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한경애 ‘옛 시인의 노래’, 아름다운 노랫말…가을愛 떠나다
입력 : 2022-11-14 00:00
수정 : 2022-11-12 22:00
20221112220620605.jpg
‘옛 시인의 노래’가 수록된 한경애 독집.

거리의 은행나무가 노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라디오와 유튜브에서 수많은 가을노래가 흘러나온다. 이럴 때 빠질 수 없는 곡이 가수 한경애의 ‘옛 시인의 노래’다. 1980년대 크게 성공한 가을노래임에도 2000년대 들어 회자되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

대중은 한경애를 가수로 기억하지만 그는 1977년 KBS 프로그램 ‘새 노래 고운 노래’ 진행을 맡아 데뷔했다. 이후 가수이자 성우로서 방송 활동을 이어나갔기 때문에 그의 히트곡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경애의 목소리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한경애를 세상에 알린 작품은 가사가 아름다운 ‘옛 시인의 노래’다. 어느 시인이 이별을 경험하고 마른 나무에서 떨어지는 이파리를 ‘자신’으로, 사랑하는 상대를 ‘나무’로 비유한 내용을 담아 인기를 끌었다.



마른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잎새 하나 / 그대가 나무라 해도 내가 내가 잎새라 해도 / 아름다운 사연들을 태우고 또 태우고 태웠었네 / 뚜루루루 귓전에 맴도는 낮은 휘파람 소리 / 시인은 시인은 노래 부른다 그 옛날의 사랑 얘기를



노래는 큰 인기를 누린 만큼 재밌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1982년 MBC 라디오가 개최한 ‘아마추어 노래자랑’에 7000여명이 참가했는데 이때 출전곡 1위가 바로 이 노래였다. 다른 하나는 KBS2 라디오에서 청취자들이 전화를 걸어 노래대결을 펼치는 ‘전화 노래자랑’이라는 프로그램이 송출됐는데 1991년부터 1994년까지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도 ‘옛 시인의 노래’였다. 만약 1980년대에 노래방이 있었다면 윤수일의 히트곡 ‘아파트’와 매년 노래방 애창곡 1위를 다투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과거에는 시(詩)에 곡조를 붙였을 만큼 아름다운 노랫말이 많았다. 요즘 아이돌그룹 노래나 힙합 음악 가사는 문자를 옮긴 것처럼 짧고 단절돼 있다. 나이 든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줄임말을 쓰거나 일부러 맞춤법을 틀리게 쓰는 일도 있다. 스마트폰의 영향이다.

기원전 철학자이자 예술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를 예술의 기본 원리로 봤다. 200년 팝 음악사를 돌이켜보면 미국 가수 로버스 앨런 짐머만은 영국 시인 딜런 토마스에게 영향을 받아 자신의 예명을 ‘밥 딜런’으로 바꾸고 젊은 시절을 바쳐 평화와 반전(反戰)을 노래했다. 그는 반세기 동안 세계인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2016년 대중가수로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문득 시의 부재가 아쉬운 세상이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