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인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 다닐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가운데 하나는 “변호사인데 왜 농업기관으로 오셨나요?”이다. 당시는 사내변호사라는 것도 흔하지 않았던 때였고 농업 관련 공공기관의 사내변호사는 아마도 필자가 최초일 정도로 드물었다. 게다가 장기근속하는 경우는 더욱 찾기 어려워서 필자가 실용화재단에서 10년 근무하는 동안 재단의 상급기관인 농촌진흥청의 변호사는 5명도 넘게 바뀌었을 정도였다.
다시 위 질문으로 돌아와서 솔직하게 답변을 하자면 농업계에 거창한 뜻이라든가 포부를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다. 실용화재단에 입사하기 전 모 로펌의 소속 변호사로 정신없이 일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고, 그 와중에 이직이라는 카드를 쥐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실용화재단에 지원하기 전에는 농진청이라는 기관이 어떤 업무를 하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농업에 문외한이었다.
관심 있는 것만 보인다고 했던가. 재단에서 근무하면서 그제야 농업과 관련한 수많은 법률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농지 소유와 관련한 농지법 문제, 종자와 관련한 문제, 흔히 6차산업이라고 부르는 농촌융복합산업 문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서 식품으로 눈길을 조금만 돌리면 식품위생법을 포함한 더 엄청난 법률문제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창업 지원 업무를 하면서 농식품 관련 창업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사업 과정에서의 법률문제는 상상을 초월함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어렵게 시작해 키워온 사업 모델이 정부의 규제로 하루아침에 불법이 되는 경우도 지켜본 적이 있다. 이처럼 법과 관련해선, 문제가 되기 전까지는 그 심각성을 모른다. 조그마한 악성 종양이 나중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최근 ‘그린랩스’라는 농업 창업기업이 200억원의 투자 유치를 발표하면서 국내 농업분야 투자금액 신기록을 경신했다. 필자가 처음 농식품 창업 지원 업무를 할 때와 비교하면 정말 격세지감이다. 당시 농식품 창업기업을 위한 초기 펀드와 관련해 국내의 유명 투자사에 메일을 보낸 적이 있는데 부드러운 답변이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씁쓸한 사연도 기억난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오히려 벤처업계에서 농식품 창업기업을 발굴하려 먼저 연락이 올 정도다. 얼마 전 모 인터넷 매체는 ‘애그리테크(Agritech)’라는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 농업분야를 소개할 정도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가고 있다.
이와 같이 농식품 창업기업이 각광받는 시기에 발맞춰 자연스럽게 농업 관련 법률문제에 대한 문의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분야에 대해 일반적인 법조계의 관심은 낮기만 하다. 법조계가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과거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필자가 농업계에 들어오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인지 농업계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기회가 없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때문에 변호사들은 정작 필요한 곳엔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영화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가 국밥집 아줌마의 아들 진우를 도우면서 인생이 바뀌었던 것처럼 필자와 농업의 만남은 필자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당연히 필자는 부족하나마 앞으로도 이 길을 걸어가겠지만 블루오션인 농업에 더 많은 변호사가 애정을 갖고 뛰어들어 농업계에 산적한 수많은 법률문제를 함께 풀어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최재욱 (법무법인 디라이트 파트너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