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후위기 농업 피해, 국가가 책임져야
입력 : 2021-10-08 00:00
수정 : 2021-10-06 23:08

20211006231309226.jpg

보험금은 실제 피해액 못 미쳐

예산 확보해 공적 보상 마련을

 

추석 연휴 전 전북지역에 갔다가 친환경농사를 짓는 농민으로부터 ‘도열병 등으로 인해 벼 피해가 크다. 올해 쌀 수확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실제로 김제·부안 등 전북지역에서는 피해가 심각하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함께 일하는 활동가가 ‘충남 홍성에도 벼 도열병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를 했다. 현장에 가보니 수확을 앞둔 벼 이삭이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전국적인 상황은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미 피해를 본 농민들에게는 심각한 ‘재난’ 상황이다.

이런 피해가 기후위기와 연관된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에도 긴 장마로 인해 병해가 심했고 쌀 수확량이 감소한 지역이 많았다. 정부는 쌀값이 올라서 농업소득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평균의 함정’에 빠지면 안된다.

지금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 피해는 전역에서 균일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지역에 따라 피해규모가 다르고 한 지역 내에서도 편차가 있다. 어떤 종자를 심었는지, 농법이 친환경인지 관행인지에 따라서도 피해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지 않고 평균으로 얘기하는 것은 피해를 본 농민에게는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심각한 피해를 봤는데 ‘평균’을 들이대며 ‘오히려 농업소득이 늘지 않았느냐’고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쌀 외의 작물 피해도 심각하다. 이상저온·태풍 등으로 인한 피해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국가 차원의 대책이 미흡한 상황이다. 농작물재해보험이 있지만,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하는 농업 피해가 ‘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보험은 농민들이 보험료를 내고 가입해야 혜택을 볼 수 있다. 물론 보험료의 많은 부분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고 있지만, 농민이 일정액을 자부담하고 가입해야만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이에 따라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농가는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보험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보험금 지급을 줄이기 위해 농민이 아니라 ‘사업자’ 입장에서 피해조사나 제도 운영을 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보험금이 지급돼도 실제 발생 피해액엔 많이 못 미칠 수밖에 없다. 현장농민들은 이런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근본적으로는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 피해는 사회 전체가 같이 책임지는 것이 옳다. 기후위기가 논밭 농사, 과일농사 짓는 농민들이 책임질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해온 것은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한 산업이고, 또 이를 바탕으로 대량의 소비를 해온 도시다. 물론 농업에서도 온실가스가 배출돼왔고 이 역시 줄여야 한다. 그러나 그 규모는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에 비할 바가 아니다. 축산부문에서 온실가스가 많이 발생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산된 육류를 대량으로 소비해온 것은 도시다.

따라서 기후위기로 인해 농민에게 발생한 피해를 ‘보험’이 아니라 공적으로 ‘보상’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실제 피해를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 그에 소요되는 예산은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가칭) 기후위기 농업 피해 국가책임법’ 제정이 절실히 필요하다.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또한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 피해에 대해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도 필요하다. 특히 현장농민이 이 조사에 참여해야 한다. 농업통계도 현장농민의 목소리를 반영해서 개선해야 한다. 탁상정책, 탁상행정으로는 기후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