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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낚시에 빠진 강태공들

사시사철 바다만 보면 피가 끓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바다낚시에 빠진 강태공들이다. 여름이면 이들은 발 빠르게 남해로 모여든다. 운이 좋으면 제철 맞은 귀한 한치를 수십 마리씩 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 하지혜 기자 사진 고승범(사진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재미

사진 ‘한치가 쌀밥이라면 오징어는 보리밥이고, 한치가 인절미라면 오징어는 개떡이다.’
사촌지간인 한치와 오징어를 두고 이런 속담이 있다. 오징어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그만큼 한치의 맛이 훨씬 뛰어나단 얘기다. 6∼8월은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는 한치를 선상 낚시로 잡을 수 있는 시즌이다. 단, 한치는 야행성 어종이라 밤과 새벽에만 낚는다. 덕분에 한치 낚싯배를 타면 어선들의 집어등 불빛으로 여름 밤바다가 불야성을 이루는 장관을 목도할 수 있다. 그 진풍경과 낚시꾼들을 사로잡는 손맛을 보기 위해 6월 하순, 한치 낚싯배에 올랐다.



[낚시 포인트를 선점하라]
난류성 어종인 한치는 본래 제주도 인근에서 주로 잡혔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난류 세력이 확장하면서 10여 년 전부터 남해안 일대까지 북상하기 시작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거제·통영 등에서 한치를 잡으러 출항하는 낚싯배가 많아진 이유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치 낚싯배가 많다는 진해구를 출항지로 정했다. 오후 2시쯤 찾은 진해? 제덕동 제덕선착장에선 한치 낚싯배들이 출항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날 몸을 실은 배는 총 22명이 승선할 수 있는 9.77t 규모의 ‘개성호’. 한치 낚싯배 대부분이 이 정도 크기로, 밤새 낚시를 해야 하는 만큼 선실과 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다.



낚싯배 손님들은 대개 전국 곳곳에서 온 베테랑 낚시꾼들이다.이들은 보통 배 탈 날짜를 정해 일찍이 자리를 예약해둔다. 덕분에 주말에 출항하는 배 자리는 순식간에 동난다. 아, 물론 초보자도 낚싯배를 탈 수 있다. 선장에게 장비를 빌려 낚시하는 법을배우면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손맛을 볼 수 있는 게 한치 낚시의매력이다.구명조끼를 챙겨 입은 사람들은 출항 전에 한치를 담을 개인 쿨러(아이스박스)에 얼음을 채우고, 공정하게 낚시 자리를 정한다.선장과 사무장을 제외한 20명이 번호 추첨을 통해 자리를 배정
받는데, 인기 있는 자리인 선수와 선미를 차지한 낚시꾼들의 얼굴이 밝다.


