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이 문장] ‘행복한 책읽기’
입력 : 2022-01-26 00:00
수정 : 2022-01-2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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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서는 보행자가 말 탄 사람보다 이동 속도가 빨랐다. (28쪽)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의 유고를 담은 <행복한 책읽기(문학과 지성사)>는 문학 담론만 아니라 인문학 지식이 가득하다. 중세 도로는 군사·상업용 도로와 마을 길로 나눠졌다. 국왕의 길로 불리곤 했던 군사·상업용 도로는 마을을 우회해 물자를 수송하는 데 쓰였다. 마을길엔 말을 탄 사람과 마차·보행자가 다닐 수 있는데, 마차와 말을 탄 사람은 보행자보다 통행 권리가 앞섰다. 하지만 좁은 길이나 다리 위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좁고 복잡한 길에서는 마차나 말 탄 사람이 보행자에게 양보해야 했다.

여행은 극소수 상인만이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여행할 이유도 없었고 잘 정비된 도로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도시 기반 구축을 목적으로 도로를 건설한 로마와 달리 중세 때는 도로를 건설한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자주 다니다보니 길이 만들어진 것에 가까웠다.

중세 도로를 관리하는 책임은 도로 근처에 있는 마을에 있었다. 인력이 부족해서 자연재해 때문에 도로가 무너지고 막혀도 방치되기 쉬웠다. 시내 중심가를 제외하고는 도로를 포장하는 일도 드물어서 대부분 흙길에 지나지 않았다. 질퍽질퍽하고 사람들로 붐비는 도로에서 말을 탄 사람보다 걷는 사람의 이동이 더 빠른 것은 당연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은 수레를 널리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조선이 가난하다고 지적했다. 넓은 길이 많지 않았지만 이용하다 보면 생겨나지 않겠느냐고 봤다.

박균호 (북칼럼니스트·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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