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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트리하우스’

마스크 없이 바깥 공기를 마시던 때가 꿈 같다. 한창 뛰놀 나이의 아이들은 오죽할까. 그런데 아이들이 자유롭게 숨 쉬고 뛰놀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곳이 있다.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나무 위의 집 ‘트리하우스’다. 글 박희영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나무 위의 집에 올라 꾸는 꿈

사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상은 멈췄지만,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흐른다. 한창 뛰놀고 성장해야 할 시기의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더욱 조바심이 날지 모른다. 방역에 동참하면서 지친 아이들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순 없을까? 경기 부천에 사는 고승범(42)·조인경(42) 씨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인천 강화도의 ‘트리하우스’에 방문했다. ‘전?생활’의 10년 차 사진가인 고씨는 촬영차 전국 곳곳을 다니지만, 지헌(6)·재인(2) 두 아이는 코로나19 탓에 ‘집콕 생활’을 해야 하는 답답한 신세다. 그런데 트리하우스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지낼 수 있단다. 코로나19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 말에 고씨는 그동안의 미안함을 덜어낼 겸 자청해서 가족과 함께 트리하우스로 향했다.

[동화 속 풍경의 트리하우스] 고씨 가족이 강화군 화도면의 트리하우스에 도착하자 눈앞에 동화 속 한 장면이 펼쳐졌다. 숲속 990㎡(300평) 땅에 제각각 특색 있는 트리하우스가 5채 있었다. 약 3m 높이 나무 위에 얹힌 집들이었다.

이곳은 인천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김광수 씨(49)가 그간 상상해온 트리하우스를 직접 구현한 공간이다. 4년 전 ‘나만의 아지트’로 지은 트리하우스라 아직은 지인들에게만 개방하고 있다. 그러나 방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트리하우스 테마파크’로 운영하는 꿈을 새로 갖게 됐다고 한다. 바로 옆의 1만 600㎡(3200평) 땅도 더 사서 트리하우스를 지을 계획이다.

트리하우스를 보자마자 지헌이는 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지헌이가 가장 먼저 올라간 1호 트리하우스 이름은 ‘달집’이다. 김씨가 참나무 위에 첫 번째로 지은 달집을 소개하려고 하자, 지헌이가 먼저 상상력을 발휘했다.

“달 보는 집이라고 해서 달집이죠?” 김씨는 달집을 지탱하고 있는 참나무에 반해 이 땅을 사게 됐다고 한다. 나무의 굵은 기둥과 고루 뻗은 다섯 개의 가지가 트리하우스를 얹기에 안성맞춤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땅을 산 뒤 자주 와서 나무 위에 지을 집을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단다.

“어느 날 초저녁, 달이 나무에 걸쳐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나무 위에 집 지을 때도 달을 볼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때부터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트리하우스 천장에도 창문을 내기 시작했어요.” 김씨는 나무 생김새에 따라 그 위에 얹을 집을 설계했다. 그래서 집 모양도 제각각이다. 2호 트리하우스는 벚나무가 집 안을 관통해 지붕 위로 가지를 뻗을 수 있도록 지었다. 봄이 되면 벚꽃이 활짝 핀 모습이 마치 지붕에 머리카락이 난 것처럼 보여 ‘벚꽃 머리’라고 이름 붙였다. 3호는 다 짓고 보니 ‘하품하는 티라노’가 됐다. 4호는 세모 모양으로 집을 지었더니 이를 본 아이들이 ‘왜 지붕만 있느냐?’고 물었단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지붕둥둥집’이다. ‘숲속 등대’라고 이름 지은 5호에서는 ㄱ 자 창 너머 마니산 자락에 펼쳐진 논과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런 트리하우스를 접하니 고씨 가족의 상상력도 덩달아 자극됐나 보다. 아내 조씨는 나무조각으로 테두리를 장식한 거울을 바라보며 ‘해님 거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재인이는 ‘사자 거울’이라고 했다. 이를 들은 김씨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저도 어머님처럼 해님을 생각하고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 눈에는 사자로 보이나 봐요.” 동화 같은 풍경 속에서도 아이들의 눈길을 끈 건 도토리 모양으로 나무를 깎은 새집이었다. 미술을 전공한 김씨는 나무를 활용해 트리하우스 내부를 꾸미거나 야외 놀이기구를 만들었다. 나무옹이를 그대로 살린 식탁부터 나뭇가지에 묶어둔 그네, 마녀 빗자루를 타고 이동하는 집라인까지 모두 그의 작품이다.

