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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뜰 때마다 나는 바다를 본다

한창훈 1963년 전남 여수 거문도에서 나고 자랐다. 장편소설<홍합> <열여섯의 섬>,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등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주로 썼으며, 산문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등을 냈다. 한겨레문학상·허균문학작가상·요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대상선 컨테이너선을 타고 두바이와 네덜란드까지 갔으며 쇄빙 연구선 아라온호에 승선해 베링해와 북극해를 다녀오기도 했다. 지금은 고향에서 종종 그 항해를 떠올리며 글을 쓰고 낚시와 채집을 한다.

사진 아침에 눈뜰 때마다 나는 바다를 본다. 해발 1m, 바다 옆 작은 집에서 살고 있으니까. 현관 열고 열 발자국 나서면 푸른 바다에손을 담글 수 있다. 바다 말고는 보이는 게 없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집 앞에서 낙지와 고둥을 잡는다. 큰 고기가 필요하면 배 타고바다에 나간다. 갈치 시즌이면 어판장 일을 해주고 점심 얻어먹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이런 일상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다. 주로 중년 남성들인데, <나는 자연인이다> 버전의 희망을 지닌 사람 중에 산보다는 바다에꽂힌 측들이다. 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한다고 해서 내 마음이 흐뭇한 것은 아니다. 여기는 여기대로 고난이 있으니까.열 살 때 나는 이 섬을 떠나 육지로 이사를 했다. 물론 내 의지는아니었다. 그 이래로 쭉 ‘바다가 보이는 집’을 꿈꾸며 살았다. 이룰 수 있다면 꿈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여태 살면서 이 꿈 하나는 이뤘다. 십여 년 전 여기 고향 섬으로 돌아와 바닷가에서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어제는 모처럼 풍랑이 일고 비도 제법 내렸다. 상당 기간 가물었으니 온종일 집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쯤은 감내할 만했다. 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빗물이 우당탕탕 바다로 몰려가는 소리도 오랜만에 들었다. 이 섬에 살던 일곱 살 때도 이렇게 비가 많이 오
는 날이 있었다. 넘치는 도랑물을 바라보며 나는 ‘자꾸 이러면바닷물이 차올라 우리 마을이 잠길 텐데, 어떡하지!’ 하고 매우구체적으로 걱정을 했었다.오후에 비가 우선해서 산책을 나갔는데, 집 옆 해수욕장에 캠핑카 한 대가 서 있었다. 한 남자가 창문을 열고 바다를 보고 있었는데 한참 동안 집중해서 바라봤다. 흰 포말을 일으키며 파도가쉬지 않고 밀려오고 있으니 육지 사람으로서는 오랫동안 바라볼 만했을 것이다. 굳이 어떤 생각을 하지 않고, 약간은 무아지경으로 바라보게 되는 바다 풍경. 이를테면 ‘물멍’을 넘어선 ‘파도멍’. 아마도 그 사람은 최소한 바다나 항해 관련 전력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선원 출신이 캠핑카를 몬다면 바닷가가 아니라 산속으로 갔을 테니까.이런 경우 인간의 뇌는 매우 안정적인 상태가 된다고 어떤 의학서적에서 읽었다.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불편하고 괴로운 생각이 사라져 있을 테니까. 그의 눈길은 한없이 멀어졌다. 수평선 너머에 그다음 수평선이 있고 또 그다음에도….그 먼 곳에는 내가 다녀왔던 인도양과 지중해, 대서양이 있다. 북극해도. 너무 멀어 보이진 않지만 육지의 길처럼 이곳에서부터쭉 이어져 있지 않겠는가. 새삼 그 바다들이 떠오른다. 8m 높이의 인도양 몬순 파도. 파도가 일 때면 컨테이너들이 삐거덕하고비명을 질렀다. 극지 연구선 아라온호를 들었다 놓았다 하던 베링해의 그 거친 파도. 점심 때 식당에 내려가보면 밥 먹으러 온사람은 나 혼자였다. 멀미 때문에.비가 그치고 도랑물이 옅어졌을 때쯤 일곱 살 꼬마는 뒷산에 올라서 바다를 바라봤다. 그렇게 많은 비가 왔는데도 마을이 잠기
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도랑물이 어딘가에 따로 모여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인데 어디를 둘러보아도 평평하기만 했다. 그때 찾아온 각성. 아, 바다는 정말 넓은 곳이구나.그때부터 나는 대한민국보다 수평선 너머가 더 궁금했다. 그러다 작가가 되어서 항해 기획을 하게 됐고 먼바다로 나가보게 됐다. 평생 궁금해하고 갈증을 느꼈던 지구별 그 넓은 바다로.저 큰, 푸른 물방울의 세상이 어제처럼 오늘도 내 앞에 있다. 바다가 너무 깊고 넓다는 불만을 나는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강원도에? 태어난 아이가 거대한 산맥을 보며 산이 너무 높고크다고 원망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 그러하니까.오늘은 날이 좋다. 느낌상 농어가 잘 물 것 같다. 이만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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