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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수첩

[취재수첩]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최근 오리 유통업자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지난겨울 오리 사육 휴지기제 시행 이후 오리산업 자체가 붕괴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사정은 이랬다. 그는 2017년 이맘때까지 500여곳의 식당에 오리고기를 납품해왔다. 그런데 오리 사육 휴지기제로 겨울철 오리 생산량이 평년의 반토막 수준으로 감소하면서 값이 급등했다. 평년 기준 생체 3㎏당 6000~7000원이던 산지값이 올 4월 9400원까지 치솟았다. 그러자 오리고기를 취급하던 식당들이 오리고기 메뉴를 없애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그의 거래처는 200여곳밖에 남지 않았다는 호소였다. 그는 “정부는 휴지기제가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방역대책이라고 하는데, 그 비용을 계산할 때 오리산업 전체의 피해액이 아닌 사육농가에 지급하는 보상금만 고려한다”면서 “이대로 가면 오리 가공·유통 업자와 전문 음식점들은 모두 고사하고 말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그의 얘기처럼 그간 정부는 오리 사육 휴지기제로 피해를 본 대상을 사육농가에 국한해왔다. 계열화업체, 가공·유통 업자, 음식점 등 오리로 생계를 유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해는 고려하지 않았다. 실제로 2017년 처음 실시된 오리 사육 휴지기제가 산업 전후방에 유발한 피해는 쉽사리 외면할 수 없는 규모였다. 한국오리협회에 따르면 그 피해액이 약 680억원에 달했다. 우선 육용오리 사육농가의 소득이 84억5760만원 감소했다. 계열화업체는 235억7600만원가량 판매수익이 줄었고, 종오리농가와 부화장도 종란 납품과 부화량 감소로 손해를 봤다. 후방산업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사료 생산 감소액만 약 268억4500만원이었고, 왕겨·동물의약품 등의 피해액도 38억600만원가량 됐다. 그럼에도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만든 가축 사육제한 실행지침(안)에는 수급안정이나 후방산업에 대한 지원 얘기는 없다. 올겨울에도 이대로 휴지기제가 시행되면 지난번처럼 수급불안정으로 가격이 폭등하고 소비시장이 위축될 건 불 보듯 뻔하다. 이 점을 염려한 오리협회는 오리고기 비축 지원사업이라도 추진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사업은 정부가 9~12월 계열화업체로부터 생산물량의 30%가량을 수매해 냉동 비축해두면, 계열화업체가 이듬해 1~4월에 비축 당시 시세대로 다시 사가는 방식이다. 협회는 이러한 단기대책 외에도 오리 사육시설 이전 및 개선 등 중장기 지원사업 역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산업의 ‘붕괴’가 ‘방역대책’인 나라가 어딨느냐”는 외침을 가볍게 들어서는 안된다. 그들도 전체 오리산업의 한 일원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무(사육농가)만이 아닌 숲(오리산업) 전체를 보고 대책을 내놔야 할 이유다. 윤슬기 (농민신문 산업부 기자) sgyoon@nongmin.com
윤슬기 이미지 윤슬기농민신문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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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숲

[생각의 숲] 맛을 기다리다
한끼의 식사를 하기 위해 해장국집을 찾아갔다. 그 식당은 내 스마트폰으로도 풍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을 만큼 소문난 곳이었다. 식당이 가까워져 가는데 소란스럽다. 식당 앞 수레에서는 특산물 꿩엿을 팔고, 옆에는 테이크아웃 커피숍이 있다. 식당이 거느리고 있는 식솔들로 보인다. 인적 드문 곳이었는데 분주하게 변했다고, 2년 만에 왔다는 일행 중 한명이 말했다. 우리가 먹으려는 것은 고사리해장국, 아침식사다. 식당으로 곧장 들어설 수가 없었다. 대기석이 있고, 대기줄이 있다. 재빠르게 순번을 받았다. 51번을 받았는데, 25번 입장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를 기다려야 할까? 예전의 나 같았으면, 그리고 나 혼자였다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돌아섰을 것이다. 그리고 맞은편에 보이는 해장국집에서 느긋하게 먹었을 것이다. 음식을 기다리는 인내력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꼭 이 집이어야 할까. 그 수많은 끼니 속에서 꼭 무엇을, 필사적으로 먹어야 한다는 적은 없었는데.” 이런 중얼거림이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여행을 왔고,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 일행 중 누구도 기다림을 피로해하지 않았다. 나도 기꺼이 일행 속에서 함께 기다렸다. 아침 햇살을 피할 수 있는 담장가에서 수다를 떨며 맛을 기다렸다. 먼 길을 돌아 맛집을 찾아온 일행들에게 기다림은 필수다. 줄이 길수록 맛집의 선택은 옳았다고 입증된다. 