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 개정 계획
각 지자체에 공문 보내 독려
농가 “야생멧돼지 감축 우선 획일 적용…행정편의적 조치”
정부가 모든 양돈농장에 8대 방역시설 의무화를 추진해 농가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에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전국 양돈농장 중요 방역시설 강화계획’ 공문을 보냈다. 8대 방역시설은 내·외부 울타리, 입출하대, 방역실, 전실, 물품반입창고, 방조·방충망, 축산 관련 폐기물관리시설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예방을 위한 개별 농장 단위 핵심 차단방역 시설이다.
현행 ‘가축전염병예방법(가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8대 방역시설 설치 의무는 중점방역관리지구에 속한 양돈농가로 한정된다. 모든 양돈농가가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시설로는 외부 울타리와 물품반입창고만 규정돼 있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가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돼지 사육업의 소독설비 및 방역시설의 설치 기준에 8대 방역시설을 포함시킨다는 계획이다.
시행규칙 개정 이전이라도 내년 2월말까지 8대 방역시설 중 전실·방역실·내부울타리·입출하대 등 4대 중요 방역시설을 우선 설치하도록 지자체와 농가를 독려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전실은 12월까지, 방역실은 내년 1월까지, 내부울타리와 입출하대는 내년 2월까지로 설치기한을 설정했다. 또 지자체가 각 농장으로부터 4대 중요 방역시설 설치 이행계획서를 취합해 5일까지 농식품부에 제출토록 했다.
이후 지자체별로 매주 이행실적을 점검하게 되며 정해진 기한까지 4대 시설 설치를 마무리하지 못한 농가는 내년도 축산 방역 관련 정책자금 지원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해 양돈농장에서 ASF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백두대간을 통한 멧돼지 ASF 확산세도 우려되기 때문에 이러한 선제적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양돈업계는 정부의 8대 방역시설 의무화에 반발하고 있다.
대한한돈협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한돈농가와 협의 없이 일방통행식으로 추진하는 방역시설 의무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번 대책을 전면 철회하고 생산자단체와 협의를 통해 실행가능한 방역대책을 마련하라”고 성토했다.
충북 제천의 한 양돈농가는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인 대대적인 야생멧돼지 개체수 감축 노력 없이 개별 농장에만 방역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건 무책임한 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남 양산의 한 양돈농가도 “지역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데 8대 방역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라는 건 비과학적인 방역조치이자 이중규제”라고 주장했다.
박선일 강원대학교 수의학과 교수는 “농가 주변에 출현하는 야생동물의 종류나 빈도가 지역마다 모두 다른 실정이기 때문에 전국에 일률적으로 8대 방역시설을 설치하게 하는 건 행정편의적인 조치”라면서 “농가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한 방역시설을 설치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이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