오후 2시 40분, 모든 준비를 마친 배가 선착장을 떠난다. 출항 시간이 예정보다 한 시간은 이른 것 같아 갸우뚱하고 있자니, 30년경력의 낚시꾼 안모 씨(56·대구 북구)가 슬쩍 귀띔을 해준다.“여기 선장님이 (낚시) 포인트 욕심이 있?가 준비되면 일찍 출발하는 거 같더라고. 한 낚싯배가 좋은 포인트에 먼저 자리를 잡으면 다른 배는 1.2마일(2㎞) 반경 안에 못 들어오게 돼 있거든요. 그러이 배끼리 좋은 자리 놓고 경쟁하게 되지.”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렇게 뭍을 떠난 배가 2시간쯤 바다를 내달렸을까. 드디어 포인트에 도착했다. 위치는 거제 안경섬 부근. 80∼90m의 수심에수온이 20℃ 이상인 곳이라 한치 낚시 명당으로 꼽힌다.물닻(낚싯배를 한곳에 오래 멈춰두기 위해 물속에 내리는 어로장비)을 내리고 배가 자리를 잡자 갑자기 낚시꾼?이 분주해졌
다. 해가 지고 본격적인 한치잡이가 시작되려면 한참 남았건만낚싯대를 설치하느라 다들 바쁘다. 덩달아 낚시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준비를 하는데 생각보다 채비가 간단하다. 길이 2∼3m정도의 릴낚싯대에 낚싯줄을 끼우고 여기에 2∼3개의 인조 미끼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달면 끝. 해가 지면 이런 낚싯대를 한사람당 두 개씩 바다에 드리운다. 한 대는 거치대에 걸어 바다에넣어두고, 한 대는 들었다 놨다 하며 한치를 유혹하는 용으로 쓴다. 굳이 두 대나 돌리는 이유는 포획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채비 가운데 초보자의 눈길을 가장 잡아끄는 건 새우 또는 물고기처럼 생긴 휘황찬란한 색의 인조 미끼 ‘에기’다. 에기 머리가위로 가게 바다에 드리워놓으면 먹잇감으로 착각한 한치가 아래에서 위로 다리를 뻗어 에기를 덮친다. 그래서 에기의 꼬리에는 2중 갈고리바늘이 위를 보는 방향으로 달려 있다. 바늘에 다리가 꿰인 한치가 속수무책으로 끌려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비싼 에기는 만 원이 넘어요. 어떨 때 갈치가 날카로운 이빨로낚싯줄을 잘라 먹어서 이걸(에기) 잃어버리면 속이 쓰리다니까.”낚시꾼들이 에기의 가격에 대해 한마디씩 하며 장비 통을 보여주는데 대부분 수십 마리의 에기가 가득 들어차 있다. 한치가 잘
안 잡힐 때 수시로 바꿔 끼기 위해 색깔이나 모양이 다른 것들을사 모으다 보니 다들 에기 부자가 됐다.


낚시 준비를 마쳐도 아직 해는 중천이다. 너울에 배가 좌우로 요동치면서 멀미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귀밑에 붙인 멀미약도 모두 허사다. 멀미 따위엔 끄떡없는 낚시 선배들이 점점창백해지는 초보자에게 걱정 섞인 눈길을 보낸다.“멀미할 땐 자는 게 최고예요. 한치는 저녁 8∼9시는 돼야 잡히니까 그 전에 선실에서 눈 좀 붙여요.”

[한치의 수심층 찾기가 관건]
해질녘 잠에서 깨 비척비척 갑판으로 나가니 이미 다들 각자 자리에서 낚시에 시동을 걸고 있다. 집어등에 환한 불이 켜지고 하늘은 점점 어둡게 물들어간다. 이제 강한 빛 아래로 모여든 플랑크톤을 먹기 위해 달려오는 한치를 낚을 일만 남았다.“어? 왔다! 왔다!”
오후 8시를 조금 넘긴 시각, 아직 멀미에 정신 못 차리며 ‘바다멍’에 빠져 있는데 옆자리 사람들이 초보자의 낚싯대에 입질이 왔음을 알렸다. 순간 당황해 허둥지둥하다 한치를 놓칠 상황. 보다못한 낚시 선배들이 부리나케 릴을 감아 낚싯줄을 끌어올리자에기 두 개에 거꾸로 매달린 한치가 무려 두 마리나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 일도 한 것 없이 이날 첫수를 기록한 생초보에게 ‘어복녀’라는 별명이 붙는 순간이었다.


