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뽀얀 국물에 바다향 가득, 탱글한 속살 입안서 톡톡 ‘피굴’
입력 : 2022-11-30 00:00
수정 : 2022-11-29 15:46

[향토밥상] (20) 전남 고흥 ‘피굴’ 

찬바람 불수록 살오르는 굴

껍데기째 삶아 속살만 떼내

차게 식힌 국물에 넣어먹어

쪽파·참깨·김가루 고명으로

겨울보양식 ‘낙지팥죽’ 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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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바다향이 입맛을 돋우는 ‘피굴’. 겨울철 기력을 보충하기에 좋은 보양식이다. 고흥=지영철 프리랜서 기자

굴은 찬바람이 세질수록 통통히 살이 오르고 맛이 든다. 바다의 우유라는 별명답게 아연·칼슘·비타민 등 영양분이 풍부해 천연 자양강장제로 불린다. 서해·남해를 가리지 않고 굴이 나는 지역마다 특색 있는 굴 요리가 발달했는데 그 가운데 전남 고흥의 피굴은 현지가 아니라면 맛보기 어려운 향토음식이다.

고흥 사람에겐 피굴은 특별할 것 없는 집밥 음식이다. 그러다보니 정해진 레시피도 없다. 만드는 사람의 입맛·손맛대로 요리한다. 굴을 껍데기(피·皮)째 삶아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면 알맹이를 따로 떼어낸다. 국물을 차게 식히고 떼어낸 굴을 담가 먹으면 된다. 집집이 개성은 고명에서 드러난다. 널리 알려진 것은 송송 썬 쪽파와 참깨다. 여기에 누구는 참기름이나 김가루를 뿌리고 누구는 청양고추를 올려 얼큰하게 먹는다. 부족한 육수를 대신해 맹물을 추가하거나 다시마·멸치 등으로 뽑은 육수를 섞어 먹기도 한다.

지역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음식이지만 정작 정식 메뉴로 내놓는 식당은 많지 않다. 조리하는 데 품이 많이 들어서다. 아무리 껍데기를 깨끗이 씻는다고 해도 통째로 삶으면 국물에 불순물이 남기 마련이다. 이것을 식혀 침전물을 가라앉히고 웃물만 따라내는데, 먹기 좋은 상태가 될 때까지 이 과정을 여러번 반복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저녁에 피굴을 만들어두고 다음날 먹게 된다.

고흥에서 나고 자란 정복만씨(64)는 피굴이야말로 엄마가 가족을 위해 애정으로 짓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예전에 어머니는 찜통에 굴 속살이 위로 올라오게 조심히 쌓아 찌다가 껍데기에 국물이 차면 그것만 따라내서 육수를 잡았어요. 그래야 국물이 깨끗하니 맑고 진하니까요.”

기껏해야 어린이 손바닥만한 굴 껍데기에 국물이 생기면 얼마나 생길까. 그걸 먹을 만큼 모으는 것도 일인데 기껏 모은 국물이 흐르기 전에 꺼낼 수 있도록 불 앞에서 꼬박 기다리는 것도 대단한 정성이다. 피굴은 귀찮은 과정을 버텨야 맛볼 수 있는 진미다.

두원면에 있는 ‘다미식당’은 피굴을 내놓는 몇 안되는 곳이다. 백반정식을 시키면 반찬으로 국물에 굴이 담겨 나온다. 숟가락으로 건더기와 국물을 한번에 떠 입에 넣는다. 탱글한 식감과 국물의 감칠맛이 조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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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식 백반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또 있다. 역시 지역에서 흔히 먹는 낙지팥죽이다. 기력 보충에 좋은 낙지와 팥을 함께 조리해 나오는데 겨울 보양식으로 그만이다. 이름만 들으면 고급 음식 같지만 실은 여기에도 비밀이 숨어 있다. 과거 크기가 커 질긴 낙지는 생이나 숙회로 먹기 어려웠는데 그걸 연해질 때까지 가마솥에 푹 삶아 먹는 것이다. 다소 떨어지는 재료를 현명하게 활용한 생활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피굴과 낙지팥죽은 항상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둘 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여느 백반집이 그렇듯 주인장이 상황에 맞춰 찬으로 내놓는다. 그래서 미리 가기 전 확인을 하거나 예약을 하는 편이 좋다.

고흥=지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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