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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시골매거진 <완두콩>

초록색의 둥글둥글한 완두콩. 껍질을 까보면 안에 콩알이 서너 알 들어 있다. 그래, 딱 마을 같다. 콩알 같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는 마을. 그렇게 ‘완두콩’은 전북 완주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담은 ‘시골매거진’이 됐다. 글 서효상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완주 사람 이야기는 여기 다 있지!”

사진 올해로 아흔다섯 살이 된 송씨 할머니. 완주군 봉동읍 율소리 봉림마을에 사는 송씨 할머니는 눈뜨면 가장 먼저 싸리문을 연다. 문을 안 열면 할머니 집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할머니를 걱정해서다.


매일 점심때쯤,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에 있는 매운탕집 동락가든부터 완산마을 근처를 걷다 보면 고산성모의원 원장인 이 선생님을 마주친다. 선생님이 매일 점심시간마다 이 길로 산책을 다녀서다.


옆집 할머니가 아침마다 무엇을 하는지, 동네 병원 의사 선생님이 점심때마다 어디를 다니는지, 이렇게 지극히 사적인 것들을 어떻게 알았냐고? 전북 완주의 시골매거진 <완두콩>을 보면 된다.




[완주 사람이 전하는 완주 이야기]
<완두콩>은 전북 완주에 사는 이웃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모은 월간 시골매거진이다. 2012년 10월 창간해 어느덧 10년이 됐다. 미디어공동체 완두콩협동조합(이하 완두콩)의 대표 이용규 씨(56)는 완주 사람들의 일상을 나누고 지역을 기록하고자 시골매거진 <완두콩>을 만들었다.


<완두콩>을 창간하기 전 이씨는 전북의 한 지역 일간지 기자로 18년쯤 일했다. 퇴직 후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차에 한 선배가 그를 완주로 불렀다.


“완주로 와. 여기서 수업 하나 같이 듣자.”
그맘때 완주군에선 전국 최초로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를 만들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공동체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로 ‘커뮤니티비즈니스 매니저 과정’이 있었는데, 선배는 이를 같이 듣자고 했다. 이씨는 퇴직한 선후배 5명과 함께 완주로 갔다. 그곳에서 농업 외에 무슨 일을 하며 완주에 뿌리내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열심히 탐색했다. 한 달간의 교육 끝에 이씨는 마을과 사람을 기반으로 한 매체 ‘시골매거진’을 생각해냈다.


물론 반대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 지역 소식지는 유행이 지났고 성공 확률도 낮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씨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찬, 읽기만 해도 마음속에 온기가 번지는 그런 매체를 만들고 싶었다. 밥벌이가 안 되면 평일엔 다른 일을 하고 주말에 매거진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골매거진 <완두콩>이 세상에 나왔다.




[할머니 셋이 전부였던 먹방마을의 기록]
2013년 봄, 이씨는 완주? 운주면 먹방마을로 취재를 갔다. 당시 그곳에 사는 사람은 할머니 셋이 전부였다. 이씨는 할머니에게 이런저런 걸 물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밭에는 무얼 심었는지 등이었다. 할머니는 그런 이씨에게 “하찮은 늙은이 이야기를 뭐 하러 들을라 그려?” 하며 반문했다. 하찮지 않다고,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하면 할머니는 “팔십 평생을 산골에서만 산 사람한테 뭐 볼 일이 있다고?”라며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하찮은 존재로 여겼다.


