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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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군 홍동마을 김세빈 씨

누가 농촌생활이 여유롭다고 했나. 세 가지 일을 하고 그보다 더 많은 취미생활을 즐기며 바쁘게 사는 이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이 넘쳐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글 지유리 기자 사진 고승범(사진가)

시골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사진 해가 중천에서 살짝 기운 오후, 충남 홍성군 홍동마을에 들렀다. 마을 입구 벤치에 앉아 있으니 골목길 끝에 자전거 한 대가 나타난다. 이윽고 자전거가 밝맑도서관 앞에 멈춰 섰다. 자전거를 타고 온 단발머리 소녀는 밝맑도서관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사서 김세빈(24) 씨다.

도서관 안은 조용하다. 1층 열람실에는 서너 명이 자리를 잡았다. 모두 꼼짝 않고 책에 푹 빠져 있다. 조용한 실내에서 오직 김씨만이 바쁘다. 책상에는 살펴봐야 할 서류가 한가득이다. 엊그제 기증받은 책은 사무실 한쪽 귀퉁이에 마구잡이로 쌓여 있다. 복도 게시판에 마을소식지도 새로 달아야 하고 반납받은 책은 다시 책장에 정리해야 한다. 종종걸음으로 도서관을 누비다가 틈틈이 걸려오는 전화도 응대해야 한다.

도서관 내부가 대충 정리되자 김씨는 밖으로 향한다. 뒷마당에 있는 산양 네 마리를 돌보기 위해서다. 하루에 한 번 먹이를 주고 우리를 살피는 일도 김씨의 몫이다. 태어난 지 6∼7개월쯤 되어서 한창 손이 많이 간다.   그뿐 아니라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는 공부모임에 참석해 책 읽기도 해야 하고 글도 써야 한다. 모임에서 발간하는 소식지 편집 마감 기한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적한 시골에서 누구보다 바쁘게 사는 김씨의 직업은 세 개다. 밝맑도서관 사서이자 산양 주인이고, 마을학회 ‘일소공도’의 일원으로 마을소식지도 만들고 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전원생활이라지만 그에게는 24시간이 모자라다.

사서·편집자·산양 주인으로 산다 김씨와 홍동마을의 첫 인연은 고등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 전북 임실군에서 나고 자란 김씨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다 이곳 풀무농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염소를 기르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전원생활을 택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17살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홍성에 첫발을 디뎠다.

3년 동안 농사일을 배웠지만 농사일이 퍽 적성에 맞진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으려는 생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선 농촌을 떠나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다시 3년을 보내고 먼저 홍동마을에 정착한 친구의 권유로 이곳에 돌아왔다.

“부모님 댁에 있을 때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았어요. 홍동에 오라고요. 그때 딱히 할 일이 마땅찮아서 큰 계획 없이 편한 마음으로 돌아왔죠.” 처음 몇 달은 취미 삼아 푸성귀를 길렀다. 이내 흥미를 잃고선 무얼 할까 고민하던 중에 김씨가 책 읽기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안 마을 사람들이 밝맑도서관을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첫해는 오전에 텃밭을 일구고 오후엔 도서관으로 출근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연히 도서관 관계자를 만났는데 제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니 도서관 사서를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덕분에 도서관에서 일한 지 2년쯤 됐어요.” 김씨는 홍동에 살면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料을 하고 싶은지를 비로소 찾았다. 공부모임에서 배운 것들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일이다. 글을 써서 마을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할 때쯤 또다시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마을학회 ‘일소공도’에서 웹진을 만드는 데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도시에 살았다면 쉽게 할 수 없었을 일들이 시골에 내려온 이후로 하나둘 현실에 펼쳐지는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마을독본’이라는 계간지도 만든다. 글을 쓰진 않고 대신 편집 디자인을 맡았다. 단행본 편집기술은 온라인에서 독학으로 익혔다. 아직 서툴고 어려운 게 많아 힘들지만, 책 한 권이 완성되면 여간 뿌듯한 게 아니다.  “대부분 시골엔 일자리가 없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마을에 사람이 오면 그 사람에 맞춰 일자리를 만들어주더라고요. 도시에서 살 때보다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것 같아요.” [농촌살이 모험은 끝나지 않았다] 홍동에 돌아온 지 올해로 4년 차. 이제 제법 규칙적인 생활에 정착할 만도 한데, 김씨는 여전히 변화를 모색 중이다. 2년 가까이 일구던 텃밭을 정리하고 산양을 기르기 시작한 것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부모님의 목장을 어깨너머 보기만 했므 뿐 어떻게 기르는지 부딪치면서 배운다. 공부모임도 늘 새롭다. 주제나 읽고 싶은 책에 따라 모임을 구성해 참여한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모여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김씨의 생활계획표엔 빈틈이 없다.

누구보다 농촌살이에 잘 적응하고 있지만 어려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제 또래들이 전원생활에 대해 가지는 두려움 중의 하나가 사생활이 없다는 점일 것 같아요.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고 지낸다고들 하잖아요. 저 역시 여러 모임을 하는 터라 이웃과 가족처럼 지내요. 그렇다고 무작정 모든 걸 공유하는 삶을 지향하는 건 별로인 것 같아요. 개인적인 삶과 공동체적인 삶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해요. 저 역시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김씨의 말마따나 시골에서의 삶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다. 친구에 이끌려 홍동에 왔고, 마을 사람에 이끌려 직업을 찾은 김씨에게는 더욱 그렇다.

요즘 김씨가 가장 관심을 두는 건 마을 공부다. 마을이 어떻게 형성되고 운영되는지, 어떻게 해야 좋은 마을이 되는지를 공부한다.

“언젠가 다른 지역, 다른 동네로 이사 갈 거예요. 산세가 깊은 곳으로요. 강이나 바다가 있으면 더욱 좋고요. 그곳에서 잘 적응해 좋은 마을 사람이 되려면 미리미리 공부해둬야지요. 연고 없는 곳이 두렵지 않느냐고요? 글쎄요.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재밌는 삶을 위해 모험을 하듯 농촌을 찾은 김씨. 해맑게 웃으며 건네는 그의 말에서 강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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