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아이디
비밀번호

  • 정기구독신청
  • 독자투고

HOME > 과월호보기 >

시골마을의 가을맞이

가을이 저만치 오는 걸 아는지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을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친 올해는 탁 트인 시골의 가을 풍경이 더 기다려진다. 코스모스와 메밀꽃을 가꾸며 가을맞이를 하는 경남 하동 북천면의 직전·이명 마을을 찾았다. 글 박희영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자료제공 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영농조합법인

가을꽃 가꾸며 반가운 이 기다리는

사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지역축제가 미뤄지고 앞으로도 언제 열릴지 모른다. 그래도 다가오는 가을을 오지 말라고 말릴 수는 없는 노릇. 늘 그랬던 것처럼 코스모스와 메밀꽃을 가꾸며 가을맞이를 하는 곳이 있다. 경남 하동군 북천면 직전마을과 이명마을이다.

[코스모스·메밀꽃 심으며 가을 채비]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수건을 둘러 눈만 내?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풀을 베고 있다. 꽃 단지 조성에서부터 파종, 돌 골라내기, 풀베기 등 꽃밭 관리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이들은 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영농조합법인에 소속돼 있다. 이 영농조합법인에는 자신의 농지에 코스모스·메밀을 재배하는 45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주축이 돼 마을축제를 준비한다. 이경란 씨(68)는 5600㎡(1700평)에 코스모스와 메밀을 재배하고 있다.

“농가들이 영농조합법인의 조합원으로 참여해 함께 축제 준비를 하니까 재미있어요.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으니까요. 또 축제 때 사람 구?해서 좋지요. 축제 한 번 하면 하동군 내 전체 소득도 올라가고요. 주변 지역 농가에서도 축제 때 농산물을 가져와서 다 팔고 가요.” 가을이 오면 마을 일대는 코스모스와 메밀꽃 천지로 변한다. 직전마을과 이명마을 주민은 140여 명 남짓 된다. 한때 논이었던 곳에 코스모스·메밀 등 경관작물을 심어 2007년부터 매년 ‘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축제’를 열고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축제는 보통 9월 말에서 10월 초까지 보름간 북천면 일대 42만㎡(12만 6000평)에서 열린다. 가을꽃을 보러 전국에서 최대 100만 명에 달하는 방문?이 이곳을 찾는다.

마을의 젊은 농민들이 경관작물로의 전환을 주도한 건 2006년이었다. 북천면사무소 직원들이 쌀값 하락으로 점점 어려워지는 벼농사 대신 마을 단위로 국비를 지원받는 경관보전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영농조합법인 대표 김용수 씨(60)는 당시 먹지 못하는 꽃을 논에 심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꽤 있었다고 회상했다.

“주민 평균연령이 75세쯤 돼요. 코스모스를 심어보자고 했을 때 80대 어르신들은 이 좋은 논에 곡식을 심지 않고 왜 꽃을 심느냐며 반대를 하셨어요. 반대하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으면 전체 경관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그분들을 설득해야 했지요. 지금은 축제가 잘되고 벼농사 지을 때보다 농가소득이 훨씬 많아졌기 때문에 호응이 높아요.” 코스모스밭에 쭈그리고 앉아 묵묵히 돌을 골라내던 공감년 씨(73)가 한마디 툭 덧붙였다.

“마을이 공동으로 하니까 한 사람만 빠져나갈 수 없다 아이가.” 이경란 씨가 커다란 양동이에 천일홍 씨앗을 가득 담아 와 연못가에서 한 줌 쥐고 솔솔 뿌렸다. 뒤따르던 이무기 영농조합법인 사무장이 갈퀴로 땅을 긁으며 흙을 덮었다. 이씨는 이른 아침부터 나와 다른 조합원 4명과 함께 풀을 벴다. 가만히 두면 사람 키만큼 자라는 풀을 베어줘야 가을에 예쁘게 핀 코스모스와 메밀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긴 갈퀴로 베어놓은 풀을 긁어 모으던 이씨가 구슬땀을 훔치며 물병을 가져와 목을 축이고선 공씨에게 건넸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 2∼3시까지는 볕이 따가워 작업하기 어려워요. 아침 일찍 나와서 일해야죠.” 여느 시골마을과 마찬가지로 고령자가 많아 올해는 드론을 사용해 코스모스 씨앗을 뿌렸다. 7월 말쯤 파종 작업이 끝났고, 관리기로 이랑을 파는 배수로 작업에 또 ?주일이 지나갔다. 경관작물 이외에 다른 농사를 짓지 않는 고령농들은 영농조합법인이 관리하는 공터에 꽃을 심고, 조롱박·지느러미박 등이 있는 희귀박 터널에 덩굴줄기를 고정한다.

