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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사북면 34년 지촌떡방앗간

춘천댐을 지나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 오르면 시간이 멈춘 듯한 동네, 강원 춘천시 사북면 지촌리가 있다. 낡은 가게들이 오래도록 제자리에 붙박여 주변색을 닮아버린 듯한 그곳에 투박한 나무 간판을 단 자그마한 지촌떡방앗간이 자리한다. 글 길다래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강인한 고부가 지켜온 삶의 터전

사진 조금 열린 문틈으로 바싹 마른 공기를 적시는 뽀얀 수증기가 새어 나온다. 떡이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가 방앗간을 찾은 낯선 방문객의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풀어준다. 화통한 목소리로 반겨주는 이는 ‘지촌떡방앗간’을 2대째 이끌어가는 며느리 이선희 씨(56)다.

“시골에 시집와서 무료하게 있다 보니 방앗간 일을 조금씩 돕게 됐죠. 쉬워 보여 시작했는데 제 발등 제? 찍었죠.” 며느리의 거침없는 고백에 시어머니 유춘옥 씨(77)는 다소곳한 말투로 보탠다.

“쟤가 고생을 많이 하죠. 이게 중노동이에요.” 며느리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이는 결국 이곳에서 가장 오래 일해온 시어머니 유씨다. 체구나 말투가 달라 비슷한 구석이 없어 뵈는 고부지만 그들은 이곳에서 15년째 손발을 맞춰 일하고 있다.

  [부업으로 시작한 방앗간] 1944년생인 시어머니 유춘옥 씨의 고향은 평안도 용강이다. 해방되고 유씨가 세 살 되던 해에 부모님이 원주로 내려와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시집을 일찍 왔어요. 열일곱에 했으니까. 아버지께서 친구 분이랑 사돈을 맺자 해서 애들 아버지를 만났지.” 농사꾼 집에 시집와 자식 넷을 낳고 살며 유씨는 한 번도 손을 쉰 적이 없다.

“농사짓는 것만으로는 안 되겠으니까 스물넷에 둘째를 업고 옷 장사를 시작했어요. 서울 평화시장에서 물건을 떼다 광산에도 팔러 가고 산골마을로 돌아다니며 22년간 했어요.” 옷 장사를 접고서는 두릅 장사도 했다. 자그마한 체구 어디에 그런 근성이 들었는지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시키려 그녀는 끈질기게 생활에 매달렸다.

“친정 오빠가 이 방앗간을 시작했는데, 2년 하고는 올케가 힘들어했는지 내놓는다기에 내가 하마 나섰죠. 부업으로 괜찮아 보였어요.” 그녀 나이가 마흔 중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때도 방앗간에선 고추를 빻고 떡을 찌고 기름을 짰다. 그 때문에 기계라곤 전혀 모르던 유씨는 오빠에게 배워가며 일을 익혔다.

“봄가을에 가장 바빠요. 김장한다고 고추 빻으러 오고 참깨 들깨 수확해서 기름 짜고요. 명절에는 가래떡 빼는 손님이 많고 그렇죠.” 손님이 급하다 하면 밤늦게라도 맞춰 줘야 하니 시간도 없이 일했다. 조금 한가해지는 여름엔 농사일을 거들었다.

  [고된 시절 지나며 자식들 키워내] 방앗간 일은 말이 부업이지 만만하게 볼 게 아니었다.

“이 일이 사실 말도 못하게 힘들어요. 무거운 걸 몇 번이고 머리 위로 들었다 놨다 해야 하니 수월하지 않아요. 나는 몸집이 자그마해도 한다면 끝까지 하는 성질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때까지 해왔죠.” 유씨가 기름을 짜면 남편 황한복 씨(85)는 고춧가루를 빻았다. 바쁠 때는 작은 가게가 고소한 기름내와 고춧가루 매운 내로 진동을 했다. 거기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말소리로 정신없는 나날들이었다.

