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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군 지리산학교

몇몇 문화예술인들이 사는 시골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재능을 나누고 학생이 되어 배우는 학교가 생겼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의 지리산학교 이야기다. 글 강영식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시골에 문화를 뿌리내리다

사진 “언니, 잘 지냈어? 왜 그렇게 꼼짝 안 해? 연락 좀 하고 그러지.”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 예뻐졌네.” “그래요? 점 뺀 거밖에 없는데….” 1월부터 열린 경남 하동군 악양면 지리산학교의 프랑스 자수반 수업시간. 오랜만에 만났는지 두 학생 사이의 인사가 정겹다. 수업이 시작되자 김규나 선생(52)이 시범을 보인다. 어떤 학생은 따라 하고, 다른 학생은 금방 배운 대로 자수를 놓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농담을 주고받는 분위기로 보아 꽤 오랫동안 만난 친숙한 사이인 듯싶다.

학생 중 한 명인 유성란(62) 씨는 7년 전 악양면 입석마을로 귀촌했다. 자수반은 2년째 다니고 있다. 그동안 참여했던 수업은 퀼트반·야생화반·발효산채요리반 등등 꽤 여럿이다. 지리산학교에 다닌 지는 올해로 6년째다.

“시골은 문화소외지역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아니에요. 오히려 도시보다 문화적 혜택을 더 누리고 있죠. 자수 놓고, 야생화 관찰하러 산으로 다니고, 막걸리와 강정도 만들어보고…. 게다가 연말에는 직접 만든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까지 여니 정말 바빠요.” 유씨는 지리산학교에서 배울 때마다 즐겁다고 한다. 산에 갈 적마다 새로운 산야초를 계속 발견하는 기쁨, 자신의 작품을 전시회에 선보일 때의 보람 덕분이다.

선생이 학생 되고, 학생이 선생 되고 하동읍 먹점마을의 권예빈 부녀회장(59) 역시 비슷했다. 지리산학교가 생긴 초창기부터 다니고 있다는 최씨도 퀼트반 등을 거쳤다.

“퀼트와 자수 작품 전시를 1년마다 한 번씩 열거든요. 전시회 횟수가 늘수록 서로가 성장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요. 마음 맞는 ?은 수강생들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죠.” 선생인 김씨는 지리산학교에 처음 발을 디딘 2014년부터 야생화반 수업을 듣는 수강생이다. 야생화반 선생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에 골인한 러브 스토리는 지리산학교에서 유명하다.

그리고 2017년부터 자수반을 맡고 있다. 물론 지금도 야생화반 수업을 듣는 학생이기도 하다.

“우리 사이는 흔히 아는 선생과 학생의 관계가 아니에요. 다른반에서는 선생이 학생일 수도 있거든요. 그냥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주고, 내가 모르는 것을 배우는 거죠. 그게 지금까지 지리산 학교가 유지되는 비결이에요.” [배워서 남 주자!] 채향란(54) 씨는 지리산학교와의 인연 덕분에 가죽공예를 직업으로 삼은 경우다. 지리산학교에 다니기 위해 2011년 귀촌했다.

그리고 처음엔 뭔지도 모르고 무조건 퀼트반에 등록했다. 퀼트반 수업을 계기로 가죽공예로까지 배움이 이어진 것이다.

“제가 가죽공예를 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귀촌하기 전엔 가죽공예 경력도 전무했고요. 그런데 올해로 가죽공예의 길로 들어선 지 8년째입니다. 이제는 제가 가죽공예 선생이랍니다.

우리 사이의 모토는 ‘배워서 남 주자!’예요. 학생으로 배워서 선생으로 가르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학교의 누가 무얼 배운다고 하면 기다려져요. 분명히 나중에 우리에게 가르쳐줄 테니까요.” 농민에게도 지리산학교는 생활의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다. 차를 재배하는 이수윤 씨(53)는 요즘 목공반에 부지런히 출석한다. 특히 자신이 직접 물품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 차 농사 지으며 운영하는 다실에 필요한 탁자 등을 목공반에서 제작하기도 했다. 물품을 완성한 뒤 느끼는 뿌듯함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단다.

“지리산학교가 생기기 전에는 이런 취미를 익힐 수가 없었어요.

