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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 수리 외길 ‘남문소리사’

전성기를 지나 쇠락해가는 전파사지만 수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추억 서린 옛 가전제품을 고치러 오는 손님들 때문이다. 남문소리사는 제품에 얽힌 손님들의 그때 그 추억을 수리로 되살려내고 있다. 글 강영식 기자 사진 고승범(사진가)

고치면 살아나는 그 시절 그 추억

사진 요즘과 달리 가전제품 회사의 서비스센터가 없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 가전제품이 고장 나면 찾던 곳은 전파사였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전주시장에 위치한 ‘남문소리사’가 바로 그런 전파사다.

최철식(78)·최정완(43) 씨 부자가 운영하는 이곳이 문을 연 때는 1979년. 하지만 부친 최씨와 전파사와의 인연은 그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군에서 제대하고 돌아와 보니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더군요. 논열여덟 마지기 농사를 지었는데도 빚이 많았지요. 아버님은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까지 하셨고요. 큰형님은 분가해서 따로 살았고, 제대한 이듬해인 1967년 아버님이 타계하시기까지 했으니 6남매 중 둘째인 제가 집안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농사를 지어도 지어도 빚만 쌓였다. 1968년에 결혼도 했지만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동생이 벼를 지게에 잔뜩 짊어지고 가다가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걷다가 또 쓰러졌다. 결국 힘들어서 일을 못하겠다며 지게를 부숴버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에게 신문지 쪼가리를 내밀 더란다. 전주 시내 라디오학원 광고였다. “형님, 저를 라디오학원에 보내줘요.” 학원에서 라디오 수리 기술을 배우겠다는 뜻이 었다. 아내가 먼저 돼지를 팔자고 제안했다. 집에서 키우던 돼지 두 마리를 팔아 생긴 3만 8000원을 학원비로 댔다. 쌀 한 가마 값이 2000원대였으니 당시로선 거금이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빚까지 얻어 동생에게 ‘극동전파사’라는 라디오방을 차려줬다. 또 아내의 제안으로 전주 시내로 거처를 옮겼다. 김제시 금구면의 시골에서 힘들게 사?니 시내로 나가자는 아내의 뜻에 따랐다. 아내는 친정어머니가 운영하는 한복집에서 바느질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는 동생의 전파사에 합류했다. 통신병으로 군복무를 했던 그의 경험도 한몫했다. 그때는 라디오가 널리 보급되던 시절이었다. 특히 월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일제 라디오등을 많이 갖고 돌아왔다고 한다. 흑백 텔레비전도 나오기 시작했다. 전축도 보급이 늘었다.

“1970년대엔 고칠 제품들이 많아 전파사가 번성했지요. 그래서 수리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라디오학원에 줄을 설 정도였고요. 한창때는 전주 시내에 전파사가 50∼60곳에 이를 만큼 잘나갔습니다.” [스피커 재생 기술 배워 첫발] 그는 망가진 스피커 재생에 관심을 가졌다. 아무도 하는 사람이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스피커 재생 전문업체를 찾아가 쌀 6가마 값에 해당하는 1만 3000여 원을 치르고 숙식하며 기술을배웠다. 그러고 나서 동생과 함께 스피커 재생에 본격 나섰다. 못 쓰게 된 스피커가 많았던 데다 기술자가 귀했으니 꽤 벌이가 됐다. 당시 양쪽 스피커를 재생해주면 받은 수리비는 60원. 값도 값이지만 스피커가 흔했기에 일거리가 넘쳤다. 라디오에는 물론 전축 등?도 스피커가 쓰였다. 4·6·8인치 크기의 스피커 유닛이 많았다. 극장 스피커들도 ‘겁나게’ 쏟아져 나왔다. 극장 스피커의 12인치짜리 유닛을 고쳐주면 600원, 거기다 ‘공짜 영화관람’이라는 보너스까지 얻을 수 있었다. “우리 전파사로 스피커 수리하러 많이 왔어요. 전자제품 도매점에 가도 못 쓰는 스피커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요. 동생과 그걸 싣고 와 고쳐서 갖다주고 수리비를 받았어요.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군산·부안·임실·장수 등 수리하러 돌아다니지 않은 곳이없었죠. 버스 타고 가서 스피커들을 수거해 콧노래를 부르? 돌아왔어요. 수리해서 갖다주면 사람들이 참 신기해했어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나오니 안 그러겠어요?” 그는 스피커뿐만 아니라 어떤 수리든 다 했다. 가전제품 전자소자로 진공관이 쓰일 때는 자주 망가지는 진공관 교체가 주된 수리였다. 진공관이 트랜지스터로 바뀌고 나서도 전기 저항을 재 서 콘덴서를 교체하는 식이었다. 냉장고·세탁기 등도 일감이 많았다. 1979년 동생과 떨어져 남문소리사를 차린 뒤 1980년대까지도 전파사가 성업했다.

