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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꽃 그리는 최경옥 작가

가을에는 사람들이 으레 감성적으로 변한다. 예술가들은 어떨까? 가을을 ‘제2의 봄’이라고 말하는 핸드페인팅 작가를 만났다. 글 박자원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사람들 속에 피어난 가을을 그려요”

사진 한낮의 볕은 여전히 강렬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분다. 가을의 문턱에 다다른 것이다. 이맘때 화가는 어떻게 가을을 준비할까 궁금해졌다.

하늘이 맑고 푸르던 어느 날 경기 수원에 있는 최경옥 작가(49)의 공방을 찾았다. 건물 2층에 자리한 작업실에 들어서니 넓은탁자 위에 붓과 물감 등 그림 도구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하얀 팔레트는 초록과 노?·빨강이 한데 섞여 황토색으로 물들어있다. 그는 캔버스가 아닌 옷에 그림을 그린다. 치맛자락이 길어 우아해 보이는 스커트 위에 섬세한 붓질을 더하며 꽃 그림을 완성한다. 그는 옷이나 가방·앞치마·쿠션 등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이런 작업을 패션 핸드페인팅이라고 한다.

“다양한 패션 소품에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말해요. 옷이나 소품에 그림을 그리다 보니 좀 더 쉽게 자기만의 색깔을 표현할 수 있어요.” 그가 공방 한쪽에 마련된 상품 진열대로 자리를 옮긴다. 진열대엔 스커트와 원피스 등 다양한 종류의 옷들이 걸려 있었다. 이곳은 그의 작업실 겸 가게다. 그가 가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스커트 한 장을 보여준다. 스커트 옷고름에 그려진 하얀 꽃이 인상적이다.

[경쾌한 꽃 그림으로 그만의 가을 표현] “스커트 고름에 하얀 꽃 한 송이를 얹었어요. 가을에 어울리는카키색 스커트에 하얀색으로 경쾌한 느낌을 더한 거죠.” ‘경쾌함’은 그가 올해 내놓은 가을 신상품의 주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을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언젠가부터 가을꽃을 보면 설렌다고 말했다.

“가을은 저에게 경쾌함으로 다가와요. 그건 가을꽃 때문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봄에 꽃 피는 모습을 보며 설레듯 저는 가을에 그런 감정을 느껴요. 그래서 가을이 ‘제2의 봄’이라고 생각하죠. 조그만 가을 야생화들 중엔 독특하고 귀한 것들이 참 많아요. 단풍도 하나의 꽃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그림은 대부분 꽃을 주제로 한다. 그만큼 꽃은 언제나 중요한 화두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가을꽃은 가볍고 역동적이다. 차분한 가을 분위기를 경쾌한 느낌의 꽃 그림으로 반전시킨다. ‘사람들이 경쾌함을 얻어 갔으면’ 하는 바람을 작품 속에 담은 것이다.

명색이 꽃 전문 핸드페인팅 작가이지만 사실 그는 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옷에 꽃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것이다. 이제 그는 ‘꽃 그림엔 웃음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전문가가 됐다. 그는 가까운 숲이나 정원을 자주 찾는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가을꽃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다. 얼마 전엔 하얀 부용화의 단아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 그의 그림 주제는 늘 부용화다.

직접 옷을 만드는 그에겐 그림 못지않게 옷의 디자인이나 소재도 중요하다. 그는 옷감으로 리넨을 즐겨 사용한다. 다만 가을에는 살짝 도톰한 소재를 찾는다. 색상은 가을 느낌에 맞게 베이지가 주를 이룬다.

“리넨은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소재예요. 색상은 크라프트지(소포지)처럼 약간 어두운 베이지를 택해요. 특히 두 가지 톤으로 제작된 걸 좋아해요. 예를 들면 짚신처럼 여러 가지 색이 뒤섞인 듯한 옷감들이죠.” 그가 핸드페인팅을 시작한 지 20여 년이 지났다. 처음에 바느질을 할 땐 완벽한 옷을 만들려는 생각에 멋모르고 실을 너무 잡아 당겼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옷에 여유가 없어 뜯어지고 만다는걸 알곤 충격을 받았다. 뭐든 욕심을 내지 않을 때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래서 옷에 그림을 그릴 땐 잘 그리기보단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한다. “사람이 옷을 입고 활동하면 옷에 그려진 그림도 따라서 움직이 잖아요. 어떨 땐 그림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저는 율동감이 느껴지는 그림을 많이 그리려고 해요.” 그는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작업할 땐 여유가 없어 집과 공방을 오가는 일상을 되풀이하지만 애써 시간을 내 가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 동대문 원단시장이다. 무명이나 모시를 좋아하는 까닭에 광장시장을 주로 찾는다. 시장조사를 위해 가지만 상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번뜩이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그때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나중에 영감이 떠오른단다. 최근에도 그런 경험을 했다. “보도블록에 조그만 채송화가 핀 걸 봤어요. 그 순간 얼마 전 상인에게서 받았던 영감이 떠올랐죠. 꽃은 제게 늘 어려운 주제이지만 계속 고민하고 현장에서 소통하다 보면 좋은 결과물을 얻어요.” [투박하고 못난 것들의 가치 찾는다] 작가들이 으레 그렇듯 그도 작품이 자기 맘에 들었을 때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만족할 때에뢸 그다음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덜 예쁘고 망가졌더라도 독특한 물건이 좋았다. 친구들이 예쁘고 좋은 것을 찾을 때 그는 못난이 같은 것에 눈길을 줬다. 그런 그의 취향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의 독특한 시각은 작품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 “앞으로는 더 투박하고 못난 것들에 집중하려고 해요. 그 안에서 멋지고 가치 있는 걸 찾고 싶어요.” 그런 그가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다. 그는 외국에 나가면 빈티지 시장을 둘러보는 걸 좋아한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지만 언젠가 가능할 그날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단다. “저에겐 그런 빈티지풍의 소품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화지예요. 영감을 주는 재료를 발견하는 건 제 작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일이죠.” 그가 휴식을 취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는 공방에서 늦게까지 작업하고 집에 돌아가면 쉬이 잠들지 못한다. 몸은 피곤해도 온종일 그림에 집중한 탓에 정신적으로 고양돼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땐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감정을 조절한다. 어지러운 심사를 달래기 위해 잔잔한 영화를 볼법하지만 그는 강한 주제의 작품을 즐긴다. 소위 ‘센’ 영화들에서 카타르시스를 얻는 그 자체가 휴식인 셈이다. “미처 해소하지 못한 갈증을 영화를 보면서 풀어요. 평소엔 웬만 해서 감동을 받지 못하니 사실 지치고 힘들어요. 그럴 때 영화를 보면서 오히려 영감을 얻기도 하죠. 그러면 새벽에라도 공방으로 달려가 붓을 들어요.” ‘가을이란 자신을 고민하고 돌아보며 성장하는 계절’이라고 정의하는 최 작가. 가을꽃을 그리면서 지난 봄과 여름에 교감을 나눈 사람들을 떠올린다. 사람과의 관계를 성찰하는 일이 작품활 동의 첫걸음이라고 믿는 그의 붓 끝에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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