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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펴낸 농부 이장우 씨

유명인만 자서전을 내란 법은 없다. 고령의 농부가 자서전을 썼다. 낮엔 농사짓고 밤엔 글을 쓰는 농부 이장우 씨를 만났다. 글 박희영 기자 사진 고승범(사진가)

낮엔 농사짓고 밤엔 글 쓰는 시골 할배

사진 팔순에 자서전을 낸 농부가 있다. 경북 고령군 개진면에 사는 이장우 씨(79)다. 책 제목은 ‘나의 전원 일기’. 1941년생인 그의 생애는 8·15광복과 6·25전쟁,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씨는 자신의 삶을 담은 기록을 모아 지난 4월 책으로 출판했다.

2년 전 고령공공도서관이 주관한 평생교육문화?로그램 ‘삶을 쓰다, 나만의 책 출판’ 과정을 수료한 것이 계기였다. 이 수업에서 그가 만든 첫 책이 ‘제석산이 나더러 훌륭한 사람 돼라 하네’ 였다. 강사의 도움을 받아 ‘나의 전원 일기’에 들어갈 내용의 개요를 먼저 짠 셈이었다. 이씨는 교육을 수료하고 나서도 낮엔 농사짓고 밤엔 글 쓰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세부 내용을 덧붙여 마침내 105쪽에 달하는 ‘나의 전원 일기’를 썼다. 그러곤 자비를 들여 지역의 출판사에서 책 300권을 펴냈다.

“7∼8년쯤 전에 둘째 아들이 컴퓨터를 사줘서 독학으로 익혔어요. 컴퓨터로 좋은 글귀를 찾아서 노트에 옮겨 쓰다 보니 내 삶을 기록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요. 내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책 만드는 교육도 받아봤죠. 시골 농부의 80년 세월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는 6·25전쟁 당시 비행기 폭격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인민군이 후퇴하는 사이에 19살이었던 형과 헤어졌다. 그는 어머니가 고향인 고령군을 떠나지 않으려 했던 이유도 형을 기다렸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그 또한 이산가족 상봉이 추진될 때마다 대한적십자사에 신청했지만, 형의 생사를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헤어진 가족? 관한 기억이 잊히기 전에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배곯았던 1950년대였지만 이웃 간 정이 넘쳤던 추억, 낙동강 제방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주민과 겪었던 갈등 같은 지나온 삶도 기록했다. 말보단 책으로 엮어둔 기록이 더 오래남겠다는 생각에서다.

[글 쓰는 할배, 그림 그리는 할매] 이씨에게 글쓰기란 일종의 ‘마음 근력’을 키우는 일이다. 글을 쓰면 악력뿐 아니라, 마음까지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담은 ‘나의 전원 일기’로 책 출판은 충분하다면서도, 글쓰기는 놓지 않았다. 매일 저녁, 본받을 만한 삶의 태도에 관한 글을 인터넷에서 찾아 A4 용지 한 페이지 분량 가까이 옮겨 쓰고 있다.

“우리 나이에는 거의 다 손이 떨리는데, 매일 자기 전에 필사하면 악력이 길러져요. 또 좋은 글을 쓰다 보면 마음도 개운해져 정신 건강에도 좋죠. 블로그의 ‘좋은 글’‘감동적인 글’ 게시판에 실린 글을 필사해요. 인생에서 본받을 만한 태도도 배우죠.” 그는 다음에 책을 낸다면 ‘노인이 읽으면 좋은 글’을 엮어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글을 필사하며 살아갈 희망을 얻었기에 동년배들과도 이를 나누고픈 마음에서다. 그는 80대에 들어선 이들이 자신을 ‘노인’이라고 생각하며, 자신감 없이 맥 놓고 사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도 근력이 닿는 한 희망을 품고 노력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노인들에게 마음의 양식이 돼줄 책을 만들고 싶어요.” 아내 박추자 씨(74)는 저녁마다 글쓰기에 여념 없는 남편에게 방해될까 봐 TV를 보는 대신 조용히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 자수를 하거나 손글씨를 썼다. 글 쓰는 남편 옆에서 한 땀 한 땀 수를 놓다 보니 한 벽면을 가득 채우는 작품들이 완성됐다.

“글을 쓰고 있는데 옆에서 TV를 볼 수는 ?잖아요. 그래서 수놓고, 그림 그리고, 색도 칠하게 된 거예요. 어디서 배운 건 아니고, 혼자 해본 거죠. 남편 덕택에 여러 취미가 생겼어요.” [건강 비결은 할 일 많은 시골생활] 부부는 ‘땀 없이 이뤄지는 건 없다’는 뜻의 ‘무한불성(無汗不成)’을 가훈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힘닿는 한 농사를 계속 짓겠다고 한다. 지금도 부부는 2만 5500㎡(7700평) 규모로 벼와 마늘·감자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를 계속 지으면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으니 자녀한테 손 벌릴 필요가 없잖아요. 손자들에게 용돈도 주고요. 더구나 내가 키운 농산물을 자식들한테 나눠주면 뿌듯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일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죠.” 이씨는 개진면 노인회관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자신이 직접 터득한 컴퓨터 활용법을 다른 노인들과도 나누고 싶어서다.

박씨도 남편 못지않게 바쁘게 하루를 보낸다. 요즘은 군 보건소나 수자원공사 등에서 장애인이나 고령자 목욕, 음식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활동보조인 교육 등도 이수했다.

부부는 각자 바쁜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함께 취미생활도 즐긴다. 이씨가 전자오르간과 하모니카를 연주하면 박씨가 그에 맞춰 ‘낙화유수’를 부른다. 그런가 하면 집 옆에 탁구대를 들여놓고 탁구도 친다. 글쓰기, 전자오르간과 하모니카 연주, 노래, 탁구 등 여러 가지 취미를 갖고 있는 이씨는 아직도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단다.

“다시 태어나도 마지막 인생은 시골에서 보내고 싶습니다. 노년에도 재미있게 살 수 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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