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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품정원

낡고 오래된 것에서 가치를 발견할 때 기쁨은 크다. 충남 공주의 양품정원에선 버려진 곰 인형, 망가진 바구니조차 꽃을 돋보이게 하는 멋진 소품으로 변신한다. 글 박자원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소품에 깃든 꽃향기

사진 양품정원을 찾은 날,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높았다. 정원은 마을 어귀에 자리한다. 담장 밖에 서 있는 꾸지뽕나무가 바람에 가지를 흔들며 손님을 반겨준다. 큰 키를 자랑하는 나무는 가지에 앉은 새들에게 달고 맛있는 과실을 내어주고 있었다.

“볕이 좋을 때 열매를 따 먹으면 진짜 맛있어요. 건강에도 최고죠.” 지서형(52)·윤진주(47) 씨 부부가 꾸지뽕 열매를 하나 건넨다. 꾸?뽕나무는 3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으니 어쩐지 나무가 달라 보였다. 위용이 넘치는 것도 같고, 한편으론 애틋함도 느껴졌다. 양품정원의 안주인 윤씨가 정원으로 안내한다. 그는 중절모 아래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초록색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의 개성 있는 모습을 닮은 듯 정원의 인상도 남달랐다.

정원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의외의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접시, 곰 인형, 철제 침대, 수레, 펌프형 수도꼭지가 그것들이다. 모두 못 쓰게 된 주방 식기나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건축 후 남은 철망 등을 재활용한 것이다. 윤씨는 오래되고 낡은 물건들에 애착을 느낀다. 정원에 이런 빈티지 소품이 가득한 이유다. 보통은 매끈한 새것을 좋아하는데 그는 다르다. 오히려 낡고 거친 것들이 그의 가슴을 뛰게 한단다.

양품정원의 양품(良品)이란 ‘좋은 물건’을 뜻하는 한자어다. 그가 전에 운영하던 공방 이름이 양품점이었는데, 그 의미가 각별해서 정원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 마침 정원에 옛날 물건이 많아서 잘 어울리겠단 생각도 들었단다. 그에게 ‘옛날 물건’은 곧 ‘좋은 물건’인 것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물건을 멋진 ?드닝 소품으로 변신시킨 그의 감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향하면 주방·침실·욕실을 재현한 화단들이 보인다. 윤씨가 ‘집’이란 하나의 테마로 완성한 공간이다. 다양한 소품들에 피어난 국화·구절초·스카비오사 같은 꽃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여러 테마 중 철망으로 드레스를 형상화한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철망 골조를 타고 올라온 이파리들의 모습이 영락없는 드레스다. 그도 볼 때마다 뿌듯함을 느끼는 가드닝 작품이란다.

“이렇게 꾸며놓으니 한겨울이 돼도 정원이 심심해 보이지 않아요. 꽃이 지면 휑하고 허전해 보일 수 있는데, 그럴 때 이런 작품들이 정원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줍니다.” [삶의 지침을 바꿔놓은 전원생활] 정원에 있는 모든 건 윤씨가 구상하고, 남편 지씨가 팔을 걷어붙인 덕분에 완성된 부부의 합작품이다. 지씨는 아내의 바람대로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이젠 목재는 물론 철재도 다루고, 뭐든 뚝딱뚝딱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는 자기 작품이 정원에서 꽃과 어울려 숨 쉬는 걸 볼 때 보상 받는 느낌이 든단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들을 완성했을 때 그 기쁨은 비할 데가 없죠. 만드는 과정은 힘들지만 마침내 결과물을 냈을 때 느끼는 희열이 커서 계속 도전하고 시도하게 됩니다.” 작품의 만듦새가 수준급이라서 그가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닐까 의심이 가기도 하지만, 사실 7년 전만 해도 부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원래 아이 셋을 기르며 복닥복닥한 서울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무렵, 아무런 연고도 없는 충북 옥천으로 내려와 정착했다. 그들이 서울을 떠난 건 아이들의 아토피 때문이었다.

“서울에 있을 때 아이 셋이 모두 심한 아토피로 고생했어요. 가려워서 밤에 잠도 잘 못 자고, 긁은 상처 때문에 바지도 못 갈아입을 정도였죠. 결국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서울을 떠나 전원으로 온 거죠. 그럼 아이들 아픈 게 좀 나아질까 싶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전원생활은 아이들에게는 물론 부부에게도 새로운 삶을 안겨준 선물이 됐다. 아이들은 다행스럽게도 옥천으로 온 지 두 달도 채 안 돼 언제 그랬냐 싶게 아토피가 말끔하게 나았다. 서울에선 뭘 해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는데, 시골에 와선 특별히 해준 것도 없는데 저절로 좋아졌다. 그것만으로도 부부는 귀촌하길 잘했다 싶단다.

윤씨는 아담했던 옥천 집의 마당을 처음 봤을 때 운명 같은 걸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곳에 살면 서울생활의 피로감이 대번에 씻겨나갈 것 같았다. 그 마당에 난생처음으로 씨앗을 심었다. 싹이 트고, 꽃이 피는 걸 지켜보며 전엔 몰랐던 기쁨을 맛봤다. 자연스레 정원을 가꾸는 재미에 빠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더 넓은 곳에서 꽃을 기르고자 지난해 지금의 부지로 이전한 것이다.

남편 지씨는 시골에 살면서 자신의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다. 주택은 이곳저곳 손보고, 고쳐야 할 것들이 늘 많았다. 서울에선 이런 걸 해본 적도, 그럴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툴렀지만, 하나씩 도전해보면서 서서히 방법을 알아갔다. 그때 갈고 닦은 실력을 양품정원에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고 앞 소품 공간은 방문객들의 포토존] 윤씨는 정원에서 연장 창고가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한다. 남편이 버려진 자재를 활용해 만들었는데, 이곳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단다. 창고 앞은 윤씨가 좋아하는 소품을 걸거나 화분의 배치를 바꿔가며 멋진 공간으로 완성했다. 덕분에 이곳은 손님들의 사진 명소가 됐다.

양품정원에선 국화가 막 꽃잎을 터뜨리려 하고 있었다. 바늘꽃은 이미 여기저기 폭죽처럼 꽃잎을 틔웠다. 파라솔버베나도 마음껏 오색을 뽐낸다. 동백나무는 꽃봉오리를 맺은 채 조용히 겨울을 예고한다.

윤씨는 카페 창문 앞에 심은 유칼립투스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겨울 노지에서도 잘 자라준 나무를 대견스러워했다. 우리나라에선 월동하기가 어려운 이 나무를 노지에서 키워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겨울 동안 자주 돌봐주며, 특히 보온에 신경썼다. 다행히 나무는 무탈했고, 쑥쑥 자랐다. 처음엔 작은 화분에 담겼을 만큼 자그마했는데, 이렇게 왕성하게 성장해서 너무나 기특하단다.

그는 언젠가 정원에서 작은 전시회를 열고 싶다고 했다. 핸드메이드를 좋아하는 이들과 같이 작품을 감상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파티를 겸한 전시회 말이다. 그때까지 정원을 클레마티스·영국장미 같은 좋아하는 꽃들로 채우리란 다짐을 해본다. 벌써부터 영국장미의 그윽한 향기가 정원에 퍼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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