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술은 죽었다. (268쪽)
1830년 당시 28세였던 한 프랑스 작가는 훼손돼 과거의 영광이 사라진 성당 탑 계단 구석에 손으로 새긴 ‘숙명(아니키아)’이라는 단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작가는 성당 복원을 자신의 ‘처절한 숙명’으로 삼고 6개월 동안 집필에 몰두했다. 1831년 성당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소설이 완성됐다. 이 소설이 바로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작가정신)>이다.
<파리의 노트르담>은 종지기 꼽추의 사랑 이야기보다는 혁명과 전쟁을 거치면서 파괴되고 외양간으로 전락한 노트르담 성당의 복원 여론을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쓴 것이다. 소설의 서사와 크게 상관이 없는 성당 내부 구조와 아름다움에 그토록 큰 비중을 할애한 이유다.
금속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의 건축물에 강한 애착을 두고 있던 빅토르 위고는 건축물을 인류의 주요 장부이며 돌로 만든 책이라고 생각했다. 인류는 자신의 흔적이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사상을 건축물에 담았다는 것이다. 빅토르 위고가 살았던 시절에는 건축술이 소통의 수단이었다.
15세기 금속 인쇄술이 등장하면서 건축보다 책이 인류의 생각을 담기 시작했다. 인쇄술이 득세하면서 건축술은 여위고 오그라져갔다는 것이 빅토르 위고의 생각이었다. 책 때문에 건축술이 죽었다는 빅토르 위고의 생각은 적중하지 않았다. 종이책인 <파리의 노트르담> 덕분에 성당이 재건됐고 인쇄술 덕분에 건축술은 더욱 발달했기 때문이다.
박균호 (북칼럼니스트·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