북천면의 가을 채비는 6월 말부터 시작된다. 가을에 열리는 코스모스·메밀꽃 축제가 국내 최대 규모의 가을꽃축제로 자리잡자 2015년부터는 봄에 양귀비축제도 시작했다. 보름간의 양귀비축제가 끝난 6월 말부터 양귀비꽃을 파쇄하고, 일주일에 걸쳐 트랙터로 밭을 간 뒤 코스모스와 메밀 씨앗을 파종한다. 올해는 꽃 단지 중심에 있는 풍차 앞 연못 주변을 천일홍과 넝쿨식물인 새깃유홍초로 단장할 계획이다.

[시골마을이 기다리는 가을 손님] 마을 주민들이 이렇게 가을을 기다리며 경관을 꾸미는 까닭은축제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김정옥 씨(65)는축제 기간에 추석 명절이 겹쳐 가장 반가운 손님인 자식과 손주가 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을 축제가 명절에 열려서 귀성객들이 많이 들러요. 코스모스와 메밀꽃 핀 풍경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지잖아요. 명절에 찾아 오는 자녀들한테도 이 풍경을 선물할 수 있으니 좋죠.” 이웃마을 주민들도 재능기부를 통해 참여하거나 지역 농산물을 가져와 판매하니 가을 축제는 하동군민 모두의 축제이기도 하 다. 지역 평생학습단체 발리댄스팀 어르신 700여 명이 넓은 코스모스 들판을 둘러싸고 춤을 추는 장관이 연출된다. 북천초등학교 풍물패도 신명 나는 놀이판을 벌여 명절 분위기를 한껏 더한다. 최근 TV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얼굴을 알린하동 출신 ‘트로트 영재’ 정동원 군도 인근 초등학교 재학 시절 부터 코스모스·메밀꽃 축제에서 노래를 불렀다. 김 대표는 영농조합법인뿐 아니라 하동군민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라는 데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역 내 예술단체들이 자발적으로 공연을 하고 싶어 해서 축제에 굳이 대형가수를 초청하지 않아도 돼요. 꽃 재배 관련 노력봉사도 많이 해요. 축제가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하면서 지역사회를 통합시키는 역할까지 하는 거죠. 조금 어설프지만 주민들이 직접 축제를 계획하고 준비해서 진행까지 다 해요.” [“마을축제 재정비로 미래 대비”] 지난해에는 축제 시작 전인 9월 초에 찾아온 긴 가을장마와 태풍 ‘링링’‘타파’‘미탁’ 등의 영향으로 코스모스·메밀꽃 단지의 피해가 컸다. 올해엔 태풍 피해는 없었지만 길어진 ?마 탓에 코스모스와 메밀을 예년보다 일주일 늦게 파종했다. 보통 7월 10일경에 코스모스를 심고, 8월 10일경에 메밀을 심지만 올해는 모 두 월말이 돼서야 작업을 시작했다. 장마 기간에 많은 비가 내려 씨앗이 썩어버린 곳엔 다른 모종을 옮겨 심어주기도 했다. 정정자 씨(69)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다.

“매년 방문객이 많이 오니까 지역경제가 살아나서 좋았어요. 그런데 지난해와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관리하기가 힘드네요.” 봄에 열린 양귀비축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행사를 대폭 축소하고 철저한 방역 수칙에 따라 진?됐다. 방문객은 체온 측정·손소독·전신소독 등 3중 방역을 거쳤다. 또 영농조합법인 이 나눠준 80㎝ 길이의 장우산을 쓰고 서로 2m 거리를 두어 걸었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고도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지 않자 마을 주민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김 대표는 이 시기를 마을축제를 재정비하는 시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올해는 축제 개최가 쉽지 않겠지만 미래를 대비해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먹거리나 놀거리를 더 개발하고 있어요.”
  • 과월호전체보기
  • 목차
  • 기사전문보기서비스
  • 기사전문pdf보기

월별 월간지 선택

OnClick=

과월호전체보기

  • 구독신청하기
  • 온라인구독결재
  • 구매내역확인
  • 편집/배송문의

가격안내

구분 요금 비고
창간호 ~ '97.8.30이전 300원(면당) VAT포함
'97.9.1이후 500원(1일치) VAT포함

안내

  • 결제 후 기간 내 모든 월간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결제하신 금액은 반환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