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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역사 기록한 세종 ‘외딴말박물관’

역사는 기록으로 그 실체를 남긴다. 유구한 시간을 품은 마을도 증거가 없고 사람들이 모른다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 ‘외딴말박물관’은 자신들의 삶을 널리 알리고자 했던 마을 주민들의 열정으로 세워졌다. 글 원용찬 기자 사진 고승범(사진가)

우리, 이렇게 살았답니다

사진 “봄이면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폈어요. 복사꽃 사이에 낮은 지붕의 조그마한 집들이 있고 사람이 적어 외딴말(외딴 마을의 준말)이라 불렀다지요.”
세종시 조치원읍 신흥1리의 원종대 이장(68)은 마을 이름을 이렇게 소개한다. 조선시대 때 지금의 신흥리 지역은 대장간 한 채와 민가 몇 채만 있던 조용한 마을이었다. 읍내 중심과 멀어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이곳엔 복숭아나무? 유독 많았다 한다.


1905년 경부선이 조치원을 지나기 전까지 이곳은 ‘외딴말’이라 불렸다. 이후 사람들이 모여들자 ‘새롭게 일어서자’라는 의미로 ‘신흥정(新興町, ‘정’은 일제강점기 때 지역 단위)’이란 이름을 썼다. 이를 계기로 마을은 신흥리란 이름으로 역사를 이어왔다.


세종시 개발로 뜨거웠던 재개발 열풍은 신흥리의 지도를 다시 그렸다. 농토엔 아파트가 들어섰다. 복숭아 꽃잎이 내려앉았던 골목은 지워지고 플라타너스가 이어진 신작로가 생겼다. 신흥리 주민들은 점차 사라져가는 고향의 옛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외딴말박물관은 그 의지를 담은 결과다.




[신흥리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모두 여기에]
“어서 오세요. 이곳은 마을의 역사와 함께 주민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긴 공간입니다.”
박물관 입구에서 원 이장이 인사를 건넸다. 마을회관 1층에 자리잡은 외딴말박물관은 5평(16.5㎡) 남짓한 전시실과 이보다 더 작은 수장고로 구성돼 있다. 원 이장은 전시실 한편에 자신의 자리를 두고 마을 일을 함께 본다.


그의 자리 옆에 낮은 지대의 물을 퍼 올리는 농기구인 무자위가 보였다. 무자위는 마을에 필요한 농업용수를 공급해주던 고마운 떵구였다. 해체돼 버려질 것을 마을 사람들이 고이 보관해둔 덕에 박물관에 놓였다. 무자위뿐 아니라 박물관엔 각종 농기구들이 전시돼 있다. 극젱이·삼태기 등 기계화가 되기 전 농민들이 쓰던 도구들이다. 마을의 역사를 정리한 연표 옆에는 방명록이 펼쳐져 있다. 방명록에는 방문객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전시실 중앙에는 신흥리의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가 정리돼 있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토기와 자기 같은 유물을 비롯해 조선 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보존 된 여러 고서와 문서를 볼 수 있다. 주민들의 전입·전출을 수기로 기록한 명부도 있다. 빛바랜 종이에 펜을 꾹꾹 눌러 쓴 글씨가
눈길을 끈다.


전시실에 마을의 역사와 관련된 물건들이 많다면, 수장고엔 마을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물건들이 가득하다. 홍두깨·곰방대 같은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생활용품들이다. ‘옛날에 어머니가 밤을 새우며 옷을 만들 때 쓰던 재봉틀’‘지금은 다 자란 딸이 예전에 쓰던 복숭아 크림 화장품 케이스’ 등 사연이 담긴 물건도 보인다.


벽에는 미처 땟물을 씻지 못한 아이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한국 전쟁 이후 고아들을 수용하기 위해 신흥리에 세워진 영명보육원과 희망원에 있던 아이들의 모습이다. 사진 속 아이 중 한 명이 마을로 돌아와 이 사진을 기증했다고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됐다는 옛 주민이 남긴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마을의 수집광, 박물관에 평생을 담다]
“외딴말박물관에는 옛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사소한 물건에도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배어 있으니까요.”
남주수 씨(88)는 박물관의 공동 창립자이자 관장이다. 박물관 소장품의 80%는 그가 기증한 것들이다. 그는 약 60년 동안 신흥리의 옛 물건을 수집해왔다. 15년 정도 조경 회사에 다닌 덕에 일하다가 운 좋게 유물을 건지기도 했다. 문 앞을 장식한 십여개의 희귀한 수석도 그의 수집품이다. 그가 평생 모은 물건을 기꺼이 내놓은 이유는 수십 년간 함께 지낸 마을 사람들과의 기억을 잘 보존하고 싶어서였다. 때때로 찾아오는 손주뻘 관광객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하는 재미도 쏠쏠하단다. 세종시도시재생지원센터가 박물관을 견학 코스로 넣어둔 덕에 인근 주민들도 박물관을 종종 찾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 박물관의 물건을 하나씩 짚어가며 마을의 역사를 소개한다.




[옅어져가는 마을 공동체…박물관의 미래는]
“작년에만 아홉 분이 돌아가셨어요. 신흥리의 옛 모습을 보존하면서 동네 발전을 위해 노력하셨던 분들이었죠.”
원 이장이 벽면의 단체 사진 속 사람들을 가리켰다. 박물관 기획에 참여하거나 물건을 기증한 주민들이다. 총 650여 명의 주민이 있는 신흥리에는 최근 원주민이 줄고 이주민이 급격히 늘었다.


그러면서 마을 발전을 함께 논의하던 공동체 의식도 흐려지고 있다. 개관 초기 전시실에선 마을 사람들이 종종 모여 담소를 나누곤 했는데, 그것도 이젠 옛일이 됐다.


“아무래도 얼마 되지 않는 마을 회비로 운영하다 보니 유지가 쉽지는 않아요. 더 많은 사람?이 찾아준다면 더 좋을 텐데요.”
8월 초순에 닥친 큰 비도 걱정거리를 불렀다. 수장고에 비가 새기 시작한 것이다. 보수 비용이 수백만 원이나 든다는데, 박물관에 무심한 마을 주민들의 참여를 바라기도 어렵고, 마땅히 옮길 공간도 없어 원 이장은 근심이 크다.


관공서의 지원도 현재로선 기대하기 어렵다. 외딴말박물관은 국가기록원에서 지정한 제10호 기록사랑마을로, 박물관 개관시 전문 보존 관리를 위한 컨설팅을 받았지만 이후 별다른 재정적인 지원은 받지 않고 있다.


“지역의 역사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어요. 주민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국민의 기록이란 생각으로 나라에서도 지원해주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준다면 자연스럽게 지원도 따를 것이란 생각에 힘들어도 박물관을 지키고 있어요.”
남 관장과 원 이장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같이 박물관을 연다. 하루에 단 한 명의 방문객이 올지라도 불을 환히 켜두고 냉방기를 온종일 가동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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