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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의 그림작가 정지윤 씨

정지윤 씨는 여행하다가 본 시골의 모습이 좋아 남편과 전북 진안으로 귀촌했다. 작업실의 창밖 배경이 도시 야경에서 산 너머 은하수로 바뀐 지 10년. 그는 자연의 정취를 느끼며 작업하는 삶이 좋다. 글 원용찬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사진 및 그림 제공 정지윤

자연 속에서 그리는 사람 사는 세상

사진 10년 전, 정지윤 씨(44)는 젊은 시절 가졌던 꿈인 전국 여행을 실현했다. 남편 차장필 씨(45)와 함께 7개월 동안 전국을 돌아다녔다. 남루한 차림을 하고 허름한 숙소들을다닌 시간은 부부에게 삶의 전환기였다. 강원 영월에서우연히 본 사진전 속 노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보며 감동하기도 하고, 어느 산골 마을에서 집에 머물다 가라는 걸사양했다가 남편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너랑 여행 못하겠다고, 좀 더 쉴 수 있었는데 괜히 비 맞으며 걷게 됐다고, 남편에게 한 소리들었죠.”
그들은 진안군 동향면에 우연히 들렀다가 지금 사는 마을을 발견했다. 아름다운 산세와 녹음이 우거진 모양새가 좋았다. 인상 좋은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조용한 동네였다. 마침 빈집이있다는 말에 부부는 여행을 마친 뒤곧장 이곳으로 왔다. 정씨 생각에도 참 준비 없이 실행한 귀촌이었다.



[일상 속 삶의 무대를 그리다]
“저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모습과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제 눈에 보이는 것을 세밀하? 묘사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왔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정씨는 아이들을 위한그림책을 만들거나 삽화(일러스트)를 그리는 일을 해왔다. 2011년엔 정씨의 작업실이 있던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을 세밀하게 묘사한 <우리 동네 한 바퀴>를 냈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동네 곳곳을 세밀하게 묘사한 책으로,
정씨는 그림을 그리려고 건물 지붕에까지 올랐다.“재개발로 사라지기 전 동네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어요. 그림에 참고하려고 펜스를 쳐둔 철거 예정지를 촬영하다가 관계자들에게 잡히기도했죠.”
경복궁의 곳곳을 설명하는 책 <세종대왕을 찾아라>도 그렸다. 궁내 전각의 기와 개수를 일일이 묘사할 만큼정성을 쏟았다. 남편과 함께 도보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거북이 마을>시리즈를 냈다. 전국 곳곳에 있는 예쁜 시골 마을을 담은 책으로,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동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사군자를 그리던 사람이 왜 삽화를 그리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저는 대중이 그림을 친숙하게 느끼고, 그림을 보며 대화를 쉽게 나눌 수 있는 매체가 일러스트라 생각했어요.”
귀촌을 한 이후에는 진안귀농귀촌인협의회가 발간하는 소식지 <350>에 자신의 삶과 동네 모습을 만화로 남겼다. 진안군의 해발고도에서 이름을 딴 <350>에는 에어컨과 냉장고 등 전자제품을 지양하자며 내려왔다가 일상의 불편함에 머리를 숙였다는 내용, 자동차 없이 시골에서 사는 이야기가 그림으로 담겼다.



[조용한 작업장이자 휴식처가 된 자연]
“집 앞엔 정원이 있고 근처에는 200평(660㎡) 정도 텃밭이 있어요. 저는 주로 남편이 가꾸는 모습을 보죠. 서로 삶의 지향점은 다르지만, 지금의 삶을 좋아해요.” 부부의 전원생활은 서로 다른 모습이다. 경기 광명과 서울에 살았던 정씨는 이곳에서 여전히 프리랜서 그림작가다. 공간이 바뀐 것 외에 계속 작업실에서 일하는 일상은 비슷하다. 육아까지 전담한 남편이 텃밭과 정원을 분주히 오갈 때, 그는 모니터에 집중한 채 작업에 매진한다. “날씨가 좋은 날엔 모자랑 장갑 끼고 산책하러 나서기도 해요. 동네 곳곳을 걸으면서 나무 열매를 따 먹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산딸기·오디·보리수 등 인근 산에는 먹을거리가 많다. 진안에서 태어나 부모보다 이른 나이에 자연의 섭리를 체득한 두 아이는 어느 때 어느 열매가 맛있게 익는지도 잘 안다고. 인근엔 비슷한 귀촌 가족들이 있어 함께 명소를 다니곤 한다. 여름밤에는 남편과 함께 집 인근에 나타나는 반딧불이를 보며 맥주 캔을 딴다. 각자 마감과 가사 탓에 쌓인 시름을 이렇게 덜어왔다. “도시에서 일할 때보다 오히려 인간관계가 넓어졌어요. 술을 마실 곳이 없으니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면서 더 친해졌죠.”가족은 ‘썸썸(SomeSome)’이라는 이름의 동네 중고 시장에도 종종 나간다. 정씨는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모아 이웃들에게 팔았다. 그 덕에 동네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어울릴 수 있었다.



[진안에 필요한 사람으로 ?서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수도권의 유명 작가보단 저처럼 지역에 있는 작가를 찾는 일이 많아졌대요. 저도 지역 작가로서 주민들과 만날 기회가 많아져 좋았죠.”
정씨는 그림작가로서 지역 사람들과도 소통해왔다. 마을에 있는 박물관엔 동네 할머니들이 기증한 물건들이 놓여 있는데, 정씨는 그 물건의 주인을 찾아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그림으로 엮어 책자로 만들었다. 마을 도서관에서는 입시 미술을 가르친다. 미술을 배우고 싶어도 인근에 학원이 없어 불편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서다. 전북 장수에 있는 장수문화원에선 학교 선생님을 대상으로 그림책 만들기 수업도 진행한다.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꿈을 이루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최근엔 환경단체에 가입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자연을 지키는 데도 관심을 뒀다. 정씨는 진안녹색평화연대라는 환경단체 소속으로 동네 소모임을 만들며 쓰레기를 줄이는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다음 그림책의 주제도 환경문제로 정할 만큼 요새 최대 관심사라고. “탄소는 왜 줄여야 하나요?”라는 아이들의 물음에 답을 줄 수 있도록 이야기를 꾸미는 중이다.


그는 앞으로도 필요한 곳에 힘을 보탤 생각이다. 아이들을 위한 책을 내고 사람들과 그림으로 소통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작업장이자 가족의 삶터인 진안을 위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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