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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진해마을라디오’ 방송 현장 속으로

지난해 9월 오래전 폐역이 된 진해역에 ‘진해마을라디오’ 방송국이 들어섰다. 방송국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다름 아닌 동네 주민들이다. 이들은 PD·DJ·엔지니어 등 모든 역할을 도맡아 마을라디오 방송을 만든다. 방송 주제는 딴 세상 얘기가 아닌 ‘우리’가 사는 동네 이야기다. 글 하지혜 기자 사진 고승범(사진가), 진해마을라디오 제공

폐역에서 만드는 마을의 소리

사진 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동에 자리한 진해역. 이곳에선 역무실과 진해마을라디오 방송국이 한 공간을 나눠 쓰는 진기한 풍경을 볼 수 있다. 1926년에 건립돼 몇 년 뒤면 100살 생일을 맞는 진해역은 2015년 정기 여객 취급을 중단했지만 화물열차는 운행 중이다. 유서 깊은 역인 만큼 등록문화재로도 지정돼 있어 공간을 함부로 개조할 수 없다. 그래서 역무실 안 탕비실에 조?식 스튜디오를 설치해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다. 대여섯 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작은 스튜디오지만, 라디오 방송 제작에 참여 하는 주민들은 이마저도 귀히 여긴다.


진해마을라디오는 지난해 창원시와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진해구 원도심에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을 시행하면서 움을 틔웠다.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가 진해마을라디오 제작단 1기를 모집했을 당시, 20∼70대의 다양한 연령층 주민들이 못다 한 꿈을 이루기 위해, 혹은 취미를 즐기기 위해 방송국 문을 두드렸다.


“15명을 뽑는데 40명 넘게 지원할 정도로 지역 주민들의 참여 열기가 뜨거워서 놀랐어요. 선발된 1기 제작단은 라디오 방송의 기획·구성·진행부터 녹음·촬영, 오디오·영상 편집 등 기술적인 교육을 받고 개국 때부터 방송을 제작하고 있어요. 생업에 종사 하거나 아이를 돌보면서 짬짬이 시간을 내 한 달에 한 편의 콘텐츠를 만드는 건 사실 대단히 어려운 과제예요. 그런데도 모두 책임감과 의지가 대단해요.”
진해마을라디오의 제작을 지원하는 이수미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 연구원은 한 달에 한 번 제작단과 함께 기획 회의와 방송 모니터링 시간을 갖슴다. 주민들은 혼자 또는 팀을 이뤄 프로그램 기획부터 자료 조사, 게스트 섭외, 방송 녹화·편집 등을 스스로 해낸다. 주파수가 없는 진해마을라디오는 방송을 녹음할 때 스튜디오 영상을 보여주는 ‘보이는 라디오’ 촬영도 같이 진행한다. 라디오 방송은 팟캐스트 팟빵에서, 보이는 라디오 영상은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각 채널엔 한 주에 2∼3팀의 콘텐츠가 올라온다.




[라디오 만능 엔터테이너가 된 주민들]
기자가 찾은 날은 프로그램팀이 방송 녹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는 진해의 역사? 추억, 마을 뉴스·공연·행사 소식 등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방송으로, 매회 팀원들이 선정한 게스트를 스튜디오에 초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녹화 5분 전, 생방송이 아닌데도 스튜디오 안엔 사뭇 긴장감이 흘렀다. 대본과 음향을 꼼꼼히 체크하는 제작단의 손길이 베테랑처럼 야무지다.


“스탠바이 큐 하면 몇 초 있다가 시작해주세요. 자, 스탠바이∼큐!”
“무더위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어느새 입추를 지나고 있는데요. 긍정적인 마음으로 조금 있으면 시원해질 그날을 기대하며 8월 진해에서 함께하는 진해마을라디오 . 저는 날씬한 DJ 조난영입니당∼”
스튜디오 온에어 버튼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DJ는 능숙하게 음향 기기를 조정하면서 매끄러운 인사말을 날렸다. 지역에서 활동 중인 소프라노 조난영 씨(47)와 역사 교사 출신인 김명남 씨 (73), 마을미디어 활동가이자 주부인 김미화 씨(38)로 구성된 이팀은 마이크를 잡고 30여 분짜리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진해마을라디오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긴 러닝타임이다.


이날 불교와 관련된 진해 역사 이야기를 소개한 김명남 씨는 누구보다 제작단 참여에 만족도가 높은 사람 중 한 명이다.


“진해에 살면서도 진해의 역사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많죠. 저 역시 라디오 방송 제작을 위해 공부를 하면서 진해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만한 역사와 문화가 많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 점에서 마을라디오가 지역의 가치를 알리고 주민들의 문화예술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날 의 게스트로는 창원시의회 의원들이 출연해 추진 중인 의정 활동과 지역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에는 진해 군항제 운영 방향 등 지역민뿐 아니라 외지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 만한 주제도 나?다.


“최근 감염병 사태 때문에 진해군항제가 열리지 못했는데 인파와 교통 혼잡,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 탓에 오히려 축제 취소를 반기는 일부 지역민들도 있었어요. 충무공 추모와 향토문화예술 진흥 등 군항제의 본래 의미는 퇴색되고 벚꽃 축제로만 인식되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죠. 이런 문제에 대해 저희 시의원들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내년에는 기존과 다른 축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날로 다양해지는 마을 콘텐츠]
진해마을라디오 1기 제작단은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지역의 ?활문화예술 동호회 팀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로 Fun한 세상>, 지역의 아름다운 장소를 귀띔해주는 <여기 한번 가봐라>, 진해의 각 동네를 소개하는 <우리 동네, 곰탁곰탁 댕김서 일어나는 이야기> 등 7∼9개의 프로그램이 주기적으로 청취자들을 찾아갔다.


진해마을라디오는 1기 제작단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안 2기 제작단을 모집하고 교육을 진행했다. 덕분에 8월 중순부터 새로운 콘텐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알면 유익한 복지 정보를 전하는 <진마라 통통통>,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카드라, 와인>,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초대 손님과 영어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 영화로 위로를 건네는 <라디오시네마’을> 등 젊은 주민들이 만든 생기 있는 프로그램들이 눈에 띈다.


그런가 하면 오랫동안 진해의 변화를 지켜봐온 중장년층 제작단의 콘텐츠는 옛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가끔 철도 업무 지원을 위해 진해역으로 출장 나오는 신창원역 역장 정영섭씨(54)의 <추억 로드>, 해군 통신사 출신의 70대 주민 제진권 씨가 지역 이야기를 일기처럼 풀어내는 <월간, 권이의 하루> 등이 대표적이다.


“진해마을라디오는 출발한 지 얼마 안 된 마을공동체미디어지만 단기간에 활성화됐어요. 주기적으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업로드되고 있고, 참여 주민들의 적극성도 높아요. 마을공동체 미디어가 지속되고 지역과 관련한 활동으로까지 이어지려면 주민들의 주체적인 참여가 가장 중요해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한 명 한 명 다 방송국장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해야 하는거죠.”
진해마을라디오 제작단 교육을 맡은 고영준 강사(전주 평화동 마을신문 운영위원)의 말처럼, 스스로 마을라디오 방송을 배우고 제작하는 주민들의 눈에선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마을라디오를 두고 누군가는 소소한 동네 일상을 공유하는 사랑방을, 누군가는 마을 문제를 논하는 공론장을, 또 누군가는 주류 미디어에선 다루지 않는 지역의 목소리를 전하는 신문고를 꿈꿀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과거 지역민들의 발이 돼줬던 기차역이 마을 주민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이어주는 소통 플랫폼으로 멋지게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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