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시매최(年矢每催)’라는 말이 있다. 세월이 화살처럼 지나간다는 뜻이다. 젊었을 때보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더 빨리 간다는 말도 있다. 공감한다면 세월에 쫓기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음악평론가로 활동하며 직장인의 경쟁적인 삶에서 벗어나고 나니 스트레스가 없어졌고 세월의 앞뒤가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도 가요계의 한해를 돌아본다. 30년 전만 해도 이즈음에는 인생 노래로 최희준의 ‘하숙생’이나 이진관의 ‘인생은 미완성’ 등이 방송에서 흘러나왔다. 2000년대 들어 다른 곡으로 대체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20대부터 50대까지 폭넓게 꾸준히 사랑받는 인생 노래가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다.
2007년 나온 이상은의 13집에 실린 이 노래는 인생이라는 것은 거칠고 힘드니 여행하듯 살아가면서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위로하는 내용을 담았다.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간 끝나니까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 없으니
수많은 저 불빛에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 바라봐
가수는 노래 제목 따라간다고 했던가. 이상은은 여행 같은 삶을 살았다. 170㎝가 넘는 큰 키, 소년 같은 쾌활함과 끼를 지닌 그는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받고 데뷔했다. 이후 방송진행자·DJ로 각종 행사에 끌려다니며 쉴 틈이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런 이상은의 마음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미술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차분하게 명상하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결국 그는 미술을 공부하려고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인이 없는 이국땅은 사색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사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얻은 깨달음으로 노랫말을 지었는데 바로 ‘언젠가는’이다. 이 곡은 그런대로 성공을 거뒀지만 이상은은 과거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계속해서 미국·일본·한국을 오가며 그림을 그리고 삶을 생각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사는가?’ 하는 고민을 하며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에 심취한 이상은은 자신의 이름과 니체를 결합한 ‘리체’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드디어 자신의 본모습을 찾았다. 이제 그는 영화·드라마·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여행 같은 삶을 보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진정한 자신을 찾은 이후 얘기다. 사색하며 스스로를 찾는 일. 그것이 우리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임을 이상은 노래와 인생에서 다시 깨닫는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