“(낚싯줄) 30m 이상 내리지 마이소. 그 이상은 안 잡힙니다이.”서좌일 개성호 선장(62)이 한치가 잡힐 만한 수심을 확성기로공지한 후, 시간이 지날수록 ‘히트(명중)’를 외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누군가 한치를 낚을 때마다 주위에서 “몇메다(m)예요?”라는 질문이 쏟아진다. 한치 낚시에서 가장 중요
한 것 중 하나가 어군이 형성된 수심을 찾는 것인데, 막 한치를잡은 사람의 수심층을 따라 낚싯줄을 내리는 것도 적당한 위치를 찾는 한 방법이다.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저 멀리 빛나는 다른 한치 낚싯배들의 불빛만이 어딘가에 수평선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렇게 하염없이 망망대해를 바라보다 보니 또 낚싯대가 내려가며 입질이 오기 시작한다. 재빨리 릴을 감아올려보지만 생각보다 무거운 무게에 속도가 더디다. 한참을 끌어올리자 어른 팔뚝만 한 한치가 대롱대롱매달려 나온다. 반항하듯 힘차게 물줄기를 쏘아대는 녀석에?서 펄떡이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이게 바로 단 몇 초간 맛볼 수있는 그 손맛이렷다. 짜릿함을 넘어 작은 정복감까지 선사하는그 맛을 보고 나니 철마다 바다로 달려가는 조사(釣士)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듯도 하다. “고기 잡으면 멀미 안 나요”라던 선장의 말이 참이었을까. 낚시 선배들의 도움으로 30마리 가까이 한치를 낚고 나니 지독한 멀미의 기세도 조금 꺾였다.



[싱싱한 한치회를 누리는 호사]
“배고픈데 야식 잡숫고 하이소.” 어느덧 자정, 긴장하고 있느라 저녁에 먹은 도시락이 다 소화됐는지 출출하던 차에 사무장이 한? 물회를 나눠준다. 물회는 본디 바쁜 뱃사람들이 선상에서 간편하고 빠르게 먹기 위해 고안한 음식이 아니던가. 이날 낚은 한치와 미나리, 각종 채소를 숭덩숭덩 썰고 그 위에 새콤한 육수를 부은 물회 한 그릇에 잠이 확달아난다. 특히 갓 잡아 탱글탱글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히는 한
치 맛은 도시에서 먹던 냉동 한치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야말로 밤새 시간을 낚은 강태공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꼼짝 않고 낚시하는 시간만 무려 8시간. 그동안 내내 한치가 수월하게 잡힐 리 없다. 한참 입질이 오지 않아 속이 타는가 하면,엉뚱한 어종이 올라와 허탈해하기도 한다. 종종 갈치와 오징어가 잡히는데 한치 낚싯배에선 찬밥 신세나 다름없다.호기심에 갓 잡은 오징어와 한치를 나란히 두고 비교해보니, 그차이를 확연히 알겠다. 우선 우리가 흔히 먹는 오징어는 한치보다 몸통이 얇고, 삼각형의 지느러미가 몸통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한치는 마름모꼴의 지느러미가 몸통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크다. 다리 길이는 오징어보다짧다. 표준명이 창꼴뚜기 또는 창오징어인데도 불구하고 한치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도 긴 다리 2개를 제외한 나머지 8개의다리가 한 치(3㎝)밖에 안 돼서다.


물론 그날그날 여건에 따라 조황이 쪽박 또는 대박을 칠 수 있을정도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어서 한치라 부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실제로 지난주엔 100마리 가까이 낚았는데 이날은 영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래도 이에 크게 실망하는 낚시꾼들은 없다. 오늘과 내일이 다른 게 낚시의 묘미라는 걸 다들 알기 때문이다. 바다낚시의 중독성을 꿰뚫고 있는 박진덕 씨(70·부산 사상구)도 그 맛에 배 타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이기 노름이랑 매한가지라. 이번에 못 잡으면 오기가 생겨가 다음엔 꼭 잡아야지 싶거든.”오전 4시, 드디어 철수할 시간. 한치로 쿨러를 가득 채운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아쉬움은 바다에 던져두고 다음을 기약한다. 긴 여정에 초주검이 된 초보자와 달리 오전 6시 뭍에 닿자마자 쿨하게 떠나는 낚시꾼들에게서 취미를 즐기는 자의 진정한 여유를 엿본다.가을이면 7월 한 달간 금어기를 보낸 갈치 낚시의 시즌이 돌아온다. 한치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건 그 전까지만이다. 그때까지바람만 거세게 불지 않는다면 한치 낚싯배는 쉬지 않고 바다로나갈 것이다. 사서 하는 고생, 그 펼에 숨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재미가 궁금하다면 낚싯배에 몸을 실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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