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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군 삶기술학교

버스가 하루에 두 번 다니는 시골 마을에 청년들이 모였다. 주변은 온통 논밭이지만, 농사짓는 대신 카페를 열고 그림을 그린다. 마주치는 청년과 어르신마다 이야기꽃을 피운다. 빛바랜 동네에 알록달록 색깔이 물들었다. 글 지유리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시골을 핫플레이스로 바꾼 청년들

사진 충남 서천군 한산면은 자랑거리가 많은 동네다. 품질 좋은 모시와 그윽한 향기를 지닌 소곡주, 임금이 썼다던 부채까지 명품과 그 명품을 만드는 장인이 널렸다. 그러나 이들 자랑거리도 이제는 모두 옛날이야기다. 현재 한산면의 전체 인구는 2000여 명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대부분 60대 이상이다. 옛 영광만이 전래동화처럼 내려오는 평범한 시골 마을이 됐다.

그런 한?면이 지난해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채색 단층 건물이 즐비하던 동네에 알록달록한 건물이 들어섰다. 쓰러져가던 창고는 주황색 박공지붕을 이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색깔을 입은 거리엔 허리 굽은 할머니들 사이로 청년들이 오간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남성이 동네 어르신과 반갑게 인사를 한다. 저 멀리 오래된 외제차가 달려오더니 길가에 정차하는데 차에서 내린 이는 앳된 얼굴의 20대 여성이다. 그가 향한 카페의 외관은 서울 도심에서나 볼 법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시골 마을에 발랄한 공간이 드문드문 자리 ?았다.

[전원생활 배우는 삶기술학교] 1년 사이 서천의 풍경을 바꾼 이는 삶기술학교의 구성원들이다. 삶기술학교는 지역축제 기획사업을 해온 소셜벤처회사인 ‘자이엔트’의 김정혁(33) 대표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세운 단체로, 청년들이 지방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삶기술학교가 여러 시골 중에서도 서천에 자리 잡은 것은 김 대표 때문이다. 천안과 서천을 오가며 일을 하다 서천에 매료된 김 대표가 3년 전 이곳에 먼저 터를 잡았다. 그와 함께 일하던 이들도 서천을 찾았다. 여유 없는 서울살이에 지친 이들도 내려왔다. 그렇게 서른 명의 청년들이 삶기술학교에 모였다.

청년들은 지방에서 무얼 하며 살아갈지 고민했다. 그저 유유자적 시골생활을 즐기는 이도 더러 있었다. 그러다 각자 가진, 대단하진 않지만 어딘가엔 쓸모 있을 작은 기술을 나눴다. 밥하기·수영·목공·연극 등 취미처럼 즐기던 일들이 이곳에선 귀한 삶의 기술로 대접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시골에서 사는 데 가장 필요한 기술은 ‘넉살’이다.

오며 가며 마주치는 동네 어르신에게 살갑게 말을 건넬 줄 알아야 한다. 도시에서 자란 이들에겐 어려운 일이지만 삶기술학교 청년들은 지? 장인에게서 기술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에게는 한산모시 짜기를, 건넛집 아저씨에게는 소곡주 빚기를 배우면서 일상을 공유하는 이웃이 되었다. 덕분에 청년들은 마을 주민 누구와도 편히 지낼 수 있을 만큼 동네에 적응했다. ‘집 앞 골목길을 비질하라’는 어르신의 구박도 웃어넘기고 점심을 먹으러 들른 식당에선 주인아주머니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다.

[청년 모이자 마을 어르신 삶 달라졌다] 서천에 정착하면서 청년들의 삶이 바뀌었다. 서울에서 연극 스태프로 일한 이준영 씨는 쫓기듯이 살? ,476;울살이에 지쳐 있을때쯤 우연히 삶기술학교를 알게 돼 서천에 내려왔다. 한 달 동안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즐기다가 여기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고선 아예 짐을 싸 내려왔다. 천안서 가방 디자이너로 일한 한장흠(35) 씨는 서천에서 만난 친구들과 창업을 했다. 한산모시로 장식한 가방을 만들어 파는 일이다. 얼마 전 온라인에서 클라우딩 펀드를 투자받아 이제 곧 첫 제품이 출시될 예정이다.

삶기술학교는 청년뿐 아니라 마을 어르신의 삶도 바꿨다. 조용했던 마을이 떠들썩해지면서 일과가 달라졌다. 청년?이 운영 하는 카페에 들러 수다를 떠는 게 일상이 됐다. 워낙 일손이 부족 했는데 젊은이들이 있으니 묵혀둔 일이 술술 풀린다. 무엇보다 뿌듯한 변화는 명맥이 끊긴 전통문화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청년들이 모인 서천이 옛 영광을 찾아가는 중이다.

지난해 9월 정식 학기가 시작된 삶기술학교는 올 3월 4기 학생을 받는다. 수업이 더 다양해졌고 새로운 공간이 늘었다. 청년과 마을 어르신이 함께 쓸 ‘공유부엌’이 문을 열었고 100년 역사를 가진 ‘아성 대장간’이 공방으로 변신했다. 올봄, 서천은 그 어느때보다 다채?? 변화를 준비 중이다.

[‘서천살이’ 택한 청년들] <이준영 “여유로운 일상 좋아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씨는 지난해 서천에 전입신고를 마쳤다.

연고도 없는 곳에 정착한 이유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여유로운 일상이 좋아서다.

스무 명 넘는 또래가 함께 지내니 심심하지 않아 만족스럽다. 올해는 한산마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잘 운영해 정착 기반을 다지는 게 목표다. 시골의 여유와 도시의 자유로운 삶을 모두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김정혁 “시골서도 청년이 할 일 많아요”> 서천의 매력을 가장 먼? 알아본 김씨. 삶기술학교를 세워 청년들을 불러 모으고 카페·공방·게스트하우스를 기획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중에서도 그를 가장 바쁘게 하는 건 마을 어르신과의 만남이다. 마을의 궂은 일을 도맡으면서도 찡그리는 일이 없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다들 김씨부터 찾는다.

<한장흠 “한산모시에 반했어요”> 한산에 머물면서 한산모시가 완성되는 전 과정을 배웠다.

옷감으로서 질도 좋고, 무엇보다 역사와 문화가 있기에 널리 알리고 싶단다. 자신이 만드는 가방에 한산모시를 장식해 이달부터 판매를 시작한다. 천좾에서 살지만 서천에도 사무실을 두고 자주 왕래한다. 서천에 집을 구해 사는 건 아니지만, 이만하면 명예 서천주민쯤 된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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