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백 대신 수매통으로 벼 운반
노동력 절감…작업효율 높아 광양농협·동강농협 등서 도입
고령농가 제초작업 고민 해결 콘크리트 논두렁도 이용 많아
전남의 벼 재배농가들 사이에서 단순한 발상의 전환으로 노동력을 절감해주는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농촌의 만성적인 일손부족 문제를 아이디어로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벼 수확이 한창이던 10월, 영암군 학산면 일대 들에서는 예전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이 펼쳐졌다. 수확이 끝난 벼를 옮길 때 기존 톤백이 아닌 수매통을 사용하는 농가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수매통은 금속재질의 역사다리꼴 형태의 용기다. 고형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만큼 별도의 인력 배치 없이 벼를 옮겨 담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용량도 톤백(1t)의 두배다. 현장에서는 “사용해보니 인력과 시간이 절감돼 좋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영암에서 벼를 재배하는 문호씨(73)는 “톤백은 2∼3명이 트럭에 올라타 잡아줘야 하는 데다 잘못 잡으면 운반 중에 쓰러져 벼가 쏟아지는 사고가 나기도 한다”며 “그런데 수매통은 사람도 필요 없고 사고위험도 없으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적지 않았는데 그런 위험이 크게 줄어 좋다”고 덧붙였다.
수매통으로 작업능률이 향상된 것은 미곡종합처리장(RPC)도 마찬가지다. 수매통은 측면에 두개의 홈이 있어 지게차가 지게발을 끼워 들어올릴 수 있다. 덕분에 RPC로 들어온 벼를 건조시설에 쏟아부을 때 지게차만 있으면 된다. 기존 톤백을 사용할 경우 지게차가 톤백을 들어올릴 때 도와줄 사람과 벼를 쏟아부을 때 톤백을 풀어줄 사람 등 3명의 작업자가 더 필요했었다.
이같은 장점이 알려지면서 수매통을 활용하는 농협도 늘어나고 있다. 전남에선 광양농협을 시작으로 나주 동강농협, 영암 서영암농협·월출산농협 등이 수매통을 도입했다. 김원식 서영암농협 조합장은 “수매통 도입으로 수매작업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었을 뿐 아니라 필요 인력도 줄어 전체적으로 비용이 절감됐다”면서 “무엇보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으로 인력 운용에 제한이 많아 수매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RPC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수매통이 수확 시기 ‘핫 아이템’이라면 수확 이후에는 콘크리트 논두렁이 인기다. 벼 수확이 끝난 최근 고흥 들녘에서는 콘크리트 논두렁 설치작업이 한창이다. 논두렁 규격에 맞춰 제작된 콘크리트 블록을 논두렁에 씌우는 작업이다. 콘크리트 논두렁을 설치하면 풀이 자라지 않아 제초작업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거꾸로 선 U자 형태로 생긴 이 콘크리트 논두렁은 고흥의 벼 재배농가 서동칠씨(46)가 개발했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논두렁 제초작업이 너무 힘들어 이를 해결할 방법을 궁리하다 만들어낸 아이디어 제품이다. 서씨는 “여름마다 좁은 논두렁에서 예취기를 들고 제초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 고민하다 개발한 것”이라며 “우리 논에 설치했더니 주변 농가들이 서로 해달라고 하는 바람에 사업화하게 됐다”고 전했다.
해마다 제초작업으로 골머리를 앓던 농가들은 콘크리트 논두렁을 반겼다. 고령화 등으로 풀베기에 어려움을 겪는 데다 친환경벼 재배단지가 늘어나면서 제초제를 사용하기도 힘들어진 상황이라 콘크리트 논두렁이 좋은 대안이 된 것이다. 나주 등 전남의 다른 지역에서도 농가들이 지방자치단체나 농협 등에 지원을 요청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고흥의 벼 재배농가 김중권씨(58)는 “노동력 절감으로 비용이 줄어들 뿐 아니라 풀로 인해 발생하는 바이러스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농가들의 관심이 커지자 고흥군은 2019년부터 지자체 지원사업으로 콘크리트 논두렁 조성사업을 펼치고 있다. 군이 비용의 50%를 지원해 콘크리트 논두렁 설치를 돕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농가의 호응이 좋아서 내년에도 콘크리트 논두렁 조성사업에 예산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영암·고흥=이상희 기자 montes@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