[독채 같은 숲속 놀이터] 김씨는 숲을 아끼고 자연을 해치지 않을 방문자만 선별적으로 받을 계획이다. 자칫 숲에 담뱃재라도 버리면 화재의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정성껏 가꿔놓은 트리하우스를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예약제로 소수만 받으니, 방문자는 트리하우스를 독채나 다름없이 즐길 수 있다.

숲속 트리하우스에는 주인인 김씨 외에 고씨 가족밖에 없었다.

어느덧 마스크 쓰는 게 일상화된 아이들이지만, 고씨 부부는 오늘만큼은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뛰놀도록 했다. 다른 사람과 접촉할 일 없는 나무 위에서 숲의 맑은 공기를 가득 들이 마시도록 하기 위해서다.

“요즘 아이들을 데리고 숙박 시설을 찾기가 부담스러웠어요. 긴 여행은 코로나19가 잠잠해진 뒤로 미뤘죠. 그런데 가까운 곳에 트리하우스가 있다니 꼭 한번 아이들을 데리고 와보고 싶었어요. 와보니 상상한 것?다 훨씬 좋아요. 아이들이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네요.” 꽤 쌀쌀한 날씨에도 지헌이는 아빠 고씨와 함께 트리하우스를 오르내리느라 더웠는지 외투를 벗었다. 벚나무 두 그루와 소나무 한 그루를 엮어 트리하우스를 얹은 ‘벚꽃 머리’ 집에 올라가 있으니, 집이 바람 따라 조금씩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약 3m 높이의 트리하우스를 연결하는 ‘출렁다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고씨는 지헌이가 평소 겁 많고 조심스러운 아이라고 말했지만, 지헌이는 금세 출렁다리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지헌이가 오늘따라 무척 용감하네요. 나무 위라는 색다른 공간이 아이를 씩씩하게 만드나 봐요. 가뜩이나 코로나19 때문에 어디 잘 나가지도 못하고 움츠러들잖아요. 아빠인 저도 무서운데, 높은 나무 위에 오르니 아이들 마음이 더 열리는 것 같아요.” [코로나19 걱정 없이 즐기는 공간] 어린 재인이도 다락방 같은 아늑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트리하우스에 올라가 한참 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또 조씨는 재인이의 손을 잡고 트리하우스 주변을 돌며 도토리를 줍기도 했다. 트리 하우스를 얹은 나무 대부분이 참나무여서 도토리가 많았다. 재인이는 작은 손에 도토리를 한 개씩 쥐고서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일상을 가능한 한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성장기 아이들은 어디서든 뛰어놀면서 즐거워하잖아요. 그런데 집 근처에는 사람을 피해서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어요. 그게 늘 아쉬웠는데 나무 위에 올라오니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아 걱정이 없네요. 아이들이 마스크 없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우리 가족만의 숲속 놀이터인 셈이죠.” [트리하우스 만든 김광수 씨 “꿈꾸는 일부터 시작해봐요”]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을 이루지 못했던 김광수 씨는 40대 중반 무렵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어릴 적 동경했던 트리하우스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닌, 진짜 좋아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다가 용기를 냈단다. 책 ‘꿈꾸는 다락방’에서 보았던 “원하는 걸 말하고 다녀라”라는 말을 실천 덕목으로 삼았다. 그랬더니 그의 소망을 들은 지인이 한국에선 출판되지 않은 트리하우스 관련 서적을 구해서 선물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상상 속 트리하우스를 직접 구현해낼 나무를 찾아다니다가 지금의 자리를 얻게 됐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는 요즘이잖아요. 이럴 땐 혼자만의 아지트 같은 공간을 찾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곳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거죠.” 김씨는 꿈을 숲에 비유했다. 숲을 멀리서 보면 나무가 빽빽해서 들어갈 길이 보이지 않지만, 막상 가까이 가보면 길이 있다는 것이다.

꿈꾸는 일도 실행에 옮기면 길이 열린다는 이야기다.

“트리하우스가 팍팍한 현실 속에서 잊었던 꿈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일에 몰두해 ?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를 발전시킬 원동력을 얻기도 하거든요.” 우리가 평소 발 디디고 서 있는 지상이 현실의 공간이라면, 트리하우스는 그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트리하우스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여행 다니는 일상이 다시 이뤄지는 꿈을 꿔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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