“그 뒤부터 기업의 서비스센터가 생겨나면서 차츰 전파사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요. 전화만 걸면 후딱 와서 고쳐주니 소비자가 얼마나 편해졌나요. 수리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든 시대를 맞았죠.” 그는 가전제품 수리에서 판매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여름에는 선풍기와 냉장고, 겨울에는 난로 등 계절상품들이 잘 팔렸던 시절이 지났다. 그 후에도 장사는 잘됐고, 그렇게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전파사’ 자체를 모르는 이가 아는 이보다 많아진 지금 에까지.

[50여 년 이어온 부친과 뒤잇는 아들] 되짚어보면 수리 일을 시작한 때가 1972년이니 그가 외길을 걸어온 지는 50여 년. 그 세월만큼 쌓인 자부심이 대단해서일까. 그는 아들 정완 씨에게 가업을 잇게 했다. “전파사 사장이 대통령보다 낫다”며 권유했다. 정완 씨는 그 말을 ‘기술이 있으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대학 2학년 때전공을 건축과에서 전기과로 바꿨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부친과 합류했다.

“요즘엔 전파사가 거의 없어서인지 수리 맡기러 오시는 분들이 꽤 있어요. 주로 어르신들이 오래된 것들을 맡기시죠. 라디오나 전축,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심지어 밥통까지 다양해요.” 회사가 문을 닫아 제품 부속 구하기가 어렵거나, 삼성이나 엘지(LG) ?은 대기업 제품이라도 단종돼 서비스센터에서 못 고치면 들고 온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30년 넘은 헤어 드라이기를 갖고 오신 어르신이 계셨어요. 친정어머니가 주신 결혼선물이라며 고치고 싶다면서요. 부속이 없어서 비슷한 부품을 깎아서 수리를 마쳤더니 그분이 너무 기뻐하시더라고요. 그분한테는 드라이기가 소중한 추억이죠. 그 추억을 되살려드렸다는 생각이 들어 보람을 느꼈습니다.” 30∼40년 된 라디오든 전축이든 자신이 사용했고 오랫동안 갖고 있었으면 정이 들 수밖에 없다. 어떻게 그것들을 버리겠는가. 그래서 고쳐 쓰려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진단다. 정완 씨는 그런 손님이 오면 “연락처 알려주고 가시라”고 한다. 생산되지 않는 제품들이라 부속이 언제 나올지 몰라서다. ‘수리 잘한다’ 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버리고 가는 제품에서 비슷한 부품이 나오면 그걸 빼서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생길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완 씨는 손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세요. 혹시라도 부품이 들어오면 연락드릴게요.” 그러다 운 좋게 부품이 나오면 수리가 가능하다. “1∼2년 후에 ‘수리됐다’는 연락받고 찾아가는 분들도 계세요. 버렸다고 여겼는데 고쳤으니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몰라요. 고맙다면서 음료수를 사다 주시기도 하고요. 골동품 같은 제품에 애정이 깊은 손님들에게 기쁨을 드리는 게 제 기쁨이기도 합니다.” [‘백년가게’ 선정 등 평가 이어져] 지난해 남문소리사는 ‘수리’라는 한 우물을 판 공로로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가게’, 전북도의 ‘전북 천년명가’로 선정됐다. 소상공업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표창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남문소리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남문소릿길 복합문화공간을 뢸?어 입주자를 모집하는 중이다. 이곳에 입주한 젊은이들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토록 한다는 것. 이를테면 라디오 만들기 체험이라든지 카세트테이프를 보여주는 기회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카세트테이프가 뭔지 모르는 세대들에게 알리고, 인근 남 부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추억을 되살리고 지역의 미래를 밝혀나가는 길. 결국 이 모든 것의 모태는 남문소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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