“한번은 명절에 떡을 빼는데 기계가 고장이 났어요. 그러니 어째요. 쌀가루 빻은 걸 냅다 싣고 화천 떡방앗간에 가서 떡을 해다 줬지요.” 기계가 고장 난 것이 제 탓도 아닌데 유씨는 “어찌나 미안하던지”라며 몇 번이고 말을 곱씹는다. 야속하게도 기계는 늘 바쁠 때 말썽을 부렸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유씨는 기계를 트럭에 싣고 서울 성수동으로 고치러 다녔다. 요즘은 그래도 도로 사정이 좋아져서인지, 서비스가 나아져서인지 전화만 하면 사람이 재깍 와서 고쳐주니 좋은 세상이란다.

32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경기가 몇 번이나 요동쳤고 나이 든 사람들은 죽고 젊은이는 동네를 떠났다. 그래도 그녀는 가게를 꼭 붙들고 버텼다.

“따로 월세를 안 내니까 돈이 되든 안 되든 끌어안고 올 수 있었어요. 처음 시작할 땐 저 위에 방앗간이 한 군데 더 있었는데 5∼6년쯤 지나니 없어졌어요. 그 뒤론 우리 집만 있으니 다 여기로 오죠.” 고단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자식들을 다 키워 출가시킨 다음에는 마침내 제 할 일을 모두 마쳤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이 일을 시작하고선 옷 장사할 때처럼 여기저기 다니지 않고 한곳에서 일하니 좀 편해졌죠. 아무래도 농사짓는 것보다는 나았어요.” 편안한 미소가 유씨 얼굴에 번진다. 10년 전 유씨는 첫째 며느리 이씨에게 가게 운영의 주도권을 넘기고 보조 역할을 자처하며 물러났다.

  [2대 여장부가 이끄는 방앗간] 이야기가 이어지던 와중 문이 열리며 손님이 쌀이 든 바구니를 들고 등장한다. 가래떡을 하러 왔단다.

“농사 다 지었으니 겨울에 먹을거리 만들어 놔야지. 떡국 끓여 먹고 구워 먹고 하려고요.” 유쾌하게 말을 건네는 손님은 오래도록 이 곳을 드나든 단골이다. 이곳에 오는 손님의 8할은 그 같은 단골들이다. 이씨가 그의 말에 맞장구치며 재빨리 바구니? 받아 들고는 가게 뒤편에 있는 보일러실로 향한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불을 때 보일러를 돌려 그 수증기로 떡을 찐단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비용을 아끼려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 전통을 고수하게 됐다.

“요즘엔 이렇게 장작 때서 떡 찌는 데가 없어요. 타지 사람들이 오면 신기하게 보더라고요. 장작은 지금도 아버님이 패세요. 하하.” 설명을 이어가는 이씨. 방앗간 일 10년 만에 도사가 된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는다.

“손님이 쌀을 가져오면 씻고 불려서 물을 뺀 다음에 저기서 가루로 빻아요. 그걸 찜기에서 찌고 나서 이쪽 기계에 밀어 넣으면 반죽이 되면서 가래떡이 나와요. 다시 반죽기에 넣고 빼는 걸 세 번 반복해야 쫀득쫀득한 떡이 돼요. 그럼 찬물에 넣었다가 판에 죽 널어놓고 뭉텅뭉텅 썰어서 상자에 담아요.” 떡이 되기까지 세 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동안 이씨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한다. 성실하면서도 활력이 넘친다.

“손님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게 재미있어요. 어르신들이 제 편의도 많이 봐주시고요. 바쁘다 하면 두고 갔다가 다음에 찾으러 온다 하세요. 믿으니까 그러지, 아니면 자기 물건 어떻게 할까 싶어 지키고 서 있겠죠.” 각자 스타일은 다르지만,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똑 닮은 고부다.

“일이 조금씩 지겨워지는데, 애들이 아직 대학생, 고등학생이에요. 칠십 중반까지는 해야겠죠? 아! 이제 떡 다 됐네요. 한번 맛보세요.” 따끈한 가래떡 한 쪽을 건네며 씩 웃는 이씨. 밝은 에너지의 그녀를 보니 지촌떡방앗간은 앞으로 10년, 아니 20년은 끄떡없을 듯하다. 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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