줄이 없으면 의심스럽다. 기다리다보면 허기는 더 선명해지고 식욕은 더 맹렬해진다. 맛을 기다리면, 맛이 더 강화된다. 40분을 기다려 51번 호명을 받고 음식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고사리를 고아 미음처럼 되직해진 해장국을 받았다. 처음 보는 해장국이었다. 이 지방에서 나는 고사리이고, 예전에는 더 진하게 달여서 먹었다고 한다. 수저를 가져가려니 잠깐! 경고음이 들린다. 먹기에 앞서 무슨 의식을 치르듯이 일행들은 휴대폰으로 밀착 사진을 찍어댄다. 그 사진은 곧장 전송되고, 부러움의 댓글로 돌아온다. 그리고 식사가 시작된다. 허기져서 먹는 것이 아니고, 다음 일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음식 그 자체에 몰두한다. 음식을 즐기는 순수한 시간이 이어진다. 이때 표정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더 풍부하다. 마주앉은 여성은 맛에 환호한다. 흥겨워 어깨가 출렁인다. 파문처럼 웃음꽃이 번져간다. “기다리길 잘했네, 되게 맛있네, 나도 사진 올려야지, 오늘은 고추가 신의 한수네, 이렇게 먹으니까 좋네.” 손뼉까지 친다. 먹는 것을 자랑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내 삶은 내가 꾸미고, 내 음식은 내가 선택한다. 단체급식을 받듯이 식사하는 시대가 아니다. 누군가 만든 특별한 맛에 환호하고, 복종하기도 한다. 그 맛은 결코 사치품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먹는 것은 수단만이 아니고, 얼마든지 목적이 되기도 한다. 한끼 식사를 한다는 것은 나를 꾸미는 시간이다. 그때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꿈을 공유하는 순간이다. 맛을 기다린다는 것은 기뻐할 나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허시명 (막걸리학교장)
허시명  이미지 허시명 막걸리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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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추석 특별기고] 한가위, 달빛 아래 노닐다
가을 달빛 가장 아름다운 ‘추석’ 환히 차오른 보름달 바라보며 조상에게 넉넉한 수확 감사하고 가족 안녕과 행복 기원하는 날 전통에 조상의 지혜 오롯이 남아그 의미 되새겨보는 한가위되길 팔월이라 한가위는 달도 밝구나 우리 벗님 손을 잡고 달맞이 가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팔월이라 한가위는 달도 밝구나 저 달님이 다 지도록 즐겁게 노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달맞이 가세’ 박목월 작시, 홍난파 작곡) ‘추석(秋夕)’은 음력 팔월 보름이다. 일년 중 달(月)이 가장 둥글고 크게 뜨며 보름달이 주는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날이다. 추석은 ‘가을의 한가운데’라는 의미에서 ‘중추절(仲秋節)’ 또는 ‘한가위’라고도 한다. 추석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인데 ‘가을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추석이 되면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거나 송편을 빚어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오곡백과 풍성한 추석에 밤낮으로 즐거운 놀이를 하던 조상들을 떠올리며 추석의 의미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농작물을 수확하는 추석 무렵은 만물이 풍요로운 시기다. 특히 한가위만큼 먹거리가 풍족한 시기는 없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일년 농사가 마무리돼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한가위야말로 일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까지 있다. 한가위 때처럼 늘 풍족한 삶을 살기 바라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추석에는 가장 일찍 수확한 벼를 조상에게 바치고 제사를 지냈다. 새로운 곡식이나 과일을 조상에게 바치는 것을 ‘천신(薦新)’이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햇곡식과 햇과일을 종묘와 사당에 천신해 조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전통사회에서는 출가외인이라 해서 며느리들의 친정 나들이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8월 추석 무렵이면 일가친척이나 가족들을 양쪽 집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 회포를 풀기도 했다. 중간에서 만난다고 해 ‘중로보기’ 또는 ‘반보기’라고 했던 이 풍속에는 가족간의 그리움과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담겨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이런 풍속은 이미 옛 이야기가 됐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조상의 지혜가 담기지 않은 것이 없으며 가족간의 사랑이 묻어나지 않은 것이 없다. 