농촌에는 이런 기회가 거의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그런데 학교덕분에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 여간 즐겁지가 않아요.” 이씨는 그게 지리산학교가 문을 연 2009년부터 지금까지 변함 없이 이어진 기조라고 한다. 학교는 말 그대로 ‘우연히, 어쩌다’ 가 시작됐다. 당시 악양에 터를 잡고 살던 이들 중에는 목공예가와 사진가·시인 등이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사진촬영을 배우러 부산까지 다닌다는 말을 꺼냈다. 시골에선 사진을 배울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가르쳐줄 사람이 있는데 뭐하러 그먼 곳까지 가느냐.” “아예 학교를 세우는 게 어떠냐.” 이것이 목공예가는 목공반, 사진가는 사진반, 시인은 글쓰기반 선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문을 연 계기였다. 지리산 인근에 사는 문화예술인들이 주축이었다.

[학기 끝나면 동아리까지 결성] 지리산학교는 1년에 3학기로 운영된다. 1∼3월 사이가 1학기다.

4월은 녹차철이라 쉰다. 5∼7월 2학기를 진행한 뒤 휴가철인 8월엔 잠시 문을 닫는다. 그리고 9∼11월 3학기를 운영하고 연말인 12월엔 휴강한다. 한 학기 수강료는 20만 원. 개설 과목은 숲길걷기반·민화반·브런치반 등등 다양하다. 지리산학교에선 학기가 끝났다고 끝이 아니다. 함께 수업 들은 동문들끼리 동아리를 결성한다. 퀼트반의 ‘소풍’, 야외촬영반의 ‘봉창’, 발효산채요리반의 ‘장꼬방’ 등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소풍과 봉창은 매년 연말이면 회원들이 만든 작품으로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단지 1회성 전시회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목공반을 맡은 목공예가 김용회(53) 씨는 “졸업한 학생 중 4∼5명은 공방을 차려 본격적으로 목공의 길로 들어섰다”고 귀띔했다.

아예 가게를 차린 경우도 있다. 퀼트반 동문 4명이 의기투합해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인근에? 지난해 3월 ‘평사리#’의 문을 열었다. 이름엔 ‘평사리의 가치를 반올림하자’는 뜻이 담겼다. 자신들이 만든 옷과 베개·인형·가죽제품 등을 판매하는 가게다. 연말마다 개최하는 전시회에 내놓은 작품들이 잘 팔리는 데다가 계속 만들어 쌓아두느니 본격적으로 판매해보자는 뜻을 모았다.

“핸드메이드 제품을 선호하는 단골들이 꽤 생겼어요. 잘 팔리니 동문들의 창작 욕구도 더 높아지고 있답니다.” 그래서 최경화 대표(50)는 기회가 닿으면 가게를 더 넓힐 계획이란다.

지난해로 개교 10주년을 맞은 지리산학교. 시골에 문화를 뿌리 내린 학교가 앞으로 10년 후엔 또 어떤 열매를 맺을지 자못 궁금하다.

[이창수 지리산학교 교장] ● 젊은이들이 찾는 문화 모색 “지리산학교는 출발이 그랬듯 자생적으로 운영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우리 이거 한번 해볼까?’라는 제안이 나오면 새로운 반이 만들어지니까요.” 그렇게 10년 넘게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화가 형성됐다고, 사진가인 이창수 교장(60)은 강조했다.

그게 시골로 사람들을 끌어모은 원동력이란다. 지리산학교에 다니려고 귀농ㆍ귀촌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다는 것. ‘내려가려는데 빈집 있느냐’는 문의도 꽤 받았다.

이 교장은 2019년 맞은 개교 10주년이 학교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계기라고 여긴다. ‘개교 10주년 기념집 지리산학교 이야기’ 책자를 펴낸 이유도 걸어온 10년을 정리하고 미래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이젠 젊은이들이 시골로 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요. 그게 학교가 지속될 수 있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제나 영화제, 록 페스티벌 같은 문화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그렇게 젊은이와 문화, 그리고 지역을 하나로 묶슴 작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교장은 지리산학교에서는 가르치는 일을 ‘재능 기부’라기보다는 ‘재능 공유’라고 표현한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주는 게 아니라 함께 나눈다는 의미다. 먼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지리산학교의 생명력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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