을 투과해 집 안에 숨어 있는 사람을 감지하는 ‘동작 감지 센서’와 문이 열리면 알림이 뜨는 ‘문 열림 보안장치’, 위급 상황에서 경보음이 나는 ‘휴대용 호출벨’이었다.
이 현수막은 안전용품을 공급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혼자 사는 농촌 여성에 대한 스토킹·주거침입·폭력 등을 문제로 받아들이고 사회안전망 구축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제야 혼자 사는 여성도 지역주민으로 포용하는구나’ 싶었다.
필자가 현수막에 더욱 공감하는 까닭이 있다. 20대에 귀농해 5년을 농촌에서 미혼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수십년 된 농가 주택은 잠금장치가 없어서 위험한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안전을 보장하고 있긴 하지만 성폭력 등의 범죄는 지인에 의해 발생하는 비율이 더 높다.
또한 몇번의 간접적인 경험으로 농촌에선 성차에 따른 위계질서가 강력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가부장제 집성촌을 유지하는 농촌에서는 성폭력 심각성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성폭력 피해 사실을 은폐하거나 그저 피해자 잘못 또는 불운으로 돌리며 어물쩍 덮어버리는 상황도 목격됐다.
기본적으로 여성을 독립적인 주체로 보지 않는 분위기도 만연했다. 동네에서 2년을 어울려 살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주지 않아 막막했던 적도 있었다. 아무리 농사에 뜻이 있더라도 여간한 사람이 아니면 마음이 금세 떠밀려 둥둥 떠다니고 진득이 뿌리내리기 힘들구나 싶었다.
얼마 후 결혼을 하고 시집살이를 하는 아이를 밴 며느리가 되자 동네에서 처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다. 내가 마을 분들께 먼저 인사드리고 찾아뵙지 않더라도 마을 청소를 같이 못하더라도 허용되는 정체성이 됐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예전처럼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이렇게 쉽게 존재가 인정되는 것이 씁쓸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가구는 33.4%를 차지했으며 최근 5년간 빠른 속도로 급증하고 있다. 농촌지역도 이런 인구구조 변화를 받아들여 1인가구 생애주기별 정책이 촘촘히 보장돼야 할 것이다.
또 여성농민 생존을 위협하는 사안과 불편하고 불안한 일상도 더욱 공론화해야 한다. 여성농민 삶에서 농사일보다 더 힘든 것이 주거환경이나 인간관계에 있다면 적극적인 정책과 소통으로 해결할 수 있기를 희망해서다.
박효정 (농부와 약초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