그 후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긴 <완두콩>이 발행됐고, 할머니가 다니던 성당 신부님이 이를 읽었다. 신부님은 할머니에게 “<완두콩>에 나온 걸 봤다”며 알은체를 했다. 할머니는 신부님의 그 말 한마디로 ‘세상에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었구나’ ‘나도 어딘가에 쓸모 있는 존재였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고 한다. 이씨는 할머니를 통해 <완두콩>이 해야 할 일,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확실히 깨달았다. 평범한 이웃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유명하든 안 유명하든 우리는 다 각자의 삶에서 주인공이에요.”
먹방마을엔 이제 세 할머니 중 한 분만 살고 있다. 한 분은 세상을 떠났고, 다른 한분은 요양원으로 갔다. 아직 먹방마을을 지키는 할머니마저 떠나면 이 마을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씨는 “이런 작은 마을 어르신들의 기억이 더 흐릿해지기 전에 부지런히 기록해야 한다”며 지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역 주민의 개성 있는 칼럼과 만화도 연재]
완두콩 사무실은 완주군 삼례읍의 ‘소셜굿즈 혁신파크’에 자리를 잡고 있다. 폐교된 삼례중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소셜굿즈 혁신파크는 완주군이 지역 공동체들의 사무 공간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모두 여덟 명. 대표인 이씨 외에 기자 셋, 편집디자이너 셋, 그리고 콘텐츠기획팀장 한 명이다. 이들과 읍·면별로 위촉된 마을기자 10여 명이 함께 24쪽 분량의 매거진을 완성한다. 인쇄는 외부 업체에 맡겨 매달 1000부씩 제작하며 1부당 3000원에 판매한다. 후원 독자들에겐 우편으로 발송하고,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카페나 공공기관에는 완두콩 직원들이 직접 방문해 배포하고 비치한다.


<완두콩>에선 지역 주민들의 개성이 담긴 칼럼과 만화도 볼 수 있다. 2018년 완주로 귀촌해 작은 텃밭을 일구며 사는 신미연 씨는 시골에서의 자급자족하는 삶을 매달 칼럼으로 싣는다. 올해로 완주살이 9년 차인 청년 설레(필명) 씨는 ‘매일 설레’라는 제목의 만화를 그린다.


또 큰 사랑을 받은 기획이나 따로 모아 기록할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내용들은 단행본으로도 만들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할미그라피: 완주 할매들의 인생손글씨>가 있다. 기자들이 취재하며 만난 할머니들은 한글교실을 통해 뒤늦게 한글을 깨친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사연과 손글씨·그림을 담은 책이다. 벌써 3권째 출간된 <완주, 사람들> 시리즈도 있다. 이는 <완두콩>에 연재되고 있는 칼럼 ‘장미경의 삶의 풍경’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완두콩>]
이씨는 10년 동안 지역에 기반한 시골매거진을 만들며 힘들지 않았던 때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회상한다. 지역의 작은 공동체 회사이고, 책임져야 할 직원도 여럿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완두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한 번도 잃어본 적이 없다. 웃을 일보다 얼굴 붉힐 일이 더 많은 세상에서 <완두콩>만은 좋은 소식, 따뜻한 소식, 미소가 지어지는 소식으로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다.


앞으로 <완두콩>은 마을기자의 수를 더 늘릴 계획이다. 완주에는 13개의 읍·면에 500여 개의 마을이 있다. 마을별로 1명씩은 아니더라도, 읍·면별로 마을기자가 2∼3명씩만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마을기자가 많을수록 지역별로 일어나는 일을 더욱 속속들이 전할 수 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소한 이야기도 더 많이 싣고자 한다. 마을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게 <완두콩>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덜 엄숙하고 더 가벼운 소식들로 채워진 <완두콩>을 상상하면 이씨는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고 말한다.


지난해 4월 <완두콩>에 합류한 김가영 기자는 매달 <완두콩> 한 권을 만드는 게 책 여러 권을 읽는 것보다 더 재밌다. 한 마을에서 평생을 산 할아버지, 완주로 귀촌을 결심하고 삶의 터전을 옮긴 젊은 부부 등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감동과 지혜를 얻을 때가 많아서다. 김 기자 역시 <완두콩>을 통해 더 많은 마을 사람들을 연결하고 그들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


“완주군 인구가 현재 9만 2000명 정도 됩니다. <완두콩>에선 이 9만 2000명 모두가 주인공이에요. 평범한 마을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 앞으로도 열심히 전하겠습니다.”
구독 문의 063-291-8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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