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이 문장] ‘뿌쉬낀’
입력 : 2022-01-19 00:00
수정 : 2022-01-1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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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무서운 시절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755쪽)



유럽의 변방 로마노프왕조를 세련되고 강력한 러시아제국으로 변모시킨 표트르대제(1672∼1725년)는 1703년 네바강 진흙 늪지대에 새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불리게 된 이 신도시의 건설은 난관이었다. 9월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다음해 5월까지 내리기 십상이었으며 수질은 나빴고 대홍수가 2∼3년 주기로 덮쳤다. 우리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화려한 궁전, 웅장한 관공서, 매혹적인 백야의 뒷면에는 이 화려한 수도를 건설하려고 동원된 노동자와 하층민의 희생이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구절로 유명한 푸시킨의 탄생 200주년(1999년)을 기념해서 출판된 <뿌쉬낀(열린책들)>에 수록된 서사시 <청동 기마상>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건설에 투입된 농노와 죄수의 희생을 고발한다. 러시아제국 11대 황제인 니콜라이 1세(1796∼1855년)는 푸시킨에게 러시아의 자랑인 표트르 초대 황제 시대의 역사를 쓰도록 했다. 그러나 푸시킨은 하층민의 노동력을 착취한 당시 상황을 비판했고 니콜라이 1세는 이에 분노했다. 시인이 죽기 전까지 <청동 기마상>은 출간되지 못했다.

1837년 푸시킨은 아내와 염문설이 있던 장교와의 권총 결투전에서 져 사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인의 비극적이고 이른 죽음 덕분에 <청동 기마상>은 예상보다 빨리 세상에 나왔고 널리 읽혀졌다. 

박균호 (북칼럼니스트·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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