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지역 집중화현상 심각
비용·위험 임계점 넘어 ‘위태’
이태원 참사·강남 호우 피해
과밀 상태 따른 문제로 발생
국가 위기로 차곡차곡 쌓여
집중·분산 적절한 조화 필요
이번 이태원 참사는 우발적으로 보이지만 매우 과학적인 배경을 지닌다. 일정 공간에 차량이 일정 밀도 이상이면 교통체증을 유발하듯 군중 보행 흐름도 유사한 성질을 지닌다. 교통체증은 길게 늘어선 꼬리로 나타나지만, 군중 보행은 압사라는 치명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차량·사람간 작용하는 압력과 전진하려는 스트레스는 밀착되고 지체될수록 극도로 높아져 조그만 자극에도 엄청난 사태로 번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러한 극단적 사태는 어디까지나 확률적 사건으로 밀도가 높을수록 일어날 확률이 커진다. 따라서 일정한 조건이 형성되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한 확률이 낮아지도록 해야 하며, 무엇보다 과밀한 상태를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수도권 집중화로 국가적 비용과 위험이 임계점을 넘어 매우 위태로운 상태에 와 있다. 부동산 가격의 불안정성만 해도 수도권의 초과 수요가 주요 원인이다. 지역 크기보다 과도한 인구 유입이 그 근본 원인이다. 공급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신도시 공급은 추가적인 인구 유입을 초래해 또 다른 초과 수요의 원인이 된다. 과거 수도권 신도시 건설 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가 이를 잘 입증해준다.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 덩어리가 가진 힘으로 스스로 네트워크를 창출하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있다. 네트워크가 크면 클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시간이 흐를수록 지역간 양극화 현상으로 고착화된다. 양극화라는 새로운 균형상태로 스스로 조직화하는 힘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이 거대한 흐름을 거역하기 어렵다. 부동산과 관련한 여러 정책이 동원되지만 이러한 네트워크 분포구조를 변화시키지 않은 한 그 효과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동일한 부동산 정책이 인구밀도가 적은 지방에는 잘 작동되는 반면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권에는 잘 작동되지 않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올여름 수도권 집중호우로 발생한 강남의 잠김 현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은 도로율이 높아 비가 와도 땅으로 잘 흡수되지 않고, 배수시설 용량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정된 공간에 너무 많은 인구가 모여 있어 그에 상응한 도시 기반시설을 갖추는 데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든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점들이 결국 큰 피해로 나타났다. 수도권에서 일어난 일이라 언론 기사가 집중되다보니 물이 차는 반지하 주택이 외신에까지 보도되는 등 국가 리스크로 차곡차곡 적립되고 있다.
지나친 공간구조의 치우침은 효율적 자원 배분보다는 비정상적인 경제행위를 유발해 버블 형성으로 이어지기 쉽다. 높은 인구밀도를 감당하는 인프라를 급조하다보니 부실공사가 많아 크고 작은 재난들이 끊이질 않는다. 홍수·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면 그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재빨리 ‘재해·재난 대책 전면 재검토’와 같은 언어들이 난무하지만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잠잠하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고, 그사이 국가의 리스크는 점점 커져만 간다.
집중은 어느 정도 필요하며 불가피한 현상이다. 또 집중은 높은 효율성을 보장하기도 한다. 비용을 절감시키고 규모의 경제효과를 누려 생산성을 증대해 성장의 동인이 된다. 문제는 지나친 집중이다. 과도하게 집중돼 있으면 구성원들간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 자유롭고 독립적인 다양한 행위가 불가능하다. 구성원들간 동조화 현상이 쉽게 일어나 행동의 획일화 현상으로 이어진다. 부동산 가격 폭등과 같은 경제 버블현상뿐만 아니라 대형 재난·사고같이 높은 시스템 리스크를 잉태한다. 국가의 리스크를 줄이려면 집중의 효율성과 분산의 다양성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덕희 (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