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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실레마을 그리는 이병도 작가

한때는 위대하고 유명한 대상만 역사와 그림이 된다고 여겼다. 생각을 바꿔 매일 보는 풍경, 내가 사는 마을을 화면에 옮겨보면 어떨까. 춘천 실레마을을 그리는 이병도 작가의 손끝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글 윤나래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풍경이 된 우리네 삶

사진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닷는 조고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찍굵찍한 산들이 빽 둘러섯고 그 속에 묻친 안윽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친 모양이 마치 옴푹한 떡시루 같다 하야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씨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호밖에 못 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그러나 산천의 풍경으로 따지자면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귀여운 전원이다.”
소설가 김유정은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춘천시 신동면 증리의 실레마을을 이렇게 묘사했다. 레일바이크나 책과인쇄박물관, 김유정문학촌, 구(舊) 김유정역 등 관광지로 유명한 이 마을은 김유정의 고향이자 활동 무대요, 작품의 배경이다. 소설가가 살았던 빈약한 촌락은 훗날 관광객의 발길을 끄는 문화예술 마을이 됐다.




[그림 같은 춘천 실레마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에는 연간 100만 명이 마을을 찾았다는데, 이후로는 문 닫은 식당이나 떠나는 주민이 생길 정도로 분위기가 침체됐죠. 팬데믹 사태가 아니더라도 춘천 곳곳에 재개발이 이뤄지며 오래된 마을이 사라지는 변화도 있고요.”
현장을 생생하게 관찰해 그리는 ‘어반스케치’로 춘천 곳곳을 그려온 이병도 작가(61)의 증언이다. 춘천에 산 지 30년 가까이 된 이씨는 마을 지도를 그려달라는 부탁으로 실레마을과 연을 맺었다. 작업을 위해 지도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골목골목 누비고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실레마을에 스며들었다.


“예전의 활기찬 분위기는 아닐지 몰라도 마을이 고즈넉하고 아름다워요. 마을을 살리려는 열정적인 주민이나 자기 분야에서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도 많고요.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좋으면서도 아름다운 전원의 모습을 간직한 곳, 한 마을에서 이토록 수준 높은 체험을 다양 하게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이 질문에 실레마을만 한 곳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도 작업을 계기로 마을의 가능성을 알아본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해 3월, 마을 초입 방앗간 건물에 어반스케치 화실을 겸한 카페를 차려 가족과 운영하고 있다. 카페 창 너머로 보이는 김유정문학촌을 파노라마로 그려 전시했는데, 시선의 흐름을 따라 많은 요소를 볼 수 있는 긴 화면을 좋아한단다. 그 그림 앞에 앉은 그는 ‘실레마을 이야기’ 스케치북을 펼쳐 보이며 그림 속 집에는 어떤 이웃이 사는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겨울의 파란 하늘을 강조한 스케치에는 김유정문학촌을 일군 전상국 소설가를 기념하는 전상국 문학의 뜰, 금병산 예술촌 입구를 알리는 나무 이정표와 트럭, DMZ 역사 전문가와 티소믈리에 부부가 손수 설계하고 사는 주택 등이 담겼다. 한여름의 구 김유정역은 수채화물감으로 신록을 표현했다.




[예술과 저널리즘의 사이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본업으로 하는 이병도 작가는 4년 전 어반스케치를 만났다. 공사 현장에서도 그림을 놓지 않아 첫해 완성한 스케치만 300장에 이르니, 그간 들인 공력이 만만치 않다. 춘천시 조운동·소양동·교동과 실레마을 등 오래된 마을과 이웃들의 삶을 그려온 그의 그림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한순간을 간직한 기록이 된다.


“어반스케치는 풍경이 멋진 곳만 그리거나 보기 좋은 장면만 취사선택해 그리지 않거든요. 어수선한 공사 현장, 전깃줄이 낮게 엉킨 오래된 골목이나 그 골목을 지나가는 할아버지 등 생활에서 포착할 수 있는 ?간과 이웃을 스케치하고 기록합니다. 그럼 그림에 이야기가 생겨요. 작고 보잘것없는 그림이라도 그 공간과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는 큰 울림을 주나 봅니다.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있는 저널리즘이면서 감정을 일으키는 예술이라 매력적이죠.”
그는 카페와 춘천농협 문화센터 등에서 어반스케치를 가르치고, 어반스케쳐스 춘천 챕터의 운영자로도 활동한다. 어반스케치를 접목해 실레마을을 알리는 데에도 힘쓴다. 지난 5월 실레 마을 8곳을 스케치 장소로 삼아 차박과 드로잉을 하는 1박 2일 행사를 열었는데, 전국에서 200여 명이 찾았?.


“이방인이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행사잖아요. 주민 협조가 필수 인데, 다행히 마을 분위기가 참 좋았다는 후기가 많았어요. 매년 정례 행사로 운영하고자 합니다. 또 8월에는 이웃들과 실레문화 체험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우선 인쇄 문화, 차, 마을 해설, 전통주, 어반스케치 분야로 구성했지만, 점차 마을의 다른 체험 활동과도 연대할 계획입니다.”
실레마을 주민들의 저력은 어디서 나올까. 다시 김유정의 글에서 답을 찾아보았다.


“주위가 이렇게 시적이니만치 그들의 생활도 어데인가 시적이다. 어수룩하고 꾸물꾸물 일만 ?는 그들을 대하면 딴 세상 사람을 보는 듯하다. … 그들은 아즉 악착한 행동을 모른다.”
마을의 일원이 된 이병도 씨도 꾸물꾸물 일한다. 오늘도 그림 같은 실레마을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어반스케치란?]
어반스케치는 자신이 살거나 방문한 도시의 실내외 풍경을 직접 관찰해 그린 그림을 말한다. 재료나 기법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장르이나,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만큼 휴대하기 좋은 도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찍어둔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은 ‘여행스케치’라는 이름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비영리 커뮤니티인 어반스케쳐스(Urban Sketchers)는 전 세계 300개 이상의 도시에 챕터(Chapter)라는 조직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는 서울·부산·제주·대구·경주·인천ㆍ춘천 등에 챕터가 있는데, 각 챕터는 스케치 정기 모임을 열고 누구나 참여하도록 그 소식을 온라인에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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