추석날 저녁 보름달이 뜨면 마을 뒷산이나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특히 보름달을 남들보다 먼저 보면 좋다고 여겨 서둘러 높은 곳에 올라가 달맞이를 했다. 달맞이를 하면서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고 가족들의 안녕과 다음해 농사에 풍년이 들기를 기원했다. 또 한가윗날 보름달 아래에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춤을 추며 놀기도 했다. 추석의 대표놀이인 강강술래다. 주로 호남지역 여성들의 집단놀이였으나 지금은 거의 전국화된 놀이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전술적인 목적에서 만든 놀이라는 견해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노는 놀이만을 강강술래라고 하지는 않았다. 남생이놀이·고사리꺾기·청어엮기·지와밟기·꼬리따기·가마등놀이·문지기놀이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강강술래 놀이를 했다. 특히 강강술래는 놀이로서뿐만 아니라 풍요와 다산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생활환경이 변하고 살아가는 모습도 무척 달라졌다. 새로운 풍속들이 생겨나면서 앞서 언급한 전통 세시풍속들은 많이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전통 세시풍속에 담긴 조상들의 지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도 분명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황금연휴인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 가족간의 정을 나누고, 함께 소원을 비는 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추석의 풍속이라 하겠다. 온 가족이 모여서 정성껏 만든 음식으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며 조상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그 이상 더 의미 있는 추석은 없을 것이다. 최명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최명림 이미지 최명림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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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농촌과 고향사랑 새기는 한가위로
민속명절 추석 맞아 대이동 시작 고향농촌 시름에도 관심과 애정을 곧 추석이다. 폭염과 가뭄에 이은 집중호우가 전국 농촌에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한가위는 그 시련을 극복하고 풍성한 결실로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누게 하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추석 연휴 민족 대이동도 시작된다. 올 추석에도 3500만명 넘는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족과 친지들이 고향마을에 한데 모여 서로 위로하고 다독이며 정을 나누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 품과 같은 휴식을 주는 안식처가 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추석이 다가오면 길이 막히고, 경제사정이 어려워도 먼 길을 마다치 않고 고향을 찾는다. 그러나 한걸음만 더 다가서서 보면, 요즘 농촌마을엔 시름이 한둘이 아니다. 이상기상이 상시화하면서 폭염이나 집중호우 같은 자연재난이 되풀이돼 농사짓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틈만 나면 농산물값이 폭등했다며 물가인상 주범 몰이를 서슴지 않는다. 20년 전 수준까지 떨어졌던 산지 쌀값의 회복세에도 눈총은 따갑다. 그렇게 회복된 쌀값은 1㎏당 2200원 수준이다. 한가위가 되면 모처럼 마을이 북적이지만, 연휴가 지나면 농촌마을에는 나이 든 부모들만 남는다. 매년 귀농·귀촌 가구가 늘고 있으나 급속한 노령화와 인구감소 추세를 따라잡지 못한다. 농촌마을이 속해 있는 전국 읍·면·동 가운데 43%는 소멸위험에 처해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몇년 후 고향마을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올 추석엔 모두가 한데 모여 고향마을과 농촌에 대해 얘기를 나누자. 조상 대대로 지켜온 고향과 농촌마을을 자식들에게도 물려주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부가 2019년 시행을 약속한 고향사랑기부제(고향세)가 어떤 제도이고, 농촌에서 왜 도입을 서둘러야 하는지 마을사람들과 의견을 나눠보자. 민속명절인 추석이 정신없이 먹고 마시며 놀다가 부모가 싸주는 농산물과 추석 음식을 싣고 휑하니 떠나는 연례행사가 돼서는 곤란하다. 앞으로도 풍요롭고 넉넉한 한가위 보름달을 고향마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올 추석은 농촌과 고향사랑을 새기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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