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식량권 법제화가 시급하다
입력 : 2019-07-08 00:00
수정 : 2019-07-07 15:35

유엔이 공표한 인간의 ‘기본권’ 정부·정치권, 헌법반영 노력을
 


식량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국가적 차원에서 식량은 국가존립과 직결된다.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아 식량부족이 일상화되면 사회혼란은 가중되고, 국가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식량은 개개인의 생명을 좌우한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음식은 절대적이다. 적절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면 질병에 걸리거나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

식량의 중요성, 그것이 미치는 영향에 비춰볼 때 현재 우리나라 식량사정은 심각하다. 한 나라의 식량소비량 중 어느 정도가 국내에서 생산·조달되는가를 나타내는 식량자급률은 2017년 기준 48.9%로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게다가 단위면적당 농약사용량은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많다.

유전자변형농산물(GMO) 수입 역시 상위권에 속한다. 식생활을 보면 우리 국민 상당수가 안전하지 않은 음식을 먹고 있다.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그래도 비교적 안전한 음식을 먹고 있지만,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이나 젊은이들, 홀로 사는 어르신들은 형편없는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정부는 합당한 식량정책을 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식량문제를 시장에 맡기기보다 정책을 통해 더 많이 개입해야 한다. 그래야 낮은 식량자급률문제, 안전하지 않은 음식, 소득에 따른 음식의 차별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정부의 정책기반을 식량권에 둬야 한다. 식량권은 유엔(UN·국제연합)의 세계인권선언에서 공표된 인간의 기본적 권리다. 인간은 누구나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유엔에서의 논의를 거쳐 식량권 보장까지 발전했다. 이에 따르면 개인은 식량권을 갖고, 국가는 식량권을 존중·보호할 의무를 진다.

우리나라는 유엔 회원국이다. 유엔이 식량권 도입을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역대 정부는 국민의 식량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헌법에 국민의 기본권인 식량권을 포함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식량권을 담은 하위법령도, 식량권을 담당하는 부서도 없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의 식량정책은 시장의 먹거리 수급기능을 보완하거나 영세민 등 사회적 약자에게 부족한 식량을 제공하는 시혜적 성격을 띠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헌법에 식량권이 명시돼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큰 차이가 난다. 헌법에 식량권이 명시되고 식량권 관련 하위법령이 제정되면 정부가 헌법적 의무로서 국민의 식량권 보장을 위해 식량권에 기반을 둔 정책을 펼치게 된다. 이로 인해 국민의 식생활이 크게 향상된다. 반면 헌법에 식량권이 명시돼 있지 않으면 식량은 시장의 문제가 되고 정부는 수급조절 등 시장기능이 실패할 때만 대응하게 된다.

식량권이 이처럼 중요함에도 현재 논의되고 있는 헌법개정에 식량권은 쏙 빠져 있다. 우리나라의 식량사정, 그리고 식량권의 보장이 가져오는 긍정적 결과를 생각할 때 당연히 헌법에 식량권을 포함해야 한다. 또 하위법령에서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의 국민 식량권 보장의무, 그리고 식량권을 보장하지 않을 때의 법적 조치까지 적시해야 한다.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모든 국민의 제대로 된 식생활을 위한 식량정책을 실시하려면 식량권 법제화가 필수적이다. 식량권 법제화는 정부와 정치권의 의무라 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점을 염두에 두고 식량권 법제화를 서두르기 바란다.

김종덕 (경남